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50살이 되었다 - 버전 2
1.
스무 살, 20이라는 나이는 나에게 강렬했다. 10대 중반이 지나면서 20대가 되면 무엇을 할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렇게 기다리던 20대가 왔을 때, 그 나이는 너무너무 힘들었다. 뭘 하는지는 모르고, 그야말로 죽지 않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 30대는 20대의 연장과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30대라는 나이를 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청년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40, 마흔이라는 나이를 맞았을 때, 명박이 대통령이 되었다. 완전히 망했다. 박근혜, 아주 이상한 사람이 그 다음 5년, 아니 4년을 더 대통령 자리에 있었다. 나의 40대는 완전히 지워진 것과 같아졌다. 하는 일도 없고, 하려고 하는 일도 잘 안 되고, 그냥 버티고 지내기도 쉽지 않았다.
그 40대 마저 끝났다. 이제 정말 모든 것을 불사를 듯이 살았던 20이라는 나이로부터는 너무 멀리 왔고, 그렇다고 나중에 나이 들어서 뭘 해야겠다고 뚜렷하게 생각해둔 것도 없다.
독설가로 유명했던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있다고 하는 유명한 말이 생각이 났다.
"어영부영 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냥 버나드 쇼가 했던 말을 빌리자면, 나의 50대는 이렇게 어영부영하는 동안에 갑자기 오게 되었다. 만약 한국을 강타한 거대한 정치적 사건과 관련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50이 되었는지, 이런 것도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넘어갔을 것 같다. 그렇지만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
공교로운 일이지만 내가 50, 쉰이라는 전혀 준비하지 않은 나이를 맞았을 때 정권이 다시 바뀌었다. 순실이 사건이 터져 나왔고, 촛불집회가 열렸다. 그리고 정권이, 크게 한 번 바뀌었다. 이렇게 간절하게 정권이 바뀌는 것을 바랬던 것은 87년 12월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간절한 마음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진보와 보수라는 잣대만으로 세상이 잘 설명되지도 않고, 또 그런 기준만으로 삶을 살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한지는 오래 된다. 그렇지만 사회와 경제를 분석할 때, 어쨌든 많은 여론 조사를 참고하게 된다. 여론조사를 읽는 여러 가지 축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직업별 구분이다. 그리고 그걸 보수라고 읽든 혹은 우파라고 읽든, 직업 분류에서 기본적인 축을 형성하는 세 가지 직업군이 있다. 농민, 전업주부 그리고 자영업, 이 세 가지의 직업 분류는 한국에서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기준이 연령별 기준이다. 연령은 보통 50대를 축으로 진보/보수가 바뀐다. 그 위로는 아주 보수적이고, 그 밑으로는 진보적이다. 물론 직업군이든 연령별 기준이든, 평균 개념이라서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던 2012년 대선에서 50대 투표율은 82%였다. 가공할만한 투표율이었다. 그 때 가장 적은 투표율을 기록한 20대 후반은 65.7%였다. 흐름만을 놓고 보면 20대도 덜 투표한 것은 아니다. 3명 중에 2명은 투표를 했으니까, 절반이 할까 말까하던 이전 추세에 비하면 늘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2012년 한국의 50대는, 후덜덜, 무시무시했다. 한 세대가 80% 이상 투표한 것이다. 정말 아픈 사람, 급하게 해외 체류 중인 사람, 이런 긴박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 말고는 거의 다 투표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호카이도나 동경에서 했던 국제 세미나에서 이 얘기를 했더니, 외국의 전문가들이 내가 준비한 자료들을 다시 부탁했다. 82%, 쉽게 보기 어려운 투표율이다. 2012년까지 50대 위와 아래, 한국은 그렇게 나이를 경계로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명실상부, 50대는 한국의 주인이 되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한국의 당정 그리고 여야가 가장 먼저 합의해서 시행한 일은 55세였던 정년을 60세로 올리는 일이었다. 그 때 그 유명한 소위 58년 개띠들이 55세였다. 각 직장에서 정년을 맞은 58년 개띠를 비롯한 50대는 한국을 잠시 움직였다. 한국에서 여당과 여당이 이렇게 금방 합의에 도달한 것은, 정말로 처음 보았다. 정치인은 아무도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급행열차처럼 속전속결로 행정기구들이 움직였지만, 58년생들이 혜택을 보지는 못했다. 시행을 위해서 약간의 시기가 필요했고, 민간 회사들까지 기준을 적용하려면 조금은 더 협의가 필요했다. 58년 개띠들이 제도의 수혜를 받지는 못했지만, 결국에는 공기업 등 많은 기구의 정년이 더 위로 올라갔다. 그 시절의 50대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받아냈다.
