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체처럼 패션지에서 사용하는 문체는 잘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나 때론 그런 문장이 더 편할 수가 있다.

 

책을 내고 싶거나, 책을 내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들에게 김학원의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그야말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1.

책과 관련해서, 나에게도 고민이 많다.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은 아직도 잘 해결을 못했고, 출판사와 에디터와의 관계, 그리고 어떻게 하면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불만들을 해결할 것인지, 좀 생각해보는 편이다.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내가 가졌던 질문에 대한 모든 해답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을 알려주는 책이다.

 

즉...

 

저자들에게는 필독서이다. 저자와 작가, 즉 author와 writer 사이에는 약간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다. 픽션과 논픽션이라고 재미없게 구분하는 방법들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는 더 미묘한 것 같다.

 

작가에게도 에디터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사회과학이나 인문서적을 만들 저자들에게, 이 책은 사실상 필독서이다.

 

이건...

 

무조건 봐야 하는 책이다.

 

2.

김학원이 그리는 출판계는 유토피아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상적인 상태이다. 물론 나도 그리 세상이 움직일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생각하지만. 내가 만난 현실은 책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터프'했다.

 

출간과정이 우아한 일들의 연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멱살을 잡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냥 침묵하거나. 그런 터프한 의사결정 과정이 몇 번은 등장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냥 참고, 속으로 삭이는 편이다.

 

아마 상대방도 같은 상황일 것이고, 그럴 때 싸워봐야 결국 답이 안 나오는 그런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 뻔하므로, 내 경우에는 어지간하면 참는다. 그러나 참는다고 해서 그 감정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보다는 에디터 쪽에서, 그리고 출판사 쪽에서 참는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그런 팽팽한 신경전에 관한 책이지만, 어쨌든 문체는 우아하고, 그려진 상황은 이상적이다.

 

3.

어쨌든 저자들은 저자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생긴다. 그리고 동시에 에디터들 역시 에디터들의 네트워크를 가지게 된다. 두 개의 네트워크가 충돌하면, 대책이 없다. 그런 싸움을 최대한 피하면서, 책들이 만들어진다.

 

저자는 에디터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이다. 어쩌면 저자들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되어있는 셈인데, 저자들이 에디터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훨씬 적은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4.

한 때는 나도 출판사를 차리는 것이 로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유학 시절부터, 아주 오래되었던 로망이다.

 

이 로망을 접었다. 너무 어렵고, 너무 고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출판사의 로망을 접었다.

 

직접 출판사를 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한에서는 모든 에디터들과 친구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출판사를 내겠다고 하는 순간, 잠정적 경쟁자로 바뀌면서 친구같이 지냈던 에디터들을 잃게 되고, 잘 되어봐야 사장과 에디터의 관계로 돌변하게 된다. 별로 이문이 남는 행위는 아닌 것 같아보였다.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출판사의 꿈을 깨끗하게 접었다.

 

그리고 잡지를 만들고 싶은 꿈을 꾸었다. 이 꿈도 접었다.

 

잡지의 편집장이 되거나 아니면 출간인이 되면, 너무 많은 사람들과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건,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이래저래 다 접고 나니, 마흔이 되고 나니, 할 일이 사라져버렸고, 하고 싶은 일도 사라져버렸다.

 

뭔가 하기 위해서 억지로 꿈을 만드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할 일이 없으면, 그냥 쉬면 된다. 그리고 아주 적게 먹으면 된다.

 

그래도 아직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꿈은, 갈리마르 같은 프랑스 출판사에서 종종 하는, 콜렉션의 디렉터가 되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없지만, 유럽에서는 아주 성공적인 콜렉션에는 학자들이 디렉터 역할을 맡는다. 언젠가 그런 걸 해보면 좋겠다는 꿈은 아직 버리고 있지는 않다.

 

어떤 식으로든, 나의 로망은 오랫동안 책과 잡지라는 두 개의 매체와 관련되어 있었다.

 

영화는...

 

팬으로서 열심히 지지하고, 재밌게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좋은 감독들이 있고, 그들이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아주 지랄맞다록 극장에 자주 가거나 DVD를 열심히 사주는 것, 그런 일은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5.

어떤 사람은 책이 재미있어서 본다고 하는, 정말 부럽고도 부러운 경지에 올라가신 것 같다.

 

나는 그런 경지는 아니다. 내가 보는 책들은, 정말 재미없고, 또 어지간하면 전화번호부를 가볍게 넘어갈 정도로 두껍고, 정말로 내가 필요한 내용은 그 중에 딱 두 세 페이지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 두 세 페이지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연필로 열심히 무엇인가를 풀어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리하고, 재미없고, 게다가 두서없이 이어지는 라이벌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 누군지도 모르는 그 라이벌을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전부 찾아봐야 한다면, 우와. 자본론이 사람들에게 쉽게 잡히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렇다.

 

존 스튜아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론 같은 경우는 더욱 황당하다. 책의 1/3 분량은 대부분 생시몽에 대한, 약간은 치사하면서도 끈질긴 공격으로 채워져 있다.

 

게다가 이 생시몽의 인용은 몇 페이지씩 끝없이 이어지는, 불어 원문으로 채워져 있다. 영어와 불어를 동시에 읽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쩌란 말이냐.

 

재미없고, 흥미도 없고, 게다가 내용도 어렵고, 틈틈히 왜 내가 이걸 읽고 있어야 하는지, 회의가 가득 드는 책들이 내가 읽는 책들이다. 난 아직 이런 책들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정말 읽기 싫고, 지겹지만, 참고 읽는 책들이다.

 

김학원의 <편집자란 무엇인가>는, 다행히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위트가 많고, 아, 그랬구나, 책과 출판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좀 알고 있으면,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다.

 

이보다 100배는 재미없었다고 하더라도, 내 입장에서는 꾹 참고 읽었어야 할 것 같은데, 다행히도 책은 무척 재밌다.

 

6.

출판사와의 communication, 특히 에디터와의 communication은 언제나 숙제이다. 난 그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편이다. 불만이 없어야 하는데, 실제로 나는 불만이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내가 참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상대편에서는 훨씬 많이 참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원래 파트너 사이에 이런 오해와 긴장이 많기 딱 좋은 관계이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로 돌아볼 기회가 되었고, 나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하는 책인 것 같다.

 

이런 기술적인 얘기들까지, 책으로 간편하게 볼 수 있으니, 진짜 한국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정말이다. '저자'들을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예비 저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최소한 2~3년간의 모색기의 오류는 줄여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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