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쓰던 책의 마지막 문장을 썼다. 어제 오후에 썼었는데, 뭔가 이상해서. 저녁에 그냥 밥 안 먹고 그냥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몇 시간 들여다보다가 다 지우고 문단 하나를 써 넣었다.

책이라는 게, 좀 그렇다. 쓰다보면 지겨울 법도 한데, 쓰면서 그 세계로 자꾸 빠져 들어가서, 마무리할 때 되면 나오기가 싫어지기도 한다. 글에 정을 붙이고, 또 정도 들다보면 그만 보는 게 무서워지는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당분간 좀 쉬다가..

이제야 농업경제학 시작한다. '88만원 세대' 출간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친하게 지내던 에디터랑 몇 권의 책을 한꺼번에 계약한 적이 있다.

그리고 에디터가 출판사 옮기고. '문화로 먹고 살기'로 문화 경제학 한 번 정리하고, 바로 다음 작업이었는데..

처음 하기로 한 시점부터 10년이 넘어버린 셈이다.

며칠 전에 점심 시간쯤에 청와대 근처를 운전하면서 지나다가 딱 농업 비서관을 보게 되었다. 차 세우고 인사할까 말까 하다가.. 한동안 늘 보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길에서 만나면 어색할 것 같아서.

전에 책 얘기를 잠시 했었는데, 자료는 필요한 건 충분히 주겠다고 했었다. 뭐, 그거야 청와대 가기 전의 일이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청와대로 가거나 장관이 되면, 연락하기가 좀 그렇다. 게다가 자료 좀 도와달라고 연락하기는 더더욱 어색.

맨 처음 농업경제학 구상했었을 때에는 스위스의 국민투표를 비롯한 농정이 주된 내용이었고, 그 다음에 구상했을 때에는 csa가 결론..

그 사이에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10대들의 삶이 주요 모티브다.

그 사이에 내 삶도 많이 바뀌었다.

오랫동안 바지를 33인치 입었는데, 지금은 34인치도 허덕허덕. 올 봄까지는 34인치도 버티면서 입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34인치는 넉넉하다.

내년 여름까지 33인치로 돌아가는 게, 앞으로 1년, 별 목표나 그런 게 없는 내 삶에서 그래도 '목표'라는 이름으로 불릴 작은 수치 같은 거.

만 28세, 현대에 처음 입사할 때 바지 치수가 33이었다. 그 때도 청바지는 33이 없어서 34 입었다. 대학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른 건 다 바뀌었는데, 청바지 치수만 바뀌지 않고.

둘째 아픈 다음에 아이들 보면서 허리 인치가 커졌다. 옛날 바지는 벌써 한 번씩 싹 버렸고.

일정에 크게 어긋나지 않게 책 출간하면서, 바라는 게 한 가지만 더 있다면 20대 시절의 바지 치수인 33으로 돌아가는 것. 뭐, 목숨 걸고 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아무 목표도 없는 삶은 너무 긴장감 없기는 하다.

몇 년 전에 '이제는 강북 시대', 이런 제목의 책 한 번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었다. 뭐, 특별히 노력을 한 것은 없고, 그 때 막 태어난 마당 고양이 한 마리에게 강북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정도. 아직 살아있다..

책 한 권이 끝나고, 다음 책 작업 시작하기 전, 그 시간이 좀 애매한 시기이기는 하다. 그냥 놀면 좋겠는데, 그 때 밀린 책을 보거나, 미루어두고 있던 다른 일들을 좀.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순수 놀아보려고 한다. 원래도 노는데, 뭘 더 놀려고.. 일부러 놀 걸 찾지 않으면, 애만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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