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륜 구동 승용차 스텔라, 한국 중산층 논의의 시작을 알렸다...)
스텔라 인생관의 종말과 통닭집 사장
1.
"20대에는 20평 아파트에 엑셀을, 30대에는 30평 아파트에 프레스토를, 40대에는 40평 아파트에 프레스토를 타고 살았으면 좋겠어. 전세든 자기 집이든 그건 상관없고. 그리고 그 때 그 때 전자 제품 좀 살 수 있고. 난 그렇게 좀 인간답게 살았으면 좋겠어."
89년에 친구가 했던 말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엑셀은 악센트, 프레스토는 아반떼, 스텔라는 쏘나타 정도 된다. 그 시절에는 차가 흔하지는 않았으니까 차가 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는 산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다른 친구가 얘기했으면 그게 인생 목표냐고 뭐라고 한 마디 쏴붙여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걸 얘기한 친구는 대학 시절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상황이었다. 그 때는 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그 정도 생각했다. 게다가 그 시절에 우리 아버지가 타던 차가 바로 그 스텔라였다. 내가 여기에 뭐라고 보탤 말은 없었다.
80년대 대학생들의 가정은 지금보다는 어려웠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지금에 비할 것은 아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드물게 사장님 아들을 제외하면 정말로 힘든 농가에서 온 경우가 많았다. 서울이라고 해서 사정이 딱히 낮지는 않았다. 집이 없는 친구들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집이 너무 가난해서 자기만이 아니라 아직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들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막 넘어서는 시점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시점에는 1인당 국민소득 2,800달러, 막 3천 달러를 바라 보는 순간이었다. 3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의 경제는 10배 정도 커졌다.
대학 진학률도 많이 높아졌다. 20% 내외였던 대학진학률이 80% 가깝게, 4배 정도 커졌다. 주가소유율은 비슷하다. 1950년대에는 국민의 80%가 자기 집에 살았다. 박정희 시절부터 자기 집에 살지 않는 국민이 급격하게 늘기 시작해서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시절 58% 정도의 국민이 자기 집에 살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 수치는 거의 비슷하고, 약간 줄었다.
모든 대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20대에는 20평, 30대에는 30평, 40대에는 40평 아파트를 사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 때 등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군인들의 시대가 만들어놓은 삶의 방식이다. 요즘은 이걸 중산층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를 하지만, 80년대에는 중산층 개념은 지금처럼 광범위하지는 없었다. 나중에 분석해 본 결과로, 바로 이 시기에 한국이 중산층이 형성되고 있었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중산층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부자와 서민, 한국에는 이 두 개의 집단만이 있는 듯했다.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를 서민이라고 생각했다. 그 서민의 일부가 분화해서 지금의 중산층이 되었고, 나머지는 그냥 가난한 사람이 되었다. 1997년 12월 이후에 벌어진 그 엄청난 현상을 그 시절의 우리는 아직 몰랐다.
나는 20대에 20평 아파트에 엑셀, 30대에 30평 아파트에 프레스토, 40대에 40평 아파트에 스텔라를 타겠다는 그 마음을 '스텔라 인생관'이라고 불렀다. 그래서인가? 내 친구들은 취직하자마자 엑셀들을 엄청나게 샀던 것 같다.
지금 평범한 대학생들이 20대에 20평. 30대에 30평, 40대에 40평, 그렇게 살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차를 사고, 그리고 식구들을 위해서 더 큰 아파트를 사겠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대학생이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파트는 커녕, 대학생 자동차 면허 취득 비율도 줄고 있다.
80년대에 많은 대학생들이 꿈꿨던 스텔라 인생관, 그것은 이미 한국에서 종료하였다. 대학생들의 꿈은 이제 더 소박하고, 더 작아졌다. 50이 될 때까지, 아마 다들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처음에 이 얘기를 나에게 했던 내 친구도 자신이 생각한 것과 거의 비슷하게 살았다. 그도 진짜 열심히 살았다. 가끔은, 너무 열심히 산다고 걱정이 들 정도였다.
