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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블로그, 뭐든 만들어야 입에 밥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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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그들이 없는 언론 - 춘래불사춘

 

1.

좋은 다큐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는 비교적 쉬울 것 같다. 그렇지만 재밌는 다큐란 무엇일까? 여기에 답하기는 정말 어렵다. 지난 주에 프랑스에서 만든 발레 공연에 관한 다큐를 보았다. 엄청나게 멋진 연습 장면이 가득하기는 한데, 재미가 없어서 참고 보기가 어려웠다. 4팀의 공연준비를 병렬형으로 보여주는데, 100% 긴장하고 있지 않으면 스토리 이해 자체가 힘든 구조다. 좋은 다큐를 본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재밌는 다큐를 보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몇 명의 발레 전공자들의 삶이 비춰 보이는 재미가 아니었으면 끝까지 참고 보기 어려웠다.

 

YTN MBC의 해직기자들 얘기를 담은 다큐 <7 - 그들이 없는 언론>은 좋은 다큐와 재밌는 다큐라는 질문을 동시에 하게 만든다.

 

2.

7년의 개봉 스크린수는 105, 누적관객수는 16,999명이다. 일반적으로 다큐는 극장 개봉을 했느냐 안 했느냐, 그리고 관객수 만 명을 넘겼느냐 안 넘겼느냐, 그런 기준으로 분류한다. 물론 가끔 이런 기준에 전혀 맞지 않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다큐가 등장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사회적 흐름과 갑자기 생겨난 열풍, 이런 외부적 변수가 너무 커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려하기는 쉽지 않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인사이드잡> 5,000명 약간 넘겼다. 그리고 해방 이후 언론에서 가장 많은 영화평을 받은 작품이라는 <경계도시2>가 만 명이 약간 안 된다. 이 정도가 어느 정도 성공한 다큐로 분류된다.

 

<7- 그들이 없는 언론>, 극장용 다큐를 기준으로 치면 성공한 기준은 넘긴 영화다. 애게, 만 칠천명? 만 명을 목표로 가는 게 한국의 다큐이기도 하고, 사회과학 서적이기도 하다. 새로운 얘기, 새로운 변화를 전통적 방식으로 기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소박하지만 대개의 경우 '넘사벽'으로 작동하는 것이 만 명의 벽이다. 만 명을 넘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경제 다큐를 비롯한 많은 다큐들이 당장 출발할 것이다. 지금보다 최소한 10배는 많은 다큐와 책들이 준비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두텁다. 만 명은 커녕, 극장에 제대로 걸리기도 어렵다는 현실성 앞에서 수많은 기획들이 출발도 해보기 전에 좌초한다. 소박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 소박에 소박, 그 극한에 간 최소한의 수치가 만 명이다.

 

3.

<7 - 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기 위해서 나는 2,500원을 지불하였다. 그것도 고만고만한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주말 저녁을 보내기 위해서 고심고심하다가 결국 선택한 것이다. 나도 그렇다. 선뜻 극장에 가지 못했고, 소장용 최신 영화를 거침없이 사면서도 2,500원을 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망설였다.

 

별 생각, 별 기대 없이 보았다. 그리고 6년만인지, 7년만인지, 영화에 대한 감상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재밌게 보는 영화는 많고, 감동하는 영화도 적지 않지만,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몸을 움직이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다. 글을 써보고 싶다, 딱 고만큼.

 

4.

7년에는 아는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종종 나온다. 이름만 들었지 잘 모르는 기자들도 있었다. 해직 기간에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대목이 정서적으로는 클라이맥스 부분이라고 느껴졌다. 그 정도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 같다.

 

최승호 CP는 개인적으로 엄청 존경하는 사람이다. 다른 일로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나도 몸이 무거워서 꿈쩍도 못한다. 이런저런 사연들이 중첩되면서, 영화는 초반을 지나면 급격하게 감정을 에스컬레이팅 시키면서 밀고 나간다.