그리고 다시 5년이 흘렀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정치적으로는 한국의 50대가 변했다. 그 사이에 내가 50대가 되었다. 내 친구들도 50대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일방적으로 박근혜를 찍는 50대는 아니다. 전두환이 만든 정당이 민주정의당, 민정당이다. 그 후 민자당 시절을 거치고 다시 천막 당사 이후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바꾸고 또 바꾸고, 이름 좀 익숙해질 때면 바꾸었다. 지금은 자유한국당이라는 이름을 쓴다. 얼마나 이 이름이 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나나, 내 친구들이 전두환이 만든 정당에 투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나도 대충 살았고, 내 또래의 친구들이라고 그다지 열심히 산 것 같지는 않다. 욕 먹지 않을 정도만 해도 괜찮을 텐데, 그 정도도 못 산 녀석들도 많다. 그렇지만 전두환과 그를 승계한 사람들에게 투표하기는 쉽지 않다. 그건 큰 결심이 필요하다. 워낙 강렬하게 지냈던 순간이 있어서 그렇다. 나와 내 친구들이 공유한 기억은 아주 강력하다.
한열이가 쓰러지던 날, 나는 몇 십 미터 뒤에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며칠간, 한열이 아버지의 호위를 맡게 되었다. 그 시절의 강력한 기억을 잊기는 어렵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던 친구도 있고, 조금 더 먼 곳 혹은 아주 멀리 떨어진 부산과 광주 같은 곳에 있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로부터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던 6개월 정도의 기간, 한국에 살았던 많은 그 또래의 사람들은 그 기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런 정도의 강렬한 기억은, 잊혀질 종류의 성질은 아니다. 물론 그 순간을 부정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입장을 바꾸거나,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망각되기에는 너무나 강렬한 기억이다.
한열이가 살아 있었으면 지금 50이 되었을 나이다. 그는 떠났고, 나는 살았다. 그렇다고 그와 내가 엄청난 관계였던 것도 아니다. 위아래 층에 동아리 방이 있던 사이라서, 기타 빌려오고 빌려가고, 그런 선배들 심부름하면서 잠시 마주쳤던 정도다. 그래도 인근 거리에서 같이 생활하던 친구가 몇 십 미터 앞에서 최루탄 파편을 맞고 눈 앞에서 죽던 순간을 잊기는 어렵다. SY44, 그 때 경찰이 썼던 최루탄 발사기의 이름을 잊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도 주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영부영, 그 시절에 한열이와 같은 또래로 그 시대를 보냈던 사람들이 50대가 되었다. 50대, 한국 정치에서 연령에 따른 세대 연령이 강력해지면서 핫코너가 되어버린 사회경제적 분류 기준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난공불락 같던 50대가 변했다. 물론 사람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냥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내가 50이 되었고, 내가 한국에서 가장 보수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바로 그 나이 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누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기획하거나 준비한 것도 아니다. 그냥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변화가 공교롭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엄청난 사회경제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전두환의 민정당을 계승하는 정당이 대규모로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다시 집권을 하기는 쉽지 않다. 자, 그럼 다 된 건가? 조금 빠르든 조금 늦든, 세상이 결국에는 좋아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3.
별로 좋아하는 표현도 아니고, 그렇게 선호하는 분류도 아니지만, 어쨌든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 소위 '80학번들'이 지금부터 한국의 주류 집단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지금 한국 사회의 설계 구조상, 50대가 사회 대부분의 조직에서 주요한 직책에 있을 것이라는 점은 동어반복적인 얘기다. 크게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다. 정년 되고도 하는 기관장과 같은 일부 자리들이 70대에게까지 개방되지만, 이건 박근혜 시대에 아주 특수하게 열린 공간이다. 대학의 교수만 정년이 65세로 조금 더 늦지, 한국의 많은 기관들은 50대에 올라갈 수 있는 거의 마지막까지 다 올라가고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민간 기업들은 이미 50세 전에 자신의 거취를 선택하도록 종용하는 분위기다. 말이 좋아 선택이지, 이미 그 시점에 자신이 더 올라갈 수 있을지 아닐지, 어느 정도는 알게 된다.
