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책은 오전에 마지막으로 손을 봐서 보냈다. 이제 초고가 마무리되었다. 작년 1월에 준비를 시작한 건데, 늦어도 올 여름에는 끝낼 줄 알았다. 결국은 둘째가 병원에 입원하고,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마무리짓지 못했다. 사는 게 늘 그렇다. 

책 한 권이 떠나고 나면, 그 전에 뭐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책이라는 게, 생활인 보다는 미친 놈에 좀 가까워진다. 집중하고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감정을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렵다. 감정이 과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아무 감정이 없으면, 글이 너무 밋밋해진다. 책이 끝나면, 그걸 털어내기가 쉽지 않다. 오늘 저녁은 출판사랑 술 마시기로 했다. 원고 터는 날이면 늘상 하던 일이다. 요즘은 술 때려 마시는 일이 별로 없기는 한데, 그래도 원고 마무리 짓는 날은 술 때려마신다. 아직은 다른 털어내는 방식을 모른다. 지난 여름에 식구들하고 해외여행을 갔다왔었다. 그 때쯤이면 원고가 끝날 거라고 생각하고 일정을 잡았는데, 택도 없었다. 괜히 마무리 짓지 못한 글만 생각하느라, 마음만 더 무거웠다. 

며칠 좀 쉬고 앞에만 좀 쓰다가 미루어 두었던 죽음 에세이를 마저 쓸 생각이다. 다른 제목을 생각했던 게 있었는데, 요즘 하고 싶은 제목은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이다. 이게 죽음과 뭔 상관이 있겠나 싶지만, 사실 이게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기는 하다. 누군가 전화해서 어떻게 지내냐고 하면, 뭔가 길게 설명하기가 어려우니까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얘기한다. 통장 잔고가 좀 달랑달랑하기는 하고, 내년 봄까지는 보리고개를 넘겨야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큰 걱정 없고, 크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우리 집 어린이들 때문에 거의 강제적으로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루틴이라는 게 크게 의미가 없는 삶이었는데, 요즘은 루틴이 많이 생겼다. 뭔가 규칙적이라야 루틴도 생기고 그러는데, 요즘 내가 그렇게 산다. 크게 골치 썩는 일 없고,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까 담담하게 죽음에 관한 주제들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 에세이를 마치고 나면, 도서관 경제학을 쓰려고 한다. 책에 대한 얘기들 그리고 시설로서의 도서관이 아니라 관계로서의 도서관의 역사 같은 얘기들을 좀 더 해보려고 한다. 내년 봄에 할 일이다. 어쩌다 보니까, 도서관을 적으로 생각하는 정권을 만났다. 자기가 책 안 읽는 거야 상관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책 보는 것도 싫어하고,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이 책 읽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것 같다. 해방 이후 한국의 좌우가 모두 합의했던, “도서관은 중요한 거다”, 이게 깨질 줄은 미처 몰랐다. 보통 정치인들이 책 읽는 형편이 되지 않더라도, 책은 읽는 척한다. 보수 쪽 사람들에게 건네들은 얘기로는, 박근혜도 책을 읽는다는 거였다. 예전에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하더니, 딱 그런 경우다. 살다 살다 이런 이상한 정치 지도자는 전두환 이후로는 처음 봤다. 

어린이들 보는 처지에, 이것저것 복잡하게 욕심 내봐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할 뿐이다.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바쁘다. 연말이면 망년회 몇 개는 어떻게든 하려고 하는데, 올해는 망년회도 안 할 생각이다. 내가 그럴 형편이 아니다. 연말에 어린이들 데리고 해외 여행 갈 계획이 있었는데, 둘째가 언제 응급실 가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것도 힘들게 되었다. 강릉 한 번, 울산 한 번, 그렇게 짧은 여행을 하려고 한다. 

마음 속 기분으로는 아직 여름인 것 같은데, 벌써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이 되었다. 시간 가는 것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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