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라는 절 제목을 달았다. 내 나이 52세, 이 나이에 답하기가 이제는 쉽지 않다. 후회되는 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뭐를 하나 딱 고르기가 쉽지가 않다.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을까, 그것도 알기 어렵다.

재수할까 싶어서, 대학 들어가서 일단 대충 놀았다. 그리고 휴학하고 재수하기로 할 즈음에 교통사고가 났다. 그 때 곰곰 생각해봤는데, 그 때쯤 같이 노는 사람들이 너무 재밌었다. 그래, 재수는 해야 뭐하겠나.. 그냥 뭉개고 살았다. 그 순간이 후회될까? 지난 몇 년 사이 내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준 사람들이, 사실 그 시절에 같이 술 마시고 놀던 사람들이다. 그냥 내 삶이 되었다.

학위 마치고 싱가포르 대학과 호주의 몇 개 학교, 이런 데에 갈 기회가 되었다. 에이, 귀찮다. 무작정 한국으로 왔다. 오자마자 wto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것도 귀찮다. 그냥 시간강사했다. 그게 후회스러울까? 이러거나 저러거나, 내 삶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일본에서 짧은 민주당 집권기가 있었다. 동경대에서 연구 프로그램을 연결시켜주겠다는 얘기들이 좀 있었는데, 귀찮았다.

장관은 아니고 차관급 정도는 갈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이제 와서 새삼.. 그것도 뭉갰다. 후회될까? 아내도 후회하지 않고, 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후배들은 원망도 좀 하고, 그랬다. 그래도 별로 후회스럽지는 않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인생이 다른 방식으로 갈 순간이 있기는 했는데, 대체적으로 나는 주변 사람들이 반대하는 결정을 주로 내렸다.

사랑과 삶 그리고 일, 그런 데에 아쉬운 순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후회한다고 해서 될 것 같지도 않고, 뭔가 결정적으로 바꾸고 싶은 것도 별로 없다.

중간에 경로가 어땠든, 지금 이 나이의 나는 결국 '인생에서 후회되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놓고 글을 쓰고 있었을 것 같다.

지금보다 조금은 더 넉넉하고, 조금은 더 편안한 상황일 수도 있고, 지금보다 조금 더 빡빡하고 더 힘겨운 상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결국에는 이 나이에 같은 제목의 글을 쓰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라는 절의 제목을 달았다. 가끔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는 것, 그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과거의 결정에 묶여, 죽어라고 앞만 보고 가는 삶, 그게 아름답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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