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이라는 장르는 이제 한국에서 힘을 쓰기 어려운 장르가 되었다. 그냥 데이타만 놓고 보면,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에 출판 대부분의 분야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서 다른 분야들은 다시 원래 위치로 회복이 되는데, 사회과학은 회복이 안 된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계속 조그만 분야로 버티다가, 지난 몇 년 동안 그나마도 거의 의미가 없는 수치들이 나온다.
전설 같은 얘기들로는, 사회과학이 한국에서의 전성기는 80년대다. 그때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적지 않은 돈을 벌었고, 건물도 올렸고, 그런 전설 같은 애기들이 흐른다. 물론 나는 그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무 묵직하고, 너무 진지하다. 숨 막힐 것 같았다.
<천만국가>는 나오고 나서, sbs 뉴스에 신간소개로 나왔다. 그냥 둬도 어지간히는 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는 바로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가 발생했다. 사회과학에 대해서 생각하고, 정책에 대해서 생각할 분위기는 아니다. 뉴스가 영화보다 재밌고, 드라마보다 서스펜스한 순간들이다. 유튜브 안 보던 나도 한동안 유튜브를 봤는데, 누가 사회과학 책을 보겠나. 내가 책 내고 망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런 일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을 정도로는 신경줄이 굵어졌다.
둘째 아픈 이후로는 강연은 정말 최소한만 했고, 그나마도 몇 년 전 정말로 둘째가 사경을 헤매면서, 방송은 물론 강연도 다 접었다. 생활인으로서의 사정은 다들 있게 마련이다. 나나 아내나, 몇 년 동안 둘째한테 모든 것을 맞춰놓고 살았다. 힘든 일만 있던 건 아니다. 이젠 쇠고기 동파육도 만들고, 맵지 않은 일본식 나베 스타일의 다양한 전골 요리도 만든다. 매워 보이지만,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게 안 매운 음식은 이제 아주 잘 만든다. 유학 시절에 하던 내 요리가 자취생 요리를 약간 벗어난 별식이었으면, 요즘 내가 만드는 것은 보통 가정에서 먹는 요리가 아닐 정도는 되었다. 부작용이 있기는 하다. 우리 집 어린이들이 죽어라고 집에서만 밥을 먹으려고 한다.
원래의 계획으로는 올해부터는 좀 움직여보려고 했는데, 지난 추석 즈음에서 둘째가 다시 폐렴으로 입원하면서 어쩔 수 없이 수정을 하게 되었다. 움직이기는 하는데, 올해까지는 여전히 제한적으로, 아주 조금만..
<천만국가>가 처박히면서, 코로나 이후로 그리고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 사실상 접었던 강연을 다시 하기로 했다. 물론 다다익선, 그런 방식은 아니고.. 시민단체, 지역모임, 도서관, 그런 정도다. 원래도 기업 강연은 안 했고, 특히나 기업 연수 같은 데는 안 했다. 조찬모임도 안 했다. 그 시간에 못 일어난다. 강연 너무 많이 하면, 책 준비하는 작업에 차질이 생긴다. 나는 대가리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서, 계속 붙잡고 고민하는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다행히 교육 관련된 단체들 중심으로 한동안 강연을 하게 되어서, 그 정도는 어떻게든 소화해보려고 한다. 사회과학이라는 장르가 원래 특징이 그렇다. 사회가 같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같이 움직이면서, 같이 고민하고, 또 같이 새로운 대안과 길을 찾아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원래도 그렇다.
한 도서관에서 8월달 강연 부탁이 왔는데, 좀 고민을 했지만, 한다고 했다. 둘째 한참 아프던 시절에는 그렇게 불확실한 약속을 할 수가 없었다. 아픈 게, 언제 아플지 알 수가 없고, 무엇보다도 언제 입원할지 알 수가 없어서, 아무리 멀리 일정을 제시해도 약속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도 시간을 못 내는 건 아닌데, 약속을 할 수가 없다.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까지 짬을 못 내는 건 아니지만, 확정된 약속을 할 수가 없다. 생각해보니, 거의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사회과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사실 사회가 같이 움직이면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대안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는 분야다. 원래도 그랬고,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그렇게 사회 속에서 같이 고민할 때에만 의미가 있는 분야다. 그래서 예술과 다르고, 예술적 창작물과는 많이 다르다. 애호가와 팬이 움직이기 시작해야 발동이 걸리는 예술과는 달리, 사회과학은 팬과 함께 움직이는 분야는 아니다. 참 냉정한 얘기지만, 결국은 애정 보다는 논의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분야다. 이제 조금씩 나도 그 혼돈 속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정답? 그딴 건 없다. 상황에 맞게, 수많은 변형들이 현실 속에서 움직이는 게 사회다. 결국 아수라장과 혼돈을 겪는 수밖에 없다.
내가 데뷔했을 때, 사람들이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라고 했었다. 사실 난 그게 자랑스러웠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아주 넉넉하지는 않아도, 식구들 세 끼 밥 먹고 사는 게 크게 불편하지는 않은 삶을 살았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하면서 살 수 있다.
사실상 한국에서 붕괴하다시피 한 사회과학을 내 힘 닿는 데까지 지키고 버티려고 하는 것은, 내가 여전히 낙관주의자라서 그런 것 같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난 아직도 버리지 않았다. 다음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더 힘들고, 가난할 것이라는 게 oecd의 많은 나라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냥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걸 전복하고 뒤집기 위해서 이론이 필요한 거고, 그런 이유로 사회과학이라는 장르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지나간 일을 해설할 뿐이라면, 이론이 뭐하러 필요하겠나? 지나간 일을 중계만 하는 것, 그게 할 수 있는 거의 전부라고 할지라도, 그런 건 재미가 없다. 뭐라도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죽어라고 서로 고민할 필요가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요 며칠, 이런 생각들을 좀 했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와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이런 생각들을 조금 더 진지하게 하게 만들어주었다.
8월에 인권 관련 단체에서 매우 까다로운 강연 부탁을 받았다. 평소 같으면 형편이 안 된다고 했을텐데, 소신껏 한 번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 시점 쯤에 경제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준비하고 있는 책이 있다. 내가 그렇게 대중적인 사람도 아니고, 인기 있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그렇지만 학자로서, 언제나 최전선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최전선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이젠 나도 좀 편안하게 살아도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형편 되는대로, 조금은 더 움직여보려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20대들이 대거 윤석열의 탄핵을 반대하는 것, 그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국 사회과학이 영광은 아니더라도, 사명이 아직 다 하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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