좀 잔인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미 한국에서의 삶은 최소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50살에는 변동성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미 많은 것들이 결정되어 버렸다. 더 위로 올라갈지, 아니면 이제부터라도 다니던 직장에서 물러나서 또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어느 정도는 거의 결정이 끝난 나이다. 물론 더 위로 올라갈 수도 있고, 언제라도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확률이 아마 가장 낮은 나이가 50대일 것 같다.
우리가 가장 평등한 것은 태어났을 때 아닐까? 처음 태어나서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 그 때만큼은 우리는 평등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점점 평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21세기 한국, 삶은 전혀 평등하지 않다. 삶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그게 한국적 삶이다. 60이 넘고 은퇴를 하면 우리는 다시 조금 평등해진다. 이제는 몸도 아프고, 기력도 떨어진다. 남은 격차는 그야말로 돈 밖에 남지 않는다. 그 때부터 점점 더 평등해져서 죽음 앞에서 다시 완전히 평등해진다. 물론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죽는 것도 아니고, 남겨진 사람들의 삶이 같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건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눈 감는 순간, 자신이 평생 쥐고 있던 것들,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다.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평등해지고, 죽고 나면 이제 신 앞에 완전히 평등해진다. 살아서 뭘 좀 열심히 하면 신의 눈에 좀 의미 있어 보일까? 공평하다. 목사와 같은 사제나 스님들이 일반인들 보다 천당에 갈 확률이 높을까? 모를 일이다. 신의 눈 앞에서는 다 부족한 존재들이고, 죄인들 아니겠는가? 거기서 거기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서 평등한 상태로 돌아간다.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서 산 사람들이 뭔가 하기는 한다. 어떤 사람은 동상이 되고, 어떤 사람은 건물이 된다. 그렇지만 그건 다 산 사람들이 자기들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이미 죽은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2017년 가을, 추석 때에 벌어진 모녀간의 작은 에피소드가 많은 사람을 웃겼었다. 엄마는 제사를 지내는데, 이미 다 큰 딸은 별로 제사 지내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상을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고 어머니가 말을 했다.
"엄마, 조상한테 복 받은 집은 지금 다 공항에 있어. 추석 때 외국 못 가고 제사 지내는 집들은 다 조상 복 없는 집들이야."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집단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제사를 열심히 지내는 것과 소위 조상의 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열심히 제사 지내는 사람들은 여전히 열심히 제사를 지내지만, 진짜로 조상의 복을 받은 사람들은 제사 따위는 지내지 않고 긴 연휴에 외국을 나가게 되는 것 아닌가? 한글날과 개천절 그리고 대체 휴일까지 끼어서 열흘 간의 긴 연휴였다. 꼬박꼬박 제삿밥 얻어 먹으면서 후손들에게는 아무런 복을 주지 않는 조상과, 복은 이미 줬고 제사 같은 건 괜찮으니 해외여행이나 다녀오라고 한 조상, 난데 없이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조상을 놓고 어느 조상이 더 나은 것이냐, 품평회를 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떠난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은 결국은 산 사람들의 일이다.
평등하게 태어나서 결국 평등으로 돌아가는 그 한 가운데에서 격차가 가장 큰 시절, 그게 한국의 50대일 것 같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가 가장 큰 나이이기도 하고, 앞으로 좋아질 일만 남은 사람과 나빠질 일만 남은 사람들이 같은 나이로 분류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이미 많이 온 사람은 지금까지 온 탄력으로 더 멀리 갈 것이다. 그리고 아직 해놓은 게 거의 없는 사람은, 지금까지 오던 흐름대로, 이제는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이미 덩치가 너무 커져버렸다. 방향을 바꾸기 어렵고, 잘 바뀌지도 않는다. 그리고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기를 중심으로 고민을 하기도 쉽지 않다. 식구들이 늘었고, 자신의 존재는 그렇게 큰 의미도 없다. 아이들 생일은 알아도 자기 생일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그게 50대다.