우리가 열심히 살았다 치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 세상은? 중산층 2세가 다시 중산층으로 재탄생 할 수 없는 시대를 만났다. 바로 우리들의 자녀에 대한 얘기다. 열심히? 너무 열심히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텔라가 아니라 강남 쏘나타로 불리는 렌서스나 아우디를 탔다고 치자. 강남 산테페로 불리는 레인지로버 이보크 아니 디스커버리를 탔다고 치자. 그러면 인생에 행복만이 남을까? 50이라는 나이는 우리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책임을 지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세상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다. 집단적으로, 집체적으로 말이다.
2.
87년 대선이 끝나고 전두환의 친구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다. 어차피 술은 마시는데, 이 핑계 대고 마시고 저 핑계 대고 마셨을 뿐이다. 그 선거가 끝나고 참 많이들 울었고, 술도 많이 마셨다. 그 때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 진짜 좋은 세상 만들자."
그 때 뭐 별 거 알지도 못했지만, 힘이 없는 게 너무 아쉬웠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정말 억울했다. 이탈리아 좌파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감옥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걸 '헤게모니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괜찮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사회에 더 많이 진출해서 세상을 좋게 만들자, 그 정도 얘기로 짧게 요약할 수 있다. 아주 틀린 얘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 맞는 얘기도 아닌 것 같다. 이탈리아는 마피아 혹은 그림자 권력 같은 것으로 설명하는 게 더 편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는 결혼이 좀 늦었고, 아이는 그것보다 훨씬 늦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자녀들이 어느덧 대학에 가거나, 고등학생이 되는 동안, 약간은 비켜서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출판계에서는 한국의 출판의 미래에 대해서 아주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386의 자녀들이 10대가 되고, 20대가 될 것이니까, 교양 서적과 사회과학 서적 등 소위 양서, 좋은 책들의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들 했다.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내 친구들이 부모가 되자, 원정출산이 생겨났다. 미국 본토까지는 못 가더라도 하와이에서 아이를 낳아서, 태어날 때부터 미국 국적을 주는 현상이 유행했다. 견디다 못한 미국에서 원정출산을 제한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걸 피해서 아예 몇 달 전부터 하와이 등 외국에 미리 가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걸 위해서 방을 빌려주는 렌트 사업이 다시 유행을 했다. 건너 건너 아는 미국인이 하와이에서 몇 년 전에 그 사업을 시작했다. 큰 떼돈은 아니더라도, 괜찮게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이게 뭐냐!
죽어라고 대치동까지 가고, 그게 안되면 지역의 비싼 학원이라도 가는 흐름을 내 친구들이 선도했다.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 열풍을 주도한 사람들, 그게 어디 다른 외계나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386들이 부모가 되면서 생겨났거나 강화된 현상들이다. 우리는 두환의 과외 금지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과외 안하고 자란 첫 세대다. 그래서 그들이 부모가 되면 자연스럽게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한 교육 전문가들도 있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다. 딱 그 모양이다. 이게 뭐냐!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것과 삶의 일상성은 좀 다르다. 우리의 정신은 고상한 것을 추구했을지 몰라도, 집단적으로 우리의 일상성은 개판이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우리는 모두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다. 일부는 아주 열심히 스텔라 인생관대로 40대 아파트를 위하여 뛰었다. 그렇지 않고 정말로 민중단체나 시민단체에서 자신의 인생관대로 살아온 친구들은 대부분 도시 빈민이 되었다.
내 주변을 잠시 돌아본다. 아주 잘 사는 친구들이 있다. 성공한 친구들은 돈을 아주 많이 벌었다. 그렇지만 평생 먹고 사는 것으로부터 벌써 벗어난 친구들은 얼마 없다. 그리고 정말로 많은 도시빈민들이 있다. 나머지는 다 비슷비슷하다. 거기서 거기다. 집단적인 정치적 지향성은 민주당 대부분, 정의당 생각보다 많이, 그리고 아주 극소수의 녹색당, 그 정도다. 그렇지만 삶도 그렇게 이념적으로 나누어지지는 않는다. 간단하게, 자녀들에게 극성으로 과외를 시킨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로 나누어진다. 그러면 대충 절반 절반 정도로 나뉘어진다.
