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인권 연대에서 강연이 있었다. 윤석열 경제에 대해서는 처음 사람들에게 하는 얘기이기도 하고, 얼마 전부터 인권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좀 하던 게 있었다. 

인권 연대에서 경제 강연을 좀 시리즈로 해줄 수 없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사실 좀 부담스럽기는 하다. 

인권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정도 된다. 처음에는 ‘혐오’를 키워드로 생각했었다. 최근의 여러 가지 변화를 혐오로 포착해서 설명하려고 해봤는데, 이게 내 스타일에는 별로 잘 맞지가 않았다. 혐오가 적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 너네들 나빠”, 그렇게 말하고 끝내는 게 내 스타일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혐오 가득한 사람이 “그래 나 원래 그래”, 이러고 나면 더 할 애기가 없다는 점. 

프랑스에 있던 시절에 그런 경험이 좀 있었다. 극우파들도 좀 알고 지냈는데, 너네 raciste야, 그래봐야, 그래 난 원래 그래, 어쩔 건데.. 그걸 넘어서기가 어렵다. 혐오가 원래 그렇다. 혐오라는 키워드로 좀 구상을 해보려고 했는데, 이게 사회과학이나 경제학으로서는 구조적 문제가 좀 있다. 예술로는 이 주제가 별 상관이 없을텐데, 역시 경제학 분석에서는 좀 그렇다. 

그래서 좀 방향을 바꿔서 인권과 권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뭐, 거의 같은 얘기를 하는 건데, 혐오로 출발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혐오받거나 괴롭힘 받는 존재 혹은 경제적으로 무시되고 있는 사람들의 권리와 같은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사실 같은 얘기를 하는 건데, 이렇게 인권과 권리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훨씬 나 답다는 생각일 들었다. 

물론 내가 해놓은 것은 그 정도다. 아직 골격도 되어 있는 게 없고, 범위도 잡아놓은 게 없다. 다만 윤석열 시대에는 인권에 대한 얘기가 훨씬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정도의 생각. 

이걸 가능하면 청소년 버전 같은 것으로 해보고 싶기는 한다. 한쪽에서는 학습권을 얘기하지만, 청소년의 기본 권리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지금 한국의 상황은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학대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는 인권 침해에 관한 것들이 많고, 하고 싶은 데 할 수 없는 것들에는 권리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 같은 게 많이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시민으로서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당연한 권리에 대해서 우리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얘기들을 한 번쯤 차분하게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가지고 있기는 했다. 안 해 본 종류의 일이기는 한데, 생각보다 재밌기는 할 것 같다. 

인권, human right, 인간이라는 응당이 가져야 하는 권리에 대해서 좀 더 풍부하게 생각을 해보고 싶어졌다. 이게 사실 근대의 출발과 같은 얘기이기도 하다. 

윤석열 쪽 인간들에게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탑재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아는 건, 그야말로 북한 인권 문제 밖에 없는가 아닌가 싶고. 

수요/공급 말고도 경제 시스템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많다. 선진국이 되면 인권과 권리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그런 게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우리는 그런 과정이 아직 준비 중인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일 좋은 건 10강 정도 강의를 준비하고, 그렇게 하면서 책으로 만드는 게 제일 편한데.. 이게 내가 지금 그럴 형편이 안 된다. 꽤 전에는 아예 시민들 대상으로 공개 강연을 하기도 했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힘이 엄청 뻗치던 시절이고, 무엇보다도 우리 집 어린이들 태어나기 전이었다. 지금은 택도 없다. 

책 중에는 집에서 만드는 책이 있고, 길에서 만드는 책이 있다. 물론 모든 책은 다 집에서 쓰기는 하는데.. 곰공 집에서 생각하는 게 중심인 책이 있고, 현장에서 움직이면서 만드는 책이 있다. 뭐가 좋고 나쁘고, 그런 건 아니다. 인권에 대한 얘기는 전형적으로 길에서 만드는 책이다. ‘지금’ 그리고 ‘여기’를 빼면 별 의미가 없다. 

주 69 시간을 일해도 된다는 발상, 그런 게 인권과는 좀 거리가 먼 생각이다. 자유라는 말로 포장을 했지만, “내 돈 내 맘대로 해도 된다”, 그런 발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내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몇 시간은 되고, 몇 시간은 안 된다는 그런 기술적인 문제보다, 그런 발상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지, 그런 것이다. 

하여간 당장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니고, 좀 시간을 가지고 사람들 의견도 좀 듣고, 그렇게 해볼까 한다. 

내가 아는 한국 경제를 좀 더 경제적 권리라는 틀로 재해석하는 일, 재미도 있을 것 같고, 보람도 있을 것 같다. 

올 가을에는 둘째가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가을에는 좀 여유가 생길 수도 있다. 작년에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좀 있다 어린이들 여름 방학, 그리고 가을에는 둘째 입원, 바로 겨울 방학..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길에서 만드는 책, 그건 또 그것만의 맛과 장점이 있다. 품은 좀 많이 들어가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검사들의 시대, 인권에 대한 얘기는 잘 어울릴 것 같다. 

하여간 지금은 얼기설기, 지난 몇 달 동안 조금씩 해본 생각들이 방향을 갖게 된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길도 재밌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이를 처먹었다. 신경질 내고, 화 내고, 그렇게 나이를 먹고 싶지는 않다. 좀 더 사물을 존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그렇게 해서 행복할 수 있는 길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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