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숨이 막혀 헉 헉, 못 살겠어요
뭐라고? 헤어지자구?
등 뒤에서 하나둘 창문이 스르르 닫히는, 혁대가 딸각 풀어지는 소리 헉헉, 그러나 말로 번역될 수 없었던 말들, 때리지 마 제발 때리지만 말아요
도둑맞은 첫사랑이 부패하기 시작하는 냄새 진동하던 그 여름의 오후, 기억을 통과한 상처는 질겨져 있다 저기 저 방충망 바깥에서 윙윙대는 모기처럼 지금은 위험할 것도 없는데......
(최영미 시짐 <서른, 잔치는 끝났다> 중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시집을 끼고 사는 삶을 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일상에 시를 자주 읽으면서 살 것 같기는 했는데, 막상 서른이 되니까 그렇게 시를 많이 읽지 못했다. 바쁘다는 건 다 거짓말이고, 시인들이 날 것으로 던지는 시대의 진실에 마주 서기가 무서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가 첫 직장이었다. 번듯하고 연봉 잘 주는 직장에 가면서 좋았던 점도 있었지만, 상처도 분명히 생겼던 것 같다. 시를 가까이 하지 못한 것은 그 상처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황석영 선생에게 시인과 소설가의 차이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87년, 시인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연단 앞 쪽에들 앉았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가들은 조금이라도 많이 보기 위해서 연단 뒷줄에들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런가 보다 했다. 어차피 우리는 연단 근처에 있던 것이 아니라 저 멀리에 서 있었다.
1994년에 최영미의 시집을 읽고서 나는 충격에 빠졌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집을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표현으로 기억한다. 상업적이고 트렌드를 만든 시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시는 별 거 없다.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 시가 시집의 나머지 최영미의 시 그리고 그녀의 문학적 삶을 이해하게 되는 단서라고 생각한다.
"때리지 마 제발 때리지만 마세요."
최영미는 나도 읽었던 원전 중의 일부를 번역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운동권 선배와 짧은 결혼생활을 했던 정도로 알고 있다. 아마 엄청나게 잘 나고,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던 남자였을 것이다. 혁대로 상대방을 때리는 일, 시인이 결국 펜을 들게 한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보다 약간 먼저 나온 김형경의 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도 충격적이었다. 80년대, 운동권, 대학생, 복잡한 해석들이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이 소설은 간단하지만 충격적인 얘기였다. 별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 선배가 후배를 강간했고, 그래서 진정으로 서로 사랑했던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간을 했던 남자 선배와 여자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어쨌든 삶을 꾸려나가게 된다. 이건 문학적 봉합이다. 그들은 과연 행복하게 되었을까? 1993년에 김형경의 데뷔작은 운동권 문학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나는 그 수많은 운동권 강간 사건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봉합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의 얘기를 바로 다음 해인 최영미의 시,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딱 한 번 혁대로 맞아본 적이 있다. 6학년 때 아버지에게 맞았는데, 다음 날 아버지는 날 데리고 냉면집에 갔다. 그게 처음 냉면을 먹어본 날이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맞은 기억은 별로 없다. 그렇게 폭력적인 양반은 아니었고, 적어도 내 기억에는 어머니를 때린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에게 뭔가 심경적으로 어려운 일이 벌어졌을 거라고, 그 정도로 이해한다.
성추행, 성희롱, 우리가 살았던 그 80년대는 그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혁대로 때리는 일도 벌어졌다는 것을 최영미를 통해서 알게 된 후, 정말로 나는 충격이었다. 이런 일들은 내부에서 조용히 무마되는 경우가 많았다. 혁대 혹은 그 이상의 운동권 데이트 폭력 사건은 2010년대까지도 계속되었다. 폭행사건, 이런 것들은 내부적으로 무마되었고, 당사자들과 일부 관계자 선에서 징계가 내려갔다. 그리고 이 사회는 거의 몰랐다.
1994년, 최영미가 '때리지 마'라고 외치던 순간, 우리에게 21세기는 부쩍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외침은 21세기 하고도 1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에게 21세기가 왔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아직도 20세기에 살고 있었다. 공장으로 내려간 비밀조직 내에도, 유명한 노조 지도부에서도 성폭력 사건은 끊임없이 벌어졌다. 민중 운동에서 시민 운동으로 큰 틀이 바뀌었지만, 그 시대의 찬란한 전통은 끝나지 않았다. 좋아했던 후배 활동가가 성희롱 사건으로 단체를 결국 떠나게 된 게 몇 년 안되었다.
