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지나가는 날
세상에는 큰 일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고, 작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다. 돈의 크기나 권력의 크기 같은 것으로 재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집안 일, 바깥 일, 이렇게 구분을 하고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 생명 앞에 서면 더 큰 일, 더 작은 일이 과연 있겠나, 그런 생각이 들 때도 많다.
태풍이 지나가는 날, 결국 오후에 우산을 쓰고 나가서 마당 고양이들 밥을 주고 왔다. 어제 밤에 주었으니까 하루쯤은 그냥 넘어가도 별 일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또 생각이 나면 그냥 모른 척하기가 그렇다.
아기 고양이들이 비 맞으면서도 쪼르르 뛰어온다. 개집 안에 어젯밤에 넣어준 사료는, 옴팡 많이 넣은 것 같은데, 벌써 비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가, 그런 생각이 한 번도 안 드는 건 아니다. 큰 의미 같은 건 별로 부여하고 싶지만, 그래도 뭔가를 돌볼 수 있고, 내 주변의 것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은, 그런 작은 마음 같은 거다.
며칠만에 집에 온 아내한테 화초에 물 안줬다고, 또 옴팡 혼났다. 그냥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 수많은 것들이 엉켜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간만에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야옹구는 밖에 태풍이 오는지, 뭐가 오는지 그냥 신나기만 하다.
이 근심걱정 없는 해맑은 표정을 보라.
왜 나는 이렇게 웃을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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