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할 일이 없거나, 너무 집중한 상태의 긴장감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정혜윤의 책은 딱 안성맞춤이다. 뭐가 쌓아올렸는데, 이게 좀 아니다 싶은 거,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 했는데, 이미 한 게 아깝지 않아?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는, 이미 한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나,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할 때그 길은 아닌 거다. 잘못 온 길이다. 만약 그 길이 맞다면, 이미 한 게 아깝다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을 거고, 그런 얘기를 누군가 하지도 않을 거다.

 

나는 그래서 선녀와 나무꾼얘기를 좋아한다. 아이를 아무리 많이 낳았어도, 싫은 넘과 어떻게 살아. 단 하루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그런 사람과는 헤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비적, 비비적, 뭔가 좀 아까운데, 새로운 걸 하기는 무서운데

 

요런 생각이 들 때, 정혜윤의 책이 딱이다. 생각을 이리저리 뒤집어, 휘집어 놓아서, 이미 이만큼 했는데, 그런 생각에 대한 무장해제를 시키는 장점이 있다.

 

특히나 나름대로 책을 좀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책은 많이 읽지는 않았어도 나름 장서가라고 생각하는 사람, 요런 사람들에게는 정혜윤이 딱 약이다.

 

물론 내 경우도 그렇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읽기에 따라서 독서 혹은 책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것이리도 하고, 신념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건 정말로 맞는 거야

 

요렇게 자신이 신념에 차 있을 때, 정혜윤의 책을 심심풀이로 읽어보면, 뭔가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정혜윤을 읽는다. 이미 읽은 책도 있고, 아직 읽지 않은 책도 있지만, 그 책에 대한 책, 그 속에서 자신의 얘기를 조곤조곤하는 것은, 정혜윤이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잘 하는 것 같다.

 

가끔 책 읽고 나면 딱 재수없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정혜윤은 딱 그 정 반대이다.

 

재수없다고 생각한 나 자신을 스스로 재수없게 느끼는, 기기묘묘하게 투영시키는 거울과 같은 글쓰기 스타일이다.

 

, 그리고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서는, 정헤윤의 감성이 한 차원 업글 되어있다.

 

정혜윤의 책을 읽으면서 울었던 적은 없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두 번 울었다.

 

중앙극장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벌어진 기가 막힌 사연의 이야기

 

이건 마치 책 안에 단편영화가 하나 들어가 있는 것과 같은데, 정혜윤 책을 읽으면서는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한 품격 높은 감성 터치.

 

울 얘기는 아니지만,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두고 있던 사랑에 대한 얘기나, 아련한 기억 혹은 앞으로 올 것에 대한 기대, 이런 감정선 한 구석을 제대로 건드린다.

 

마침 오늘 오후, 아내와 산부인과에 갔다 오면서, 혹시 내가 아내보다 먼저 죽으면 내가 남겨진 아내를 위해서 준비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얘기들을 꽤 길게 했었다.

 

그런 짧은 기억이 결합되면서, 나는 아내를 더 많이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리고 펑펑 울었다.

 

몇 페이지 더 앞으로 나아가면, 희망버스에서 김진숙 지도의 목소리를 들었던 장면이, 정말로 감성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듯한 리얼한 감정을 느끼면서, 또 눈물이 흘러 나왔다.

 

동굴 깊은 곳의 목소리에 대한 묘사와 스머프라는 단어만으로, 그 장면을 그렇게 그려내는 방법이 있구나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 내 경우에도 삶을 조금은 바꿀 것 같다.

 

사랑합시다,

 

요런 류의 글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히 정혜윤, 업글.

 

책이라는 게, 꼭 필요해서 읽는 것만도 아니고, 오락을 위해서 읽는 것만도 아니고, 뭔가 더 알기 위해서 읽는 것만도 아니다.

 

그냥 읽는다정혜윤의 경우가 그렇다. 나는 그의 책을 그냥 읽는다.

 

그러나 읽고 나면, 뭔가 나에게도 분명히 변화가 생긴다.

 

그녀와 동시대를 살고, 때가 되면 새로운 정혜윤의 책이 나와있고, 그래서 습관처럼 읽고, 습관처럼 다시 감동하는.

 

사는 것을 맛지게 해주는 이 시대의 동료임에 틀림없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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