21세기적인 최영미의 시를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최영미의 시집을 읽었다. 최영미가 혁대로 맞았던 사건을 절절하게 썼다는 대목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의 잔치가 끝났다는 것을 슬퍼하기만 했지, 그녀가 보았던 그 시대의 아픔에 대해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다.
2.
우리는 모두 약간씩 운동권이었다. 우리가 싸웠던 사람들에 비해서 도덕적 우월성이 우리에게 있을까? 남자 엘리트 운동을 했다는 점에서, 크게 우월하게 내세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상처가 남는다. 자기 상처가 아프다는 얘기만 했지,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데, 진짜로 우리는 별 거 없었다.
21세기가 왔다. 달력에서만 왔다. 진보와 보수가 10년씩 정권을 나누어 가졌다. 80년대를 사는 사람들과 70년대를 사는 사람들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80년 광주로부터 자신의 출발점을 찾는 엘리트들 그리고 72년의 유신으로부터 자신의 근거를 찾는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정권을 잡았다. 술자리에서 찬란한 80년대를 논하는 사람들과 화려했던 70년대를 논하는 사람들, 우리에게 21세기는 오지 않았다. 시대는 지체되고 정체되었다. 박근혜는 새마을 운동과 함께 더 앞으로, 60년대로 가고 싶어했다. 이건 좀 너무했다. 70년대, 80년대까지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허용하더라도, 60년대는 좀 심하다. 김기춘이 결국 감옥에 가게 된 이유가 이런 너무한 과거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청년들은 70년대, 80년대, 다 아무 상관도 없다.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이 땅에서 자신들이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게 '헬조선'이라는 용어 아닌가? 청년들이 이번 생은 망했어, 이생망을 외치고 있을 때, 남성 엘리트들은 70년대와 80년대를 가지고 온갖 사상 투쟁을 벌였다. 한국이 진보와 보수로 나뉘었을까? 혹은 좌우로 나뉘었을까? 남성 엘리트들의 권력 다툼과 자기들끼리의 어깨 싸움만 있었지, 그렇게 이념으로 우리가 나뉜 적도 없는 것 같다.
우리의 21세기는 2016년 5월, 강남역에서 오기 시작한 것 같다. 노래방 화장실에서 그냥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강남역 출구에 여성들이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그 공포감, 그것이 외면화되면서 사회로 드러났다. 2000년 밀레니엄이라고 불꽃놀이도 하고 수많은 행사를 했다. 시대는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하는 관제행사, 자본이 하는 마케팅 행사, 시대가 그렇게 오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 촛불집회가 있었고, 정권이 바뀌었다. 서지현 검사가 오래된 성희롱 사건을 고백했다. 그리고 여성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 외침은 20년 전에 나왔어야 했다. 1998년, IMF 경제 위기 한 가운데에서 DJ가 집권했다. 그 때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여전히 남성 엘리트들의 시대였다. 좌파든 우파든, 좋은 대학 나오고, 10대 때 공부 잘 했던 남성들이 모든 것을 쥐었다. 우리는 아주 짐승처럼 살 거나, 그보다는 약간 덜 짐승처럼 살 거나, 둘 중의 하나의 길을 걸었다. 70년대나 80년대나, 교활하거나 약간 덜 교활하거나, 그런 사람들에게 유리한 시대였다.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 하겠나?
그 얘기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21세기가 온다는 것이 왜 여성의 문제이기만 한 것인가? 이렇게 물어볼 수는 있다. 노동운동, 인권운동, 환경운동, 평화운동, 심지어는 지역의 작은 풀뿌리 운동까지, 내부의 성폭행, 성희롱 사건으로 골머리 한 번도 안 썩어 본 단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할 정도 아닌가?
우리의 몸만 21세기로 왔지, 정신과 영혼 모두 20세기 저 언저리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낭만과 행복도 심지어는 개수작까지, 우리는 20세기형 인간들이었다. 첫사랑, 그리움, 아름다웠던 추억들과 함께 개수작까지, 우리 몸에 훈장과 상처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게 떨어질까? 잘 안 떨어진다.
3.