4.
나에게 50은 어영부영 왔다. 결혼하고 9년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4살, 6살, 두 아이를 돌보다가 갑자기 50이 와버렸다. 나를 돌아보거나 나에 대한 준비를 할 시간이나 여유는 전혀 없었다. 곤죽이 된 몸으로 그냥 쓰러져 자다 보면 다음 날이 와 있다. 하루하루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하루를 보낸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은 뭉텅이로 지나간다. 일 주일, 한 달, 그런 시간의 구분도 거의 의미가 없다. 50이 될 때까지 살아 남았다면 누구나 50이라는 나이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 식구들과 혹은 직장에서 복닥거리느라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개인으로서는 아무 사건도 아니다. 백일, 돌, 이렇게 태어났을 때 기억하게 되는 날짜들이 몇 개 있다. 주민등록증 발급일, 첫 투표일, 성년식, 청년이 되면서 기억할 만한 일이 또 몇 개 있다. 그리고 점점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게 되다가 환갑이 되면 다시 아직도 살아있는 것을 기념하는 날을 갖는다. 50대,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아무 것도 아닌 나이다. 아직 어리거나 너무 늙었거나, 그 중간에 끼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 그랬다. 한 마디로, 별 것 아닌 나이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가 50이 되었든 말든, 50세 생일이든 아니든, 가정에서나 사회적으로나 아무 사건도 아니다. 심지어 50에는 연애도 드물다. 서로 사랑해서 생일 선물을 하면서 전혀 새로운 삶을 기대하는 그런 일도 아주 드물다. 우리의 일상에서 놀랄만한 일은 그렇게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50, 더더군다나 그렇다.
그러나 개체로서의 50대의 소소함에도 불구하고 집체로서의 50대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50대는 사회경제적 범주 즉 집체로서 언제나 보수적이었다. 그건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고, 변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나침반 같은 것이었다. 50대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 위와 그 아래를 살피고, 그 다음에 각 직업별 선호도 같은 것들을 가감하면 대체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선호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보수의 기준점, 그것은 50대였다.
정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문화도 그렇다. 굳이 좌우 혹은 진보나 보수라는 기준이 아니더라도, 문화 분석 등 많은 것의 변곡점이 50대다. 갤럽에서 매년 문화 분야에 대한 조사를 한다. 50대는 몇 년째 <안동역>에서 1위를 고수하는 중이다. 역주행했다. 나는 안동역이라는 노래를 모른다. 내 친구들도 거의 모른다. 50대는 트로트와 노사연을 좋아한다. 20대는 댄스그룹을 좋아한다. 트로트와 댄스, 힙합과 노사연, 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강 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흐름은 비가역적일 것이다. 40대로 내려가면서 트로트에 대한 선호가 급격히 떨어지고, 30대 이하에서 트로트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50대에서의 트로트 선호도 빠른 속도로 내려갈 것이다. 트로트의 시대가 한국에서 다시 올 가능성은 없다. 2017년 한국의 10대들이 가장 선호한 가수는 방탄소년단과 레드벨벳이다. 그들이 40대나 50대가 되었을 때 트로트를 집단적으로 선호할 가능성은 제로, 0이다.
트로트와 홍준표가 이끌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문화적이고 정서적으로 같은 추이를 따라간다. 트로트로 상징되는 보수의 본진, 그 상징이 태극기로 바뀐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다. 그들은 늙어가고 있고, 연령적으로 확산되지 않으며, 트로트와 함께 주변부화하고 있다. 트로트가 사라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연말에 가요대상을 타는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나와 친구들의 50대는 어영부영 왔다. 그렇지만 이 흐름은 지금까지의 한국을 쥐고 흔들었던 보수들이 중심지에서 소멸의 길을 걷게 되는 큰 흐름의 첫 신호일 뿐이다. 87년을 기점으로 하면 30년 만에 노태우의 승리가 박근혜와 홍준표의 패배로 나타난 것이다. 한 세대를 보통 30년 기점으로 잡는다. 한 세대 이후, 최소한 정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흐름을 가지게 되었다.