우리들의 50대는 어떻게 될까? 불행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20대 때 50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스텔라 인생관도 40대에서 끝난다. 그러면 50대에는 50평, 60대에는 60평? 그렇게 자세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미 40평대 아파트를 가지고 최소한 쏘나타 정도는 탄다면 승, 아직도 그 정도의 최소한의 중산층 자산을 만들지 못했다면 패, 이렇게 되는 것일까? 승자승, 패자패, 우리를 기다리는 50대는 이런 모습일까? 적어도 지금까지 한국의 50대들이 살아온 방식은 그랬다. 그들은 MB와 근혜를 구세주처럼 여기면서, 아파트값이 오르기를 불공 들였고, 동네에 큰 개발 사업이 떨어지기를 바라면서 새벽 기도회에 나갔다.
앞으로도 승자승, 패자패, 50대에는 더 이상 변화가 없는 시대가 계속 될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진 거다. 이미 이긴 얼마 안 되는 친구들이 그들의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물려주겠다고 움켜쥐고, 나머지는 자신은 물론 자신의 자녀들까지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 그건 이미 우리가 진 거다. 그리고 우리가 졌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평균적으로 50년을 더 살아야 한다.
20대, 우리는 결혼할 생각은 했지만, 자녀는 아직 없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식만 살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앞의 50대들은 그렇게 살았다. 우리도 그렇게 살 것인가? 윤리적이거나 사회적인 필요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간단한 게임 이론이다. 전체를 위한 공동의 해법은 그냥은 도달할 수 없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 (2001년)>의 수학자 내쉬가 증명한 것이고, 그걸 내쉬 균형이라고 부른다. 우리 앞에 있던 50대가 살았던 그 삶이, 죄수의 딜레마와 비슷한 내쉬 균형이다. 이걸 지금부터 우리가 깰 수 있을까? 87년에 전두환 앞에서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시대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때와 논리적이고 구조적으로 상황은 같다. 그 때는 우리의 청춘이 걸려 있었고, 지금은 우리의 자녀가 걸려 있다. '내' 청춘이냐, '우리 모두의' 청춘이냐, 이게 87년의 구조다. '내; 자녀냐, '우리 모두의' 자녀냐, 지금 이게 우리가 부딪힌 게임의 구조다. 조금만 틀을 바꾸면, 우리는 많이 바꿀 수 있다.
4.
40대에 40평 아파트와 스텔라를 위해 죽어라고 달려가는 스텔라 인생관은 이미 몇 년 전에 종료했다.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
원래의 이 프로그램은 40대까지 최대한 에너지를 축적했다가 50대가 되면 다시 그걸 팔아서 일부는 자녀에게 주고, 나머지는 평생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동물 생태학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많은 동물들은 새끼를 낳는 과정에 에너지의 거의 대부분을 사용한다. 그걸 위해서 몸의 다양한 부분에 지방과 같은 에너지들을 축적한다. 80년대부터 한국인은 그 에너지를 외부 기관에 저장했다. 그게 아파트다. 물론 모두가 이런 방식으로 살 필요도 없고, 그렇게 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최소한 지난 50년간, 한국에서는 아파트를 출산용 에너지의 축적기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점종이었다. 연어의 암컷처럼 같이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자신도 급격히 노화하면서 죽는 생명체와 다른 것은, 자기도 좀 먹고 살야아 한다는 점 아니겠는가? 인간의 2세들은 너무 약하게 태어난다. 부모도 꽤 긴 기간을 살아야 한다.