내가 가장 최근에 본 성희롱 사건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내 주변의 사람들과 친한 변호사들까지 붙어서 같이 고민한 사건이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우리는 편의상 그를 '성희롱'이라고 불렀다.
과거의 일은 차치하고, 내가 이 일을 알게 된 것은 4년 정도 되었다. 직원 회식이 있던 날, 성희롱은 비정규직 직원을 회식이 있다고 불렀는데, 막상 도착해보니까 유흥 주점이었다. 그곳에 성희롱과 여성은 단 둘이 있게 되었다. 회사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아주 큰 회사의 자회사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회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대표적 회사인 것은 맞다. 성희롱은 정규직이었고, 행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많은 성희롱 사건은 술이 중간에 끼지만 이 사건은 술과는 상관없이 사전이 계획된 것이다. 구조적이고 상습적인 사건에 대해서 이 일을 접하게 된 우리 모두는 많은 충격을 받았다.
많은 여직원들이 이 일을 더 이상 묵과할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회사에서 생겨난 이 일에 본사의 오래된 여직원들이 사건에 개입하였다. 고졸 출신으로 이제는 간부가 된 선배 여직원들이 여성을 만났고, 자신들의 얘기를 해주면서 위로도 하고 힘도 보탰다.
며칠 후 성희롱은 여성의 집을 찾아갔고, 부모를 만났다. 그래서 결론은? 비정규직인 여성은 퇴사했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덮여졌다. 자회사는 감사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여러 경로로 본사 감사실로 제보가 들어갔다. 자회사는 감사가 별도로 없기 때문에 감사업무를 행정이 담당하는데, 성희롱이 바로 그 감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었다. 자기가 자신을 감사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모든 사건은 종료하였다.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움직이기 전에 외부의 제3자가 실제로 사회에 공개하는 일 외에 행정적으로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 법률적 자문 결과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성희롱은 우리 말 그대로, "잘 먹고 잘 산다." 20대 비정규직 여성, 30대 파견직 여성, 이들은 누가 보호할 것인가? 방송을 하면서 톨 게이트에서 근무하는 파견적 여성들의 성희롱 사건들을 접하게 되었다. 노래방 2차 등등 차마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진짜로 형편무인지경의 일들이 비정규직 여성과 정규직 남성 특히 관리직 남성 사이에서 횡행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펼쳐진 21세기였다. 70년대 서울에 일하러 온 '공순이들' 사건은 소설에서만 접했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늘어나지만 비정규직 비율도 함께 올라간다. 눈 감고 있는 것 외에 우리가 무슨 일을 했나? 이제 50이 된 우리들이 행정직을 하고 중간 관리자를 하는 시기에 벌어진 일들이다. 우리는 약간 비겁했거나, 많이 비겁했거나, 그렇게 40대를 보냈다. 성희롱의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조직에서, 그걸 관리하고 처리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 많은 비정규직을 포함한 여성들의 성폭행과 성희롱 사건을 누가 덮고, 누가 쉬쉬했겠나? 우리는 아무도 이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1세기? 직원 회식한다고 나갔더니 유흥주점에 행정직원이 혼자 기다리고 있는 그 황당한 사건을 경험한 비정규직 여성에게 물어보라. 이게 21세기냐?
4.
우리 모두가 완벽하게 무오류이며 무결점이 되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잘못도 하고, 가끔은 너무 미안하고 창피한 실수도 한다. 사랑과 추행이 밀리미터 단위로 잴 수 있는 그런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주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거나 그리워하는 것,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아름답게 생각했던 짝사랑, 거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지금 기준으로는 스토커다. 이젠 더 이상 아름답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발만 더 나아가면 경범죄, 주거침입죄, 협박죄, 이런 처벌이 따를 수도 있다. 사랑한다고 계속 이메일 편지를 쓰면 법은 사이버 스토킹으로 규정한다. 그리운 마음은, 그야말로 마음만... 그게 21세기다.
70년대든 80년대든, 남성 엘리트 사회를 모델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왼쪽에 설 것인가, 오른 쪽에 설 것인가, 위계가 확실하고, 위아래가 질서 정연한 사회 모델이다. 우리는 몸만 21세기로 왔지, 위 아래 구분을 철저하게 지키는 그 20세기적 위계 질서를 그대로 가지고 왔다. 얼래? 그런데 사회적 기준이 변했네? 70년대가 보수의 시대라서 그렇다고 치자. 그들은 늘 자기 자리에 있고 싶어했다. 시대보다 뒤에 있는 것, 그들에게 흠도 아니다. 우린, 원래 이래요! 80년대는 진보의 시대를 상징한다. 그러나 어느덧 우리도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시대가 변했다. 우리는 집단적으로, 정서적으로, 시대보다 뒤에 놓이게 되었다. 그게 강남역에서 시작된 21세기의 서막이다.
