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장기적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하지만, 꼭 모든 재정지출의 원칙에서 보편적 복지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별적 복지가 더 나을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와 관련된 긴급 재정은 전례가 별로 없어서 여러모로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이번의 2차 지원금은 '맞춤형'이라는 이름으로, 선별 지급 그것도 극단적으로 미세한 검토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수많은 논란거리가 생길 것이다. 

자영업자는 누굴 주느냐, 얼만큼 주느냐를 비롯한 세세한 논란들은 '선별'이라는 말 속에 이미 포함된 논란이다. 고르기로 하면 '어떻게' 고를 것이냐, 이 질문은 '자연빵'이다. 

선별복지와 보편복지라는 넓고 기본적인 차이 혹은 자영업자에게 직접 주는 게 낫느냐, 소비할 사람들에게 주는 게 낫느냐, 이런 차이점 보다 더 근본적인 차이점이 하나 숨어있는 것 같다. 

중산층에게도 지원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게 1차 지원과 2차 지원의 가장 큰 정신적인 차이다. 좀 넓게 구분을 하자면, 복지 기반 전문가와 격차 현상, 소위 '양극화' 기반의 전문가 사이에 생겨나는 시선 차이가 바로 이 문제다. 

복지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저소득 기반으로 사유를 한다. 전통적인 시각이다. 멀게는 90년대의 세계화 그리고 격차와 분리 현상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중산층의 붕괴를 경제의 가장 큰 위협으로 본다. 중산층을 잡아야한다는 것은 경제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제의 구조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산층이 갈수록 줄어드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협소해가는 중산층에 대한 지원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면 협소한 의미의 복지는 중산층 이상은 알아서들 하시고, 사회 최약층의 최소한의 기반 마련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도 국민경제의 건전성과 국민경제의 최소 기반 같은 시선의 차이가 존재한다. 

코로나 19와 중산층이라는 질문..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국민의 70% 안을 지지하게 된다. 그래야 부유층을 제외하고 중산층 이상을 지급한다는 말이 형성된다. 여기에 기술적인 애로사항까지 감안하면, 구분하느라고 힘을 빼느니, 차라리 다 주고, 부자들에게는 세제 등 별도의 메카니즘을 만들자, 이렇게 된다. 어차피 세금은 그 사람들이 많이 낸다. 맨날 받기만 하고 줄 때 빼면, 장기적으로 조세 저항이 오히려 구조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할 수 있다. 

이번에 2차 긴급 지원이 가지고 있는 정책적 철학은 "중산층은 안 준다"이다. '피해'라고 말은 하지만, 중산층들은 별 피해가 없거나, 어차피 먹고 살만하잖아, 이런 생각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이게 90년대 이전의 경제이론으로 무장한 경제 관료들의 생각이기는 하다. 그 사람들은 옛날에 교육 받았고, 중산층 이상은 효율상, 빈민층은 복지, 이런 시대의 시선이 기본이다. 

홍남기로 대표되는 정부의 시선의 기본은 이거다. 돈이 부족하니, 이번에는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지원하겠습니다, 송구합니다.. 이 말을 축약하면 "이번에는 중산층은 아닙니다", 이 말이다. 그리고 이건 최소한 90년대의 민주화 이후로 한국 엘리트 경제 관료들의 머리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프레임이다. 중산층에게도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 믿거나 말거나, 이건 대선 후보 시절의 박근혜가 처음 본격적으로 들고 온 프레임이다. 

경제 관료들은 이번에 자기들이 수십 년간 하던 습관대로 했다. 이건 그럴 수 있다. 가끔 정권과 정부를 같은 의미로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권은 정권이고, 정부는 정부다. 정부는 수장이 바뀌어도 잘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코로나 19와 중산층 사이의 경제적 관계에 대한 연관성은 차지하고라도.. 나도 중산층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말을 지도부가 하고 있는 거다. 이낙연이 "송구스럽습니다"라고 말을 해도, "아, 나는 아니구나", 이런 걸 그런 메시지와 방송 속에서 사람들이 일일이 확인하는 거다. 바보다. 신념을 지켜서 노무현식 의미로 바보인 게 아니라,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무슨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면서 착한 얼굴로 그냥 말하는 건, 그게 바로 바보다. 

자, 이제 계산의 문제로 가보자. 

많은 중산층들이 최근 코로나 블루를 호소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일자리든 육아든 혹은 개인의 정신세계든, 어려워진 것은 마찬가지다. 이 사람들에게 민주당이 준 메시지는 "참으시라", 이 한 마디다. 예를 들면, 무슨 돌봄교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옴팡지게 집에서 같이 버텨야 하는 중학생이라고 생각해보자. "엄마, 우리 집은 이번에 안 준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응." 그러면 바로 반문할 것이다. "왜? 우리도 힘들잖아?" 

그럼 그 반대편에 있는 자영업자나 저소득층은 중산층의 실망감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 아니 남지는 않더라도 딱 본전인 정도로 정부의 대책에 대해서 감사할까? 이리저리 쪼개고 나면 최대 200만 원 정도다. 자영업자 가정이라도 4인 기준이면 지난 번에 100만 원 정도 받았는데, 온갖 수혜를 집중시켜서 받는다고 해야 200만 원이다. "고맙습니다"라고 그런 마음이 들 정도의 지원은 애당초 없다. 

개개인에게 주는 것이 자영업자에 대한 효과가 높을지, 자영업자에게 몰아주는 게 좋을지, 사실 지금의 지원금은 그런 계산을 해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 돈이 그 돈이다. 중산층이 이번에 받게 되는 상실감을 상쇄할 정도의 '감사한 마음'은 별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인 손실 계산은 차지하고라도, 정치적인 손실은 확실하다. 민주당 폭망. 

지나간 얘기지만, 박근혜도 이 정도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산층이라는 국정 기조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슈퍼 여당이 된 지금의 민주당이 정치적으로는 처음하는 경제적 결정이 이번 긴급 지원금이다. 경제를 누구랑 할 거냐는 건 좀 복잡한 질문인데, 정치를 누구랑 할 거냐는 건 좀 상대적으로 좀 단순한 질문이다. 

부자들을 확실하게 부자로 만들고, 그 대신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거기에서 뒤처지는 소외된 사람들은 복지 정책으로 확실하게 안고 가겠다.. 이게 90년대의 신자유주의 경제 프레임이다. 지금 우리는 이낙연과 함께, 이 과거 프레임의 귀환을 보는 중이다. 

정치는 누구랑 할 거냐? 그게 바로 경제 운용의 기반이기도 하다. 

그래도 빚을 져야 하지 않느냐? 질 빚은 지고, 부자들에게 더 걷을 방법을 생각해내라, 이게 지난 총선의 메시지 중의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걸 기대하면서 수도권의 중산층들이 민주당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았을까 싶다. 

중산층과 코로나, 이게 앞으로 2~3년을 관철할 경제 프레임의 핵심이다. 

홍남기는 다른 집 사람이다. 어차피 부총리까지 했고, 지금 그들을 보좌하는 국장급, 실장급, 이런 사람들은 정권 넘어가도 또 승승장구할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승, 민주당 패! 이게 코로나 2차 긴급지원의 경제적 메시지의 핵심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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