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림 엽서 같은
모든 일에는 시간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장소라는 질문이 있다. 언제 어디서 벌어진 일인가라는 질문, 나는 그 질문을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 제국주의적 미덕이라면, 식민지로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그 시간과 공간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 식민지의 속성을 탈피하는 첫 번째 돌파구일지도 모른다.
보편적인 것이 나쁘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보편주의 만큼 식민지를 통치하는 제국을 편하게 하는 장치가 또 있겠느냐? 네가 조선의 식민주의 백성이라도, 당신만 잘 하면 다 되는 거다, 그게 왜정 시대에 조선인 제자를 정말로 사랑한 선생이 해줄 수 있는 얘기가 그것 밖에는 뭐가 있겠는가?
물론 너만 잘 하면 된다는 얘기는, 어디서나 쉽게 하는, 도망가기 쉬운 인스턴트식 해법이다. 그러나 이게 식민지가 가지고 있는 절망과 부딪히면 더욱 크게 증폭되는 것 아니겠는가? 식민지 시대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냥 맞춰 사는 것과 아주 어렵지만 독립을 위해서 뭔가 하는 것, 그런 해법 정도 밖에 더 있겠나? 그 어느 쪽이라도 제 정신이라면 좌절하게 된다. 창씨 개명을 조선인들이 하자고 한 것을 총독부에서 받아들여준 거라는 얘기가 무얼 의미하겠는가?
나는 시대를 뛰어넘는 뭔가를 하라는, 일종의 순수예술의 좌우명처럼 우리의 선배들이 걸어놓고 있던 그 예술관이 그렇게 싫었다. 언제 어디서, 최소한 그런 구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얘기들은 자칫하면 제국의 통치술에 말려들게 되는 그런 거라는 의심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무엇을 그리고 왜, 그것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너만 잘 하면 된다, 그것은 언제나 옳은 말이다. 작은 상황이든 큰 상황이든, 적절한 화각으로 청자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 같이 식민지적 상황을 종결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또한 위험한 얘기이기도 하다. 모든 말에는 겉말과 속말이 있고, 모든 단어에도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가을이 한참 깊어가고 있는 요즘, 그림 엽서로 써도 좋을 만큼 예쁜 고양이 사진들을 몇 장 찍었다. 가을볕이 참 좋은 조건이다. 적당히 노랗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암물한 기묘함이 묘한 긴장감을 준다.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고양이들도 서로 붙어 있으면서 기분 좋은 실루엣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고양이들과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은 명박 시대의 어두움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이라는 면에서만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다른 때 보았어도 에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로 2012년, 명박 시대의 마지막 해의 가을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해방의 욕구, 그런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던 순간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과로에 의한 피로감으로, 그야말로 대선이 오는 그 날이면 나도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악으로 버티던 시간의 기억이기도 하다. 작은 휴식과 위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휴식이고 어디부터가 일탈인가, 그런 질문을 가끔은 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순수를 외쳤던 그 모든 것들은 제국 통치술의 값싼 뻰치에 불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예술을 원했지만, 문방구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싸구려 그림 엽서 같은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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