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꼽사리다, 막방을 준비하며

 

막방이라는 말을 쓰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 어쨌든 모든 시작하는 것에는 끝이 있는 법, 우리도 이제는 마지막 방송을 준비해야 한다. 나꼽살팀은 7명이 한 팀이다. 출연진 외에, 뒤에서 도와주시는 황덕창 작가, 팀 매니저 역할을 해주신 배영란씨 그리고 녹음 엔지니어 선생님, 이렇게 세 분의 스탭이 더 있다.

 

한 회분 제작에 보통 4주 정도가 걸린다. 처음 주제 정한 다음에 게스트 섭외 여부와 질문지 작성 등, 평균 4주 정도를 쓴다. 보통 이 정도 내용이면, 공중파 기준으로 3팀 혹은 4팀 정도가 붙을텐데, 그냥 우리는 몸빵으로 다 때우면서 왔다. 이미 지난 여름을 지나면서 제작진의 피로도가 극으로 달했고, 요즘은 거의 한계 상황이다. 나도 도저히 이렇게는 더 못 버티겠다고, 출산으로 제호를 바뀌면서 방송 기획을 선대인에게 넘겼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치 못하게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방송 기획과 섭외 등을 다시 내가 맡게 되었다.

 

일정을 살펴보니, 대선 이후의 화요일은 크리스마스이고, 그 때 녹음하면 공개가 내년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결국 대선 전주 방송을 막방으로 하기로 했고, 이게 12 11일이다.

 

지난 여름에 아주 더울 때, 선대인이 처음 대안 경제방송 만들어보자고 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멀리 왔다. 김용민 총선 출마한 이후, 선대인 안캠 합류 이후, 누가 봐도 위기의 순간이라고 할 때가 몇 번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우리는 방송 기간 내내 가족처럼 지냈다. 매 방송마다 이런 저런 문제들이 터져 나왔지만, 어쨌든 임기 웅변과 몸빵으로 넘어간 것이고.

 

나꼽살 지방 버전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이 때쯤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를 놓고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뭔가 기획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꼽살 대구편, 나꼽살 부산편, 이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봤었는데, 순전히 내가 게을러서.

 

미화 누님과 일년간 방송을 같이 했던 것, 선대인과 매주 만난 것, 김용민이 얼마나 착하고 실력있는 인간인지 알게 된 것, 이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최고의 스탭들과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로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우리 일정상, 대선 앞이라고 해서 별도의 호외 방송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고, 11일 방송에서 투표 참여 독려와 우리끼리의 조촐한 방송 정리,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경제 전문방송으로, 정말 이 정도 성공시킬 수 있을지, 우리도 잘 몰랐었다. 회당 300만명에서 400만명이 듣는데, 그 정도로까지 갈 수 있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어쨌든 매주, 펑크내지 않고 간다, 그런 생각밖에 없었다. 선대인이나 나나, 범생이들이라서, 숙제 내라면 하여간 제때 제때 내는 거, 그런 건 잘 한다. 그거 말고는, 사실 별로 잘 하는 건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나꼽살 막방이 현업 경제학자로서는 공식적으로 은퇴하는 순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신문에 주기적으로 쓰는 칼럼은 벌써 연초에 정리했다. 나머지 일들도 조금씩 덜어내는 중이었고, 이제 남은 일은 거의 없다. 그 동안 관여하던 단체에서 하던 일들도 정리했고, 이제 남은 건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남은 책 몇 권 정도. 쉬엄쉬엄, 가끔 밀린 경제학 책 내는 정도, 그렇게 경제학자로서의 나의 사회적 역할을 정리하려고 한다.

 

한미 FTA나 새만금 같은 것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 결국 마음에 남는다. 우리 시대에, 내가 주도해서 했던 큰 싸움에서, 나는 대부분 졌다. 그게 나의 한계이고, 나의 실력은 거기까지이다. 이기고 물러설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게 삶이다. 벌써 전에 내려놓고 싶었지만, 어쨌든 나꼽살 막방까지는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틴 것이다.

 

나의 싸움은 졌지만, 경제학자로서는 과도한 영광을 누렸었다. 나에게는 아무 영광이 없지만, 중요한 싸움을 이기는 편을 정말로 소망했었다. 그러나 나의 소망은, 이제는 가슴 속에만 남게 될 것 같다. 세상을 몇 사람의 힘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은 들기에, 마음만은 편하다.

 

막방 때 어떤 식으로 정리할지, 12월 방송은 어떻게 진행할지,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중이다. 이젠, 정말로 막방 준비.

 

이 방송에서 해보고 싶었는데 못한 것 중 하나가 경제 콩트였다. 내부에서 몇 번 얘기는 나왔지만, 너무 정신 없어서 제대로 챙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짧게라도 시도해 볼 수 있었으면, 사람들에게 경제를 좀 더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는 포맷 실험이 되었을텐데, 그건 못했다.

 

본격적으로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 것은 학부 2학년 때였고, 정말로 경제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학부 3학년 때였다. 그 때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다. 20년이 넘도록, 경제학만 하고, 경제학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경제학자로서의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내놓는다고 생각하는 방송을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이상의 영광은 없을 것이다.

 

몇 달 전부터, 나꼽살팀은 완전 방전에 기진맥진, ‘완주라는 단어가 멤버들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성과나 평가, 그런 건 모르겠고, 일단은 완주하는 게 유일한 목적이었다. 우리가 대선 국면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여가, 완주라는 단어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완주가 눈 앞에 보인다. 그러니 또한 기쁘다.

 

이번 대선, 시대의 전환점이다. 꼭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한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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