 

가장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연은 YTN 사장 사연이다. MB 특보로 사장 임명되자마자 거침없이 기자들을 짤랐이 아니고, 그래도 그 사람은 나름 최선을 다했고, 대화도 좀 되는 사람이었다고 노종면이 회상하는 장면두둥,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MB 특보가 밀린 자리에 올라간 내부 승진자, 사단은 그 단계에서 벌어진다.

 

학습효과인지, 처음부터 내부 승진자를 꺼내든 MBC의 김재철 사장, 가장 희극적 캐릭터이며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유일한 간부 캐릭이다. 일제 때 조선인 순사가 어땠을까, 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5.

다큐를 다 보고 나서 내 삶에도 몇 장이 스쳐 지나갔다.

 

kbs 파업 때 출연자로서는 아마 내가 거의 유일하게 단상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았던 것 같다. 이제 다시는 kbs에 나오지 못할 거라는 것은 알았다. 2년 전인가, 신년 특집 생방에서 마지막 순간에 나오지 말라고 해서, 그러세요, 뭐 그런 적이 잠시 있었다. 전혀 못 나간 것 까지는 아니고

 

ytn 파업 때는 따로 부탁이 없었는데, mbc 파업 때에는 이준익 감독도 나갔고, 나도 나갔다. 짧은 인터뷰 컷 말고는, mbc는 그 후에 나간 적이 없는 것 같다.

 

방송국에서 파업할 때, 지지발언을 해달라거나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온다. 나는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연락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 그래도 내가 삶을 막 살지는 않았구나…'

 

만약 방송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대가가 가혹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 시절, kbs 뉴스에 나간 적이 있었다. 이래저래, cp는 러시아로 갔나, 하여간 그 때 관여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제작 현장과는 좀 먼 곳으로 발령이 났다고 몇 년 후에 얼핏 건네 들었다. 그런 비슷한 일이 몇 번 있고 나서는, 나도 무서워서 방송국에 못 갔다. 잠깐 나가서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닌 거 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 볼 이유가 있나 싶었다. 4대강 얘기를 대놓고 하면, 정말로 '피의 보복'이 오던 시절이다.

 

방송국 기자들만 7년 동안 당한 것은 아니다.

 

출연진들은 그래도 좀 낫다. 방송 만들어서 납품 하는 제작사들의 형편은 더 어마무시하다. 그리고 그런 제작사와 일하는 작가와 피디 등 제작진들, 겁나는 보복들을 받았다. 그렇다고 섭섭한 걸 얘기하면, 자기만이 아니라 동료들이 모두 어마무시한 피해를 받기 때문에 그냥 냉가슴들을 알았다.  

 

문화계에는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방송국은 좁은 사회다. 블랙리스트, 그런 건 필요 없다. 그냥 약간의 사장 등 경영진의 호불호,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서 다큐 7년은 그냥 해직당한 몇몇 기자들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야만의 시대, 바로 그 야만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가듯 묘사되었을 뿐이다.

 

6.

춘래불사춘, 다큐 7년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이다. 봄이 왔어도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봄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론이 제대로 서는! 꿈인데, 어쩌면 한국에서 그런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명은 결국 복직을 하기는 하겠지만, 그런다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이치가, 고생한 사람과 빛을 보는 사람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해직기자를 비롯한 방송 장악의 역사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 기자들과 경향신문 기자들과 최근에 통화하거나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많이 외로워하고, 새로운 것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꺾인 것 같았다. 그들도 정권 교체를 오랫동안 목마르게 기다렸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행복과 영광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 <인사이더>는 많은 여운을 남긴 영화였다. 방송 고발과 지루한 소송전이 끝나고, 결국 '식스티 미닛'의 수완 좋은 기자 알 파치노와 담배 회사 내에서도 양심을 지킨 과학자 러셀 크로우는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했던 일을 결국 내려놓게 된다. 싸움이 끝나서 이기면 원래대로?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큰 싸움이 끝나고 나면, 결국에는 상처가 남게 된다.

 

봄이 왔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봄이 오지 않는다. 언론이 그렇고 방송이 그럴 것 같다. 춘래불사춘, 다큐 <7 . 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고 나서 이 단어 하나가 마음 속 깊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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