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베란다에서 레고 블록 담은 통을 엎었다. 완전 지뢰밭을 만들어놓았다. 다 치우기 전에는 못 잔다고 하는데, 둘째는 사태의 심각성을 도통 이해 못 하는 것 같다. 좀 치우는 척 하다가, 또 거기서 레고 이것저것 끼우면서 논다. 

다른 거 보다도, 추운데 너무 오래 있으면 감기 걸릴 것 같아서, 결국 새끼 손톱 보다도 작은 레고들을 같이 담기 시작했다. 제대로 엎어졌다. 유리 창틀에도 수북이 쌓였다. 

김종철 건 등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일들이 많이 있는데..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내어서 무엇하나, 여덟 살 둘째랑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같이 레고 블록 주웠다. 한참 걸렸다. 이거 화 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처량하다고 신세 한탄하기도 그렇고. 이 나이에 밤 늦게 내가 왜 레고 블록 줍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바보 같은 일이다. 빨리 줍고 조금이라도 애들 일찍 재우고 쉬는 게 남는 장사다.

결국 레고는 정리까지는 아니고, 그냥 통 안에 수북하게 쌓였다. 

잠시 있다가 보니까, 둘째는 엄마한테 자기가 다 치웠다고 공치사 하고, 금방 기분 좋아져서 베이 블레이드, 팽이 돌리고 논다. 

머리 아픈 일이 잔뜩 줄을 서 있는데, 현실은 애들이 어질러놓은 장난감을 치우느라 몸이 고단한 삶이 되었다. 사는 게 뭐 대단한 게 있겠나 싶은 생각이 문득. 마음 가는 대로 하다가, 그것도 어려우면, 철푸덕, 레고나 줏어담으면서 사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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