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어린이집은 이제 곧 졸업이다. 서로 초대해서 가고, 오고, 요즘 사교 활동이 한참 활발하다. 집집마다 다섯 명 맞추느라고, 아빠가 나가기도 하고, 아빠만 남기도 하고. 우리 집 차례에서 한 번은 내가 나갔고, 한 번은 아내가 그 집에 가서 엄마들끼리 차 마시셨고.

영어 유치원 안 보낸다고 어머니가 몇 번 난리를 치시기도 했고, 영어 유치원 안 보낼 거면 사립 유치원이라도 보내라고 하셨는데.. 못 들은 척하고 그냥 애들 둘 다 동네 어린이집 보냈다.

여기는 또 동네 어린이집 보내는 게 유행이 되어서, 나름 몇 년 동안 같이 놀던 친구들이 마지막까지 어린이집에서 같이 놀았다. 이제 학교에 들어가면서 몇 명은 학교가 갈리기도 하고, 또 같은 반이 된다는 보장은 없어서.. 서로 이별을 위한 사교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 중.

둘째 한참 폐렴으로 입원하고, 아내는 퇴사 후 우울증, 그 와중에 그냥 내가 애들 어린이집 가고 오고, 맡기로 하면서 나도 전격적으로 사회 활동을 접었다.

그 사이에 아내는 다시 취직을 했고, 애들도 드디어 어린이집 졸업. 학교 가기 시작하면 훨씬 낫다. 데려다 주는 것도 한 곳으로 가면 되고. 그것도 아내 출근길이라서, 오는 것만 챙기면 될 것 같은.

2년만 더 버티면 나의 육아 시절도 끝날 것 같다. 그 사이에 내 삶도 많이 변했고, 인생을 바라보는 마음도 많이 바뀌었다.

마초로 살아온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남성 엘리트 한 가운데에서 살았던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런 세계와는 아주 멀어진 것 같다.

코로나와 함께 나가서 술 처먹는 일도 거의 없게 되었다. 한달에 한두 번 정도는 여전히 나가는 것 같은데, 아홉시에 딱 끝나니까 너무 좋다. 사교를 위해서 술 먹는 것은 당분간 어렵고, 책 같이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가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술 사주는 정도.

난 원래도 혼자 있는 걸 좋아했고, 혼자 노는 걸 좋아했다. 혼자라고 해봐야, 정말 고독 좀 해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집에 애들 득실득실 거리고, 고양이까지.. 고독이 그립다.

코로나 핑게 대고 강연도 다 없애고, 인터뷰 부탁 오는 것도 정말 피하기 어려운 것 정도만 가끔..

이것도 일감이라고 하면, 내년 말까지는 꽉 차서 이제는 정말 바늘 하나 찔러넣을 틈도 없다. 그런 데도 예를 들면 코로나 경제학이나 박용진-김세연 대담집처럼, 일정에 없는 데도 마구 밀고 들어오는 것들이 있어서.. 별 거 하는 것도 없는데도 헉헉 거리면서 산다. 애들 보면서 뭘 하다보면 예전의 2배 이상 시간이 걸리기는 한다.

그 와중에 부산 가덕도 신공항 시민단체 토론회에 발제를 했는데, 아마도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작은 스냅샷처럼 평생 남을 것 같다. 보람 있었다.

아마도 내가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될지도 모를 때, 평생 돈만 생각하면서 살 거나, 권력만 쫓아다니면서 산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는 몇 십 마리의 고양이들을 돌봤었다. 그때 처음 그 생각을 했다. 니가 살아온 거 보니까, 딱 지옥행인데, 지옥에 안 가도 되는 이유 하나만 대 봐.. 영하 10도 내려가는 추운 겨울날에도 이주방사 중인 케이지 안에 고양이 똥도 치워주고, 밥도 줬는데요.

50이 되면서 내가 주인공이 되거나, 내가 앞장 서는 것에 대한 판타지나 로망 같은 것은 싹 지웠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안 살아도, 삶은 충분히 정신 없고, 심심할 시간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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