1.
1년 뒤에는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나빠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면, 한국 사람들은 정치 일정에 맞춰서 미래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5년에 한 번 대선, 4년에 한 번 총선, 이때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맞다. 그리고 미움과 증오 혹은 희망과 같은 많은 감정이 동원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세상이 선거를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엄청난 변화가 생겨날 것 같지만, 길게 보면 꼭 그게 다인 것도 아니다. 

길게 흐름을 보는 또 다른 방법은 한국 자본주의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새로 생겨나는 문제, 오래된 문제에 대해서 이 시스템이 어떻게 적응하거나 혹은 실패하거나, 그렇게 보는 방식이다.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냥 경제라는 눈으로 한국을 보고, 세상을 본다. 그게 제일 편해서가 아니라, 그 방법 외에는 아는 게 없어서 그렇다. 

내가 만들고 싶은 나라는,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나면 세 끼 걱정은 안 하고 살아도 되는 나라다. 파리에 있던 시절, sdf라고 불렀는데, sans domicile fix, 영어로 홈리스가 꽤 많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부자들이 잘 사는 나라는 만들기 쉽다. 그건 정말 최빈국 아니면 어지간하면 다 만들 수 있는 일이다. 중산층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는 아마 케인즈가 아니었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여파인지, 아니면 케인즈의 영향인지는 역사 속에서 모호하다. 아마 이 논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크루그먼이 ‘대압축 시대’라고 부르는 기간, 많은 선진국이 여기에 갔다. 

우리도 이런 비슷한 상황에 가기는 했던 것 같은데, IMF 경제위기와 함께 전혀 다른 형태의 위기가 왔다. 중산층의 삶은 어느 정도는 만들었는데, 이제 중산층의 재생산에 위기가 왔다. 자본주의 초기에 그랬듯이, 중산층은 아주 위태로운 계급이고, 정치적으로도 특정한 방향성이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방향성들을 놓고 보면, 한국은 여전히 상대적 빈곤 문제와 함께 후기 자본주의가 갖게 된 안정성의 근간인 중산층 재생산 문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근본적이고 오래 갈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내 주변에는 그야말로 온통 보수 쪽 인간들이 그득했다. 대기업 사람들, 공기업 인간들, 그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가득 있었다. 나는 결국 그곳에서 나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2.
2016년은 내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원래도 약했던 둘째가 연이어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아내는 결국 다시던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결국 하던 일들을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애들 보는 일이 나의 일상이 되었고, 그냥 나는 그렇게 살기로 했다. 

좀 다른 가능성이 몇 번 있었는데, 차관급 자리를 한 번 고사했고, 공기업 사장도 몇 번 안 한다고 했다. 언젠가는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게 그렇게 좋았더라면 진즉, DJ 때 청와대에 갔었을 것이다. 아침에 일찍 나와야 된다고 해서, 되었다고 했드랬다. 높은 자리에 가거나, 사장이 될 기회는 그 전에도 많았다. 새벽에 나와야 되는 게 싫어서 청와대 안 갔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돌았다고 그랬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 뒤에도 청와대 갈 기회는 몇 번 더 있었는데, 그게 내 인생의 행복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결국 청와대 대신 총리실로 가게 되었다. 그때 내가 행복했었나? 앞에서 하는 얘기와 뒤에서 하는 얘기가 다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그리고 나에 대한 판타지도 그때 다 사라졌다. 

그 시절에 대인 기피증이 심해졌다. 건강도 안 좋아졌다. 내가 행복한 것, 그건 혼자 조용히 처박혀서 생각하는 순간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 시절에 내 성격이 변한 것인지, 원래 그랬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배신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그냥 사람은 원래 그런 거다, 그런 생각을 좀 하게 되었다. 

이재영과 노회찬과 뜨거운 몇 년을 보낸 것은 그 후였다. 회사는 그만두고, 아직 책은 내지 않았던 시절, 내 삶은 가난하지만 즐거운 시절로 변했다. 그 시절에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녹색당 당원으로서의 내 정체성은 그 시절에 만들어졌다. 

시간은 정말 정신없이 지났고, 20년 가까이 지났다. 내 인생의 친구라고 할 이재영은 벌써 떠났고, 오재영도 떠나고, 노회찬도 떠났다. 뜨거웠던 한 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들이 사라진지 몇 년이 지났다. 

올해 아버지가 떠나셨다. 긴 시간은 아닌데, 병실에 있던 동안 나도 건강이 안 좋아졌다. 막내동생은 결국 입원을 했다. 아마 나도 그때 병원 갔으면 입원해야 한다고 그랬을 것 같다. 나는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혼자 남은 어머니가 많은 어려움의 근원인 것 같다. 원래도 좀 그러셨는데, 치매가 본격 시작되면서, 어머님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얘기를 많이 하신다. 지난 주에는 같이 살던 둘째 동생이 집을 나갔다. 어머니 보고 싶어하는 며느리가 없다. 아버지 집도 정리를 하고, 휠체어가 움직일 수 있는 아파트로 옮기기는 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남겨 주신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아버지의 집을 팔면, 적당한 집으로 옮길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택도 없다. 

애들 보는 건 점점 더 쉬워지고 있지만, 방학 때는 정말 헬.. 지옥 같다. 그리고 그 방학이 지난 주에 끝났다. 이제야 정신이 좀 돌아온다. 