시작은 어영부영이지만, 그 효과도 어영부영, 그렇게 잔잔한 것은 아니다. 정권을 넘기는 것은 10년에 한 번 정도는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흐름은 그렇게 10년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 경제학자 콘트라티에프가 얘기한 장기적 흐름 즉 장기 파동은 50년을 주기로 움직인다. 설마 이 흐름은 50년짜리? 지금의 50대가 50년 후에도 살아있을까? 어쨌든 20세기 이후로 경제는 50년이 아니라 30년 주기로 움직인다고들 얘기한다. 30년이든 50년이든, 경제적 흐름에서의 장파동이라면 한국에서 보수의 본진은 그야말로 괘멸적 타격을 받는다. 우째스까! 다행인 것은,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소한 전두환 이후로 한국을 움직인 사람들이 트로트와 같은 상징에 갇혀 소멸의 위기를 겪는 것은 내가 걱정해야 할 일은 아니다. 홍준표나 그를 승계한 사람들이 걱정할 문제다. 우리가 해야 할 걱정은 좀 다른 문제다. 몇 년째 한국 50대들이 최고로 선호했던 노래 <안동역>을 사랑하던 그들과 함께 소멸할 것이 아니라면, 고민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의 50대가 선호하는 노래가 트로트 <안동역>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로 바뀐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트로트나 김광석이나, 어차피 방탄소년단과 너무너무 먼 곳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20대의 눈으로 볼 때, 그야말로 트로트나 김광석이나,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아저씨인 것은 마찬가지고, 꼰대인 것도 마찬가지다.
5.
10년 전의 50대와 앞으로 올 50대는 정치적 성향도 다르고 문화적 감성도 다를 것이다. 우파 시대에서 좌파 시대로의 전환 혹은 보수 50대에서 진보 50대, 엄청나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건 그냥 하는 얘기다. 청년들에게 존경 받지 못하는 50대, 아니 존경은 고사하고 혐오라도 덜 받는 50대, 이건 이제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저 먼 곳에 있는 꿈이다. 그렇다. 그냥 우리는 아재를 뛰어넘어 그냥 개저씨로 늙어갈 확률이 높다. 기다리면 세상은 좋아질까? 먹이 피라미드의 맨 위에 있는 아저씨들이 그냥 잘난 척하면서 뒤로는 자기 것 다 챙기는 사회가 좋아질까? 그럴 리가 있는가?
한동안 50대들은 전쟁에서의 맹활약을 내세웠다. 그리고 지금은 학생 운동에서의 이력을 내세운다. 맹활약했던 50대, 이런 건 바뀐 적이 없다. 프랑스와의 차이라면 일제와 싸웠던 맹활약을 자기가 존경 받아야 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50대가 없었던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일제가 일찍 망할 줄 알았나?" 대표적 친일파로 사람들이 분류하는 춘원 이광수가 남긴 말이다. 춘원은 50년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죽었다. 그 친일파들이 빨갱이 잡은 전설을 가지고 평생을 우려 먹으면서 살았다. 그게 이 나라의 전통이 되었다. 50이 되면 자신이 젊었을 때 맹활약한 전설을 우려 먹으면서 힘과 권력을 틀어쥐게 된다. 해방 이후로 이 흐름은 크게 바뀐 게 없다. 전쟁에서 민주화까지, 메뉴만 바뀌었지, 50대가 된 기득권이 사회가 자신들을 존경해야 하는 이유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20대 청년들이 50대를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뭔가 바뀐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50대가 바뀐 것일까? 개인으로서의 50대, 삶의 방식으로서의 50대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누구나 50대가 되면 기성세대가 되고, 자식 걱정하는 부모가 되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소소한 부정 같은 것은 쉽게 눈 감는다. 그리고도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존경 받는다. 그게 한국의 50대가 살아간 방식 아닌가? 한국에서 삶의 방식으로 50대는 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바뀐 건, 20대가 바뀌고 30대가 바뀐 것인지 모른다. 그들의 이런 변화도 너무 당연하다.
당신이 해준 게 뭐가 있는데, 이렇게 꼰대 짓이야? 재수없어, 꺼져버려.
