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에세이는 인쇄소로 넘어갔다. 워낙 전례가 없던 책이라서 출판사는 물론 전문가들도 이 책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가갈지 예측을 잘 못 하는 것 같다. 시작할 때 제목은 ‘나는 좌파다’로 했는데, 그때 같이 제안된 제목이 ‘슬기로운 좌파 생활’이었다. 그리고 중간에는 ‘좌파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을 달고 주로 작업을 했었다. 

결국 마지막에 <슬기로운 좌파 생활>로 제목이 결정된 것은, 일단 이 제목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부드러워서 좋다고 얘기를 했던. 나이가 많을수록 <나는 좌파다>가 좋다고 했고, 나이가 어릴수록 슬기 쪽이..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중에 본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 너무너무 재밌었다. 두 번째 볼 때, 아버지 병실에서 노트북으로 이어폰 끼고 틈틈이 봤는데.. 몇 주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병원 얘기랑 진짜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부드럽고 벽이 느껴지지 않는 쪽을 결국 선택하게 되었다. 

인쇄 시작하는 마지막 순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까, 맨 앞에 쓴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나를 위해서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파로 살았고, 앞으로도 좌파로 살 건데, 정작 한 평생 “나는 좌판데요”, 이 얘기도 제대로 못해보고 살다가는 죽기 직전에 후회할 것 같았다. 망하는 건 괜찮은데, 후회하는 건 싫다. 그리고 변명을 하게 되는 건 더욱 더 싫다. 망하는 건 괜찮지만, 망하는 게 무서워서 아무 것도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결국 변명만 하게 된다. 

아직도 더 많은 소명을 생각하고, 영광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좌파라고 말하기가 좀 곤란한 것 같다. 이해는 한다. 나는 그런 계획이 없고, 그래서 좌파라고 말해도 괜찮다. 그런데도 안 하면, 정말로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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