간단하게 보면, 스텔라 인생관은 DNA 정보 구조와 같다. 메인 시그널은 딱 두 개다. 아파트와 자본, 큰 집을 가지고 싶은 본능은 아파트로부터 나오고, 좋은 차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자본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이 두 가지의 본능을 가지고, 나머지 소소한 문제들을 해결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이 본능을 뛰어넘어 공공의 선을 위해서 생각을 한다. 나쁘게 표현하면 집단 현상이다. 좋게 얘기하면 종 폴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 같은 책에서 얘기한 인간만이 갖는 실존적 선택이다.
우리 대부분은 일상 속에서 그냥 이끌려서 행동한다. 맨 번 숙고하지 않고, 매 번 무한한 정보를 처리면서 의사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진화경제학에서는 이걸 '루틴'이라고 부른다. 거의 대부분은 루틴대로 움직이고, 그게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와 소소한 판단 오류들을 줄여준다. 스텔라 인생관, 그건 우리 윗 세대부터 우리까지 갖추게 된 루틴과 같은 것이다. 루틴을 따를 것이냐, 따르지 않을 것이냐, 그건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였다.
30대가 되면서 자기가 살던 집을 20대에게 넘기고, 40대가 되면 다시 30대에게 넘겼다. 그렇게 40대에 40평의 아파트를 가지게 되었다면?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20대들은 20평 아파트 따위는 꿈으로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집'이라는 거대한 개념이 아니라, '방'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최고의 방은, 창문 달린 방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방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시 2010년대가 되었다. 그들은 차를 살 필요도 느끼지 못했지만, 결혼 따위는 "개나 줘버려", 그렇게 되었다. 40대에 가졌던 40평은 누가 사주나? 20대가 20평 아파트를 사지 않으니, 모든 것은 지체되고, 결국에는 맨 마지막 40평 이상의 아파트에서 문제가 생긴다.
몇 년 전부터 대형평수 아파트는 거래도 별로 없고, 가격도 거의 오르지 않는다.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20평 아파트, 30평 아파트, 40평 아파트, 전세 가격이 거의 같다. 그 이상 큰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크면 클수록 관리비만 더 나오니까 결국 전세비가 같아진다. 작은 아파트에 전 연령대가 다 모여서 같은 시장에서 경쟁한다. 40평 아파트는 점점 더 애물단지가 되어간다. 앞으로 더 할 거다.
지금부터의 50대는 설령 그가 40평대 아파트를 40대에 구했다고 하더라도, 별 볼 일 없는 시대를 맞게 된다. 30년을 열심히 살았는데, 그게 아냐, 이 앞에 서게 된다. 근혜 시대에 청와대 경제수석인 우병우가 결국 감옥에 갔다. 그가 우리 또래이고, 한 다리만 건너면 알만한 사이다. 그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보다 아주 열심히 산 것 같다. 그도 별 수 없이 감옥에 갔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딜레마다. 열심히 살았어도 별 볼 일 없고, 정말로 열심히 살았으면 이제 감옥에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지낸 40대가 그랬다. 그 시절에 영웅적으로 잘 나갔으면, 이제 어려운 시대를 맞게 된다. 그 시절에 어려웠으면? 계속 어렵게 될 것이다. 40대에 블랙리스트에 올랐거나 정치적으로 어려웠다고 해서, 그 후에 보상해주거나 그런 사회는 아니다. 우리가 만든 사회의 룰은, 아주 소수를 제외하면 한 번 어려우면 계속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럼 지금이라도 슈퍼 리치가 되면?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의 30%가 다단계 판매원이다. 그 반대편에는 비트코인으로 상징되는 암호화폐가 있다. 그 양극단을 피하면? 그게 바로 온 국민이 공부를 했든 안 했든, 문과든 이과든, 결국에는 도달하게 된다는 통닭집 사장이다. 슈퍼 리치는 커녕, 골목 상권 붕괴로 슈퍼 주인도 이제는 어렵다. 그런데도 전두환은 여전히 건강하고, 여전히 잘난 척 하다. 지금 우리처럼 헤롱헤롱 살면 전두환 보다 오래 살기도 쉽지 않다. 벌써 여러 '넘' 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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