50대가 존경 받는 시대? 그런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나이 먹었다고 젊은 시절의 전공을 전설처럼 덕지덕지 붙이고 존경을 희구하는 사회가 꼭 좋은 것도 아니다. 어영부영 50대가 왔다고, 남은 50대를 어영부영 살면 개인도 불행해지고, 집단도 불행해진다.
386, 우리가 서른이던 시대, 이 사회는 우리를 그렇게 불렀었다.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그런 의미다. 이제 우리가 50대 되었다. 30대라는 숫자는 빼고, 86세대라는 말로 부른다. 좁게 보면 먼저 국회로 간 '의장님들' 얘기하는 거고, 넓게 보면 그 시대의 운동권 대학생 정도 된다. 이제 우리가 50이 되었다. 곧 사장들도 될 것이고, 장관도 될 것이고, 기다리면 대통령도 나올 것이다. 자, 이제부터 세상 좋아질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미워하면서 닮아간다고, 우리 위의 50대가 박정희와 싸웠다면, 우리는 전두환과 싸웠다. 그러면서 우리는 음침해졌고, 숨길 게 많아졌고, 군인을 닮아갔다. 그렇게 전사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다, 그 긴 시기를 지내놓고 보니까, 엘리트 의식에 쩔게 되었고, 하나 같이 마초가 되어버렸다. 남에게 가르치는 것, 그게 몸에 배었다. 이런 된장!
우리의 경제적인 자화상은 동창회에서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사실 동창회에 몇 명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도 나오는 친구들은, 성공했거나 그래도 먹고 살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힘들고 어려운 친구들은 동창회에 나오지 않는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은 분명히 아니겠지만, 이미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위계가 동창회에 가면 너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가? 다 같이 잘 사는 사회, 나눔과 희망이 있는 사회, 우리들끼리도 그렇게 못한다. 새로운 50대가 이 사회의 주류가 되면 뭐가 바뀔까? 바뀌긴 뭐가 바뀌겠는가? 술자리에서 영웅담의 레파토리가 바뀔 뿐이지, 뭐가 나아지겠는가? 빨갱이 잡던 군인과 검사들이 출세하던 시절에서 87년에 맹활약하던 사람으로 주빈만 바뀌는 것이지, 지금 같아서는 구조적으로 변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삶이 그렇고 경제가 그렇다. 물론 기분은 좀 좋아질 수 있다. 아, 세상 좋아지는구나, 그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는 있다. 그러나 경제는 과학이다. 기분만 가지고 세상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이미 50살을 살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50년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더 갖고 싶어할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아직은 아이들을 낳고 키웠다. 경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들에게 더 많이 주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에게 탐욕이 시작되고,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가 50대일 동안 한 푼이라도 더 긁어 모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집단적인 부패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가면? 많은 것들이 어려워지고, 다시 보수의 시대가 돌아올 수도 있다. 5년 전 대선이 끝나고 보수는 영구집권을 꿈꿨다. 박근혜가 무능하고, 순실이 황당했던 것, 그건 결과일 뿐이다. 한국의 보수가 대충 살고, 자기들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다가 그들의 뿌리까지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 지금의 50대 386도 그들의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우리를 견제할 별 다른 세력도 없다. 더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영부영 50살이 되었다. 그러나 남은 50대를 어영부영 보내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언젠가 행복하기 위해서 지금을 희생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50대를 살고 싶지는 않다. 그게 내가 맨 처음 했던 생각이다.
우리는 20대가 되기 위해서 10대를 살았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한국의 10대를 20대가 되기 위한 준비 기간처럼 만들어놓았다. 그렇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아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대부분의 한국인은 대학생이 되기 위해서 살아가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60살이 되기 위해서 살아가는 50대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환갑이 되기 위해서 50대를 희생하는 삶, 그런 건 진짜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겠는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나중에는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언젠가 있을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행복도 연습이고, 습관인 것 같다. 행복을 미루다 보면 행복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50대, 더 이상 미룰 시간도 없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본다. 지금 행복한가?
5년 전에 송호근 교수가 한국의 50대에 대해서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라고 했다.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20대도 울고, 30대도 울고, 50대도 울고, 이게 나라냐? 이제 나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386이라고 불렸던 지금의 50대가, "나도 힘들어", 이렇게 말하고 자빠지면 우리 모두는 다 망하는 길 밖에 없다. 그 길로 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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