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정신없이 지냈는데, 간만에 토요일 오후에 혼자 집에서 창문 너머 비 내리는 것도 마당에 감자 심어놓은 것도 보고.

원래는 내일쯤 조카들 데려다가 감자 캘려고 했었는데, 다음 주로 미루었다.

요즘 좀 심난해서 그런지, LP를 잘 못 들었다.

나야 그냥 계속해서 슬럼프니까, 심난하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무료하게 원고 들척들척, 이 책 저 책 들척들척, 최근에 가장 재밌게 본 책은 고양이 키우는 법에 관한 일본 책이다.

그렇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요즘 꽤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아직 기사로는 안 나갔는데, 아마 다음 주부터는 좀 부지런한 기자들 손에는 포착되서 이래저래 기사가 나가지 않을까 싶은데, 한 두명도 아니고 줄줄이 삶의 어려운 순간들을 통과하는 중이다. 왜들 그러시나...

이번 주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나야 늘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가능하면 소비를 줄이고, 꼭 하고 싶은 몇 가지에만 약간의 호사를 누리지만... 청바지 사본 게 몇 년 전인가 싶게.

그래도 경제학자로서 돈이라는 게 기본적으로는 다다익선이 아닐까 싶었는데, 생활인에게는 돈은 꼭 다다익선은 아닌 것 같다.

돈도 역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근 불가원, 너무 멀면 춥고, 너무 가까우면 데이고.

그저 딱 필요한 돈보다 만 원짜리 한 장 더 있는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바뀌었다.

돈이 아주 많아진 다음에 불행해진 사람들을 꽤 많이 봤다. 아들이 엄마에게 소송을 걸고,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맞고소 하고, 새엄마가 딸을 고소하고, 다시 딸은 새엄마를 맞고소 하고.

그런 소소한 사연에서부터 아버지가 돈벼락을 맞은 다음에 아주 나태해진 아들, 이런 것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너무 돈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들으면 속상할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는 돈이라는 게 불가근 불가원 아닌가 싶다.

요런 생각들을 하면서, 중학교 듣던 LP 들을 꺼내서 듣는데, 괜히 기분 때문인지, 아니면 마흔이 넘어가면서 생기는 퇴행성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은 편해진다. 새로운 것이 주지 못하는 평온감을 오래된 것들이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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