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번째 책을 시작하며..
36번째 책은 직장 민주주의였고, 37번째 책은 당인리, 지금 출판사에 가 있다. 38번째 책은 농업경제학, 굉장히 오래된 책이다. '88만원 세대' 디자인할 때 거의 같이 시작했는데, 이래저래 형편이 맞지 않아 지금까지 밀렸다. 처음에는 국민투표로 시작된 스위스 농정이 사실상 결론이었는데, 책이 늦어지면서 이래저래 여기저기 소개하고 되었고, 한 때는 가장 최신 이론으로 통하기도. 그 시기도 지났다. 영국의 defra 소개하던 얘기가, 광우병 집회 때에는 한참 유행하기도 했고. 이것도 지난 얘기다. Csa 소개하던 시기도 있었고. 이건 여전히 살아있는 주제. 노무현 정부, 6헥타르 정책을 막아서면서 농지제도연석회의라는 시민단체 연대회의의 사무국장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아, 진짜 옛날 일이다. 시민단체에 상근 활동하던 시절이 나에게도.. 다 옛날의 일이다. 이제는 세상도 많이 변했다. 그리고 농업은 진짜로 더 어려워졌다. 몇 년 전 같으면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을 이렇게 간단하게는 못하는데, 이제는 아무 일도 아니다.
책은 어느 순간인가 세보지 않다가, 작년 가을에 어느 주말, 심심해서 한번 세보기 시작했다. 아마 50권까지는 갈 것 같다. 별 특별한 의미는 없는데, 괜히 50이라는 숫자가 뭔가 딱 떨어지는 것 같은. 별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다.
한국에서 낼 수 있는 책 중에서, 농업경제학 정도 되면 난이도 특급이다. 농업은 책으로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청와대 농업비서관이 막 임명되고, 축하인사차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농업 책 난다고 했더니, 자료 도움은 주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자료 도움 받아봐야 나중에 피차 곤란한 처지가 될 것 같아서, 말이라도 고맙다고 했다. 어차피 최근에 분석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봐야 큰 도움 안 될 것 같다.
농업 경제학 정리하겠다고 책 모으고, 자료 정리하는 거 보면서 아내가 존경스럽다고 했다. 이게 난이도 상중상이라서 그렇다. 돌이켜보면,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나, 한심스럽기도 하다. 예전에 청와대에 농업 비서관 자리 만들면서, 이젠 좀 나아질 거라고들 했었다. 나아지기는 개뿔. 아무 것도 안 변했다.
지난 총선에 농업 관련된 공약 정리는 신정훈하고 했다. 둘째 태어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박근혜 힘 한참 좋을 때, 신정훈하고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몇 번 술을 마셨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같이 있었던 사람이 그 시절 한참 자주 만나던 원혜영 그리고 아직 유명해지기 전 진선미 누님, 뭐 그런. 신정훈하고 한동안 농업 얘기 많이 했었다. 그런 그가 청와대 농업 비서관이 되었는데, 된장. 행정관까지 그 라인들, 선거가 너무 바빴다. 사요나라.
농업 한참 할 때 참 수많은 사람들이 파트너로 일하고 떠나고는 했다. 인생이란 게 참 묘하다. 노무현 시절, 6헥타르 정책 비판할 때, 정부측 파트너로 나온 양반이 있다. 한참 논쟁하는 사이였는데, 그러다가 자주 보니까 정이 들었다. 지금 농촌경제연구원 원장이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식품안전기본법 만들면서 같이 작업했던 박상표 수의사. 벌써 떠났다. 또 다른 파트너가 송기호 변호사, 그도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
이런 10년 넘는 기간 동안에 보고 경험한 그런 얘기를 하려고 책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실패의 역사가, 지금 와서 뭔 의미가 있겠나.
그래서 책 제목을 '최소한의 농업'이라고 잡았다. 정말 미니넘, 인간적으로 이 정도는 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싶은 얘기만 정리하려고. 대상은 중학교 2학년. 2년에 걸쳐서 어디다 대고 던져야 하나, 분석하고 분석해서 나온 결론이다.
그래도 다음 세대, 잠재력이 가장 높은 사람들에게 얘기를 거는 편이, 어려워도 나을 것 같다. 한국의 분기점은 중학교 2학년이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노무현 시대, 진보 인사들이 하던 말이 "핸드폰 팔아 쌀 사먹으면 된다"였다. 솔직히 외국의 좌파 엘리트 집단 중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어렵기는 하지만 중요하기는 하다, 그 정도가 일반적인 입장이다. 문재인 시대, 뭐가 좀 바뀌었을까? 그래도 그 때는 그런 얘기라도 했다. 뉘기? 뭐라캤나! 아예 관심이 없다.
그야말로 나는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논리적으로는 이런 난이도 높고 험악한 주제는 피해가는 게 답인데, 그렇게 피한 게 15년이 지났다. 나도 더는 피할 데가 없다. 전에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이런 비겁한 변명도 댔었다. 지금은 딱히 이거 안 팔리면 삶이 곤란해지는, 뭐 그런 건 아니다. 잘 되면 좋겠지만, 별 반응 없어도, 한두 번 망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털고 나갈 형편은 된다.
처음 책 쓰기 시작하면서 나 혼자 정한 모토가 "어깨에 힘 빼기"였다. 여기에 '명랑' 하나를 더 더하고, 그 힘으로 10년 넘게 버텼다. 이번 얘기는 그렇게 즐거운 얘기도 아니고, 가벼운 얘기도 아니다. 여기에 최선을 다 해서 유머를 넣으려고 한다. 생태계의 시선이, 보는 각도에 따라서 굉장히 유머러스할 수도 있다. 물론 그래봐야 내가 하는 유머라서 별 거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해보려고 한다.
내가 살면서 본 가장 큰 유머는 YS가 했다.
"박근혜, 그거 그냥 칠푼이라.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대이."
팔푼이에서 한 푼 뺀 칠푼이, YS식 진심이다. 그가 그 얘기를 할 때, 우리는 뭔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그러나 그 유머는 진실이었다. 나도 그런 얘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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