나는 원래도 특별한 욕망이나 그런 게 없는 스타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바라는 게 있다면, 60살 되기 전에 지금 쓰고 있던 50권을 마무리해서, 더는 특별하게 뭘 해도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가던 학교를 그만둔 것은, 나도 시간 관리가 너무 어려워서 그렇다. 그냥 버티면 정년까지 있을 수는 있는데, 그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나랑 비슷한 사이클로 살아가던 친구들이 대부분 먼저 떠나갔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해서,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긴장도가 너무 높은 삶을 살았다. 언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나이를 먹는다. 아직까지는 생각이 좀 나기는 하지만, 평생 이럴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60이 넘으면 뭘 하고 지낼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도 된다. 여백이 많은 삶, 그렇게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정도가 작은 소망이라면 소망이다. 

3.
원래 2~3년 출간 계획을 잡아 놓고, 그렇게 움직이는데, 지난 몇 년 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까 있으나 마나한 계획이 되었다. 계획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 것도 있지만, 나도 그냥 하기로 했으니까 일단 이 일을 하고,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제일 먼저 쓸 책은, 이재영을 위한 책이다. 출판사 레디앙이 요즘 많이 어렵다. 이재영이 민주노동당에서 나온 후, 먹고 살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 만든 출판사가 레디앙이었다. 레디앙이 문을 닫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저출생 문제를 다루는 책을 하나 하기로 했다. ‘노동 희소’라는 개념에 대해서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이걸 10대로 관점을 확 옮겨서 분석해볼 생각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그야말로 “띠끌 모아 태산”, 그런 심정으로 기회 닿는 대로 고등학교 강연도 많이 갔고, 중학생들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늘려왔다. 그래도 충분치는 않지만, 그래도 좀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런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미 많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도서관 경제학이 다음 차례다. 도서관 얘기는 먼저 하나 뒤에 하나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윤석열 정부가 도서관에 아무 관심 없는 지금이 딱 이 책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윤석열도 그렇고, 윤석열 주변 사람들은 정말 책 안 보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 흔적이 좀 남는데, 그런 흔적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책은 안 보고 사교에는 능통한 사람들, 그게 윤석열 정부의 고위직 특징이 아닐까 싶다. 고위직 중에서 도서관에 가장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권양숙 여사였다. 그 시절에는 ‘여사님 관심 사업’이 도서관이었다. 나에게 도서관에 관한 걸 좀 다루어보면 어떻겠냐고 얘기해준 사람도 권양숙이었다. 이 얘기는 책에 좀 자세하게 넣을 생각이다. 도서관 관련된 일을 하면, 나중에 나이 먹고 한적해져도 책을 여기저기서 계속 보내준다고.. 나름 감동적인 얘기였다. 유명하거나 높은 사람들 만나면 20분, 길어야 20분 정도 시간을 같이 보낸다. 권양숙의 경우는 1시간이 좀 넘기는 했지만, 몇 사람 같이 만난 거라서.. 그 시간 동안에 도서관 얘기를 가장 열정적으로 한 경우였다. 한참 된 일이지만,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게 된 게 그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원래는 필라델피아에 가서 처음 몇 페이지를 쓰는 걸로 일정을 잡았었다. 실제 계획도 세웠는데, 그 후에 바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택도 없게 되었다. 현대식 도서관의 역사와 근대식 소방서의 역사가 같다. 도시가 형성되면 제일 급한 것 중의 하나가 소방서다. 그런 얘기가 나는 너무너무 재밌었다. 가정에 비치하는 소화기가 소방서를 대치할 수 있나? 도서관은 그런 것이다. 

도서관 경제학보다 젠더 경제학을 먼저 하는 게 나을 거라고 조언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그 뒤로 순서를 바꾸었다. 제일 큰 건 인터뷰 작업을 좀 할 필요가 있어서, 절대 시간이 좀 필요하다. 사실 여기에 배치하려고 했던 많은 것들을 직장 민주주의와 좌파 에세이 등에서 많이 빼서서, 새롭게 내용을 재구성할 필요가 생겼다. 내용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좀 더 디테일을 살리려면 결국은 인터뷰 작업을 좀 해야 한다. 올 겨울 방학까지는 애들 보느라, 택도 없고.. 내년 봄은 되어야 최소한의 여건이 될 것 같다. 내년까지만 애들 학교 하는 거 도와주면, 길고 길었던 육아도 이제 끝나간다. 둘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나도 해방이다! 

아주 오래 전에 약속해 놓은 책이 두 권이 더 있는데, 그건 젠더 경제학까지 정리하고 다시 생각해볼 생각이다. 

처음 데뷔할 때에 비하면, 책의 힘이 사회적으로 엄청 약해졌고, 한 명 한 명 버티는 것들도 다들 힘들어하는 것 같다. 하루 세 끼 먹고 사는 것 걱정하지 않으면서 글 쓰고, 보고 싶은 것 살펴보면서 살 수 있는 것만 해도 대단히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은 든다. 사회과학 저자 중에서 몇 명이나 그냥 책 쓰면서 삶이 대단히 고통스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60년대 후반, 경제인류학의 길을 열었던 마살 살린스가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말이 있었다. “want not, lack not”, 원하지 않으면 부족한 것도 없다.. 나의 넉넉함도 이런 것과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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