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작년부터 풀 하나가 슬슬 머리를 밀고 자라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이 멀대 같은 녀석이 나름 군락을 이루었다.

 

그냥 뽑을까 하다가, 뭔지도 잘 모르고, 또 나름 맵시도 있어서 그냥 두었다.

 

달개비의 일종인, 자주 달개비라고 하는 것 같다.

 

어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이게 은근히 장관이다.

 

 

fta는 고민거리이다. 사람들이 잊는 게 워낙 빠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가는 듯 싶다. 이렇게 금방 잊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잘 잊으니까, 그야말로 '암울한 근현대사'를 지나면서 - 요건 영화 <전우치>에 나온 대사이다 - 우리가 살아남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여간 이 문제를 붙잡고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지난 연말부터이다. 국회에 통과를 시키겠다고 난리를 치면서 국회 날치기를 통과하면서, 그냥 있을 수는 없고, 나도 뭔가를 하기로 생각하면서...

 

그 이후로 내 삶은 개판이 되었고, 일정도 정신 없게 되었다. 올해는 대선의 해, 이것저것 부산하게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전부 엉망이 되었다.

 

물론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중간에 끼어드는 일이 한 두개인 건 아니지만, 한미 fta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

 

 

 

 

특별하게 사마귀를 찍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우연찮게 걸려들어서.

 

접사에서 핀트 맞추기가 아주 어렵고, 또 내 눈도 기가 막히게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눈이라서... 뭐, 이렇게 하고 있는 걸 찍으려고 한 건 아닌데, 전부 삥이 나가서.

 

하여간 이렇게 소일하면서, 머리 속은 온통 fta 생각이다.

 

 

 

책 제목을 'fta 한 스푼'으로 정한 건 좀 된다. 의미야 어떻든, 나는 이 제목이 좋다.

 

이 제목이 나에게 특별히 좋았던 것은, 뭔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거나, 아니면 세상을 뒤집을 정도의 큰 얘기 혹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fta 얘기의 종합편, 이런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이다. 나는 그냥 '한 스푼'만 더 할 뿐, 그런 뉘앙스라서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원래의 제목은 '모든 공포의 총합'... 이 제목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사실 3번을 갈아엎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던... 그렇게 해서는 책이 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너무 보고서처럼 되어버려서, 읽기가 더 어렵게 된다. 또 그러다보면 쓰는 입장에서는 더 부담스러워지고.

 

지금 와서 돌아보면, 한 스푼으로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으면, 이 책은 결국 무게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간에 엎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책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원래의 계획은, 최대한 빨리, 그러다가 총선 전에 못 냈고, 총선이 끝나자마자... 그런데 총선에서는 완전 박살났고.

 

삭발은 벌써 애저녁에 했고, 대선까지 금주를 하면서, 이런저런 힘을 모아서 겨우겨우 끝내는 책이 되었다.

 

시대와 맞서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수레바퀴 앞에 서 있는 사마귀, 딱 그 형국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냥 돌아가는데, 학자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그 크기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렇게 무게감에 눌리고 있었다.

 

 

이번 주말 여기에 부처님 오신 날까지 끼어서, 휴일.

 

하여간 초읽기에 몰려서, 마지막 결론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다.

 

자주 달개비라는 꽃은, 꽃보다도 몽우리가 훨씬 예쁘다.

 

마당에서는 이게 거의 잡초급이라, 이사갈 때에도 얘를 데리고 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예쁜 몽우리가 있다는 데에 참 놀랐다.

 

꽃잎이 만개하게 될 보라빛을 미리 보여주는데, 그 은근함과 신비로움이 보통 아니다.

 

물론 그냥 눈으로 보면, 별 거 아니다.

 

흔히 보는 멀대 같은 잡초에 약간의 몽울진 것, 그렇게 밖에는 안 보인다.

 

하여간 이런 생각을 하다가, 뭔가 내 머리를 빡 때리고 지나가는 생각이...

 

노무현 중후반에서 지금까지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일관된 생각.

 

당시의 청와대, 열린우리당 사람들, 고위직 관료들의 보편적 생각, 그게 이명박을 거쳐서 박근혜까지...

 

이 생각을 나중에 책상에 앉아서 차분히 정리를 해보니까,

 

그게 '노무현 컨센서스'이다. 90년대 워싱턴에서 월가까지, 합의된 적은 없지만 그 사람들이 보편적인 정서처럼 가지고 있는 생각을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르는 것과... 작동 방식은 사실상 같다.

 

그래서 'fta 한 스푼'의 부제는 '노무현 컨센서스'로 하기로, 일단은 마음을 먹었다.

 

이 사건이 비극적인 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 중에 하나에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협상 내용을 재검토해보아야 한다고 썼던 점이다.

 

그게 워싱턴 컨센서스와는 차이점인 것 같다.

 

노무현은 빠진 노무현 컨센서스, 이게 참 비극적이다.

 

어쨌든 이렇게 최종 결론을 내리고, 앞에 써놓은 원고들에 대한 마지막 튜닝을 하기로 했다.

 

길고 길었던 작업이, 이제 마지막 고비를 넘었다.

 

 

'남들은 모르지.. > 명랑이 함께 하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꽃, 활짝 피다...  (2) 2012.05.30
감자꽃이 피다, fta 본문도 마무리...  (2) 2012.05.29
마루 앞의 뱀딸기  (2) 2012.05.25
피맛골  (9) 2012.04.28
총선이 끝나고  (19) 2012.04.15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