우리가 술 마시면서 즐겁다고 하는 옛날식 유머, 반 이상은 이 시대가 성희롱이라고 부르는 내용들이다. 학술적으로 얘기하면 아나싱크로니, 시대착오다. 부드럽게 얘기하면 개저씨들의 아재 개그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말하면, 개수작들이다. 그런데 그런 농담을 안 하면 왠지 경직된 것 같고, 노는 것 같지가 않다. 그게 우리가 맞게 된 50대다.
공부 같이 한 친한 친구가 있었다. 정말로 친했고, 1년 정도를 붙어 다닐 정도로 너무너무 친했다. 그 친구는 이대를 꼭 '계화여대'라고 불렀고, 기생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했다. 약간 어색하기는 했는데, 그 시절에는 정색을 하면서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냥, 시골 출신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그러고 넘어갔다. 지금 그런 말 하면 큰 일 난다. 공식적으로 내가 대학에 연구원으로 등록된 마지막 직장이 이화여대였다. 마지막 대학원 강의도 이대에서 했다.
우리가 20세기에 두고 왔어야 하는 건데 21세기로 가지고 온 것은 우월감이다. 그걸 거기에 두고 왔었어야 했다. 그러나 희망의 21세기, 밀레니엄이라고 하는 데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이것저것 다 싸질머 매고 21세기로 왔다. 정작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큰 일 난다는 얘기를 하면서 20세기적 가치를 너무 많이 가지고 왔다. 수많은 성폭행과 성희롱 사건의 핵심에는 우월감이 있다. 그 반댓말은 평등이다. 한 때 사회가 우리를 '평등파'라고 부를 정도로, 진짜로 평등, 평등, 평등만 외쳤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성에서, 단 한 번이라도 평등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나는 경차를 몇 년간 타고 다니면서 평등의 소중함을 배웠다. 평등하게만 대해주세요... 생각해보니까 나도 늘 우선순위였고, 특별 대우를 받고 살았다. 힘들어? 뭘 잘 몰라서 했던 찌질한 변명에 불과하다. 경차를 타고 나서야 삶의 평등, 일상성의 평등, 이런 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국의 수많은 조직의 관리자와 의사결정자들은 곧 우리 또래, 내 친구들이 될 것이다. 더 이상 성폭력 은폐 사건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는 더는 할 변명이 없다. 그래야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 정도에 맞춰서 겨우겨우 변한 것이 된다. 그게 엄청난 일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50대가 되어서도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리워할 수도 있다. 못 견디게 그리울 수도 있다. OECD 평균 혼외출산율이 40% 정도 된다. 이혼하는 것도 사회적으로는 아무 문제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평등한 것이어야 한다. 평등한 영혼의 평등한 사랑, 그것이 21세기가 시작되는 출발이다.
21세기는 평등의 세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21세기가 가장 결핍한 요소가 평등이기 때문이다. 20세기는 차별이 늘어나는 시대였다.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경제적인 요소가 더 많아졌다. 그래서 21세기는 평등을 갈구하고, 평등을 찾는 시대가 될 것이다. 순실이도 민주주의라는 말은 알았다. 그러나 순실이가 평등이라는 단어를 알았겠나? 그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봤겠나? 에이 21세기인데, 평등 같은 그런 옛날 말이! 아니다. 순실이와 순실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단 하나의 개념은 바로 평등이다.
1994년, 시인 최영미는 때리지 말라고 노래했다. 그 얘기가 21세기적인 것이다. 그 노래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정말로 그 노래가 사회의 핵심으로 가는 시대가 열린다. 우리는 그 시대를 열지 않았다. 너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여성 비정규직, 여성 조교, 여성 작가, 여성 스탭, 이들과 평등할 수 있는가? 누구에게 우리처럼 하라는 시대는 20세기에 끝났다. 이제 우리의 21세기가 시작된다.
여기에 와야 한다. 그래야 다음 길이 열린다. 그게 우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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