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하고 이러고 논다. 남자 애들이라서, 좀 과격하다... 이렇게 노는 데에도 이젠 많이 익숙해졌다.) 

 

1.

나에게 50이라는 나이는 좀 특별했던 것 같다. 별로 의미는 없지만 장식품처럼 최연소라는 것들이 내게 붙어 다녔다. 이제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뒤늦은’, 이런 것들이 붙어 다니기 시작한다. 별 의미는 없지만, 그런 변화가 한꺼번에 닥친 것이 50이라는 나이였다.

 

이제는 얘기를 해도 될 것 같다. 국회의장이 된 정세균이라는 사나이는, 아무래도 지난 몇 년 간의 내 삶을 생각할 때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진짜로 죽을 고생을 같이 했다. 그가 우리 집 앞에 있는 소주 집에 온 적이 있다. 정권 교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안되면, 같이 세계일주 하자고 했다. 나보다는 그가 더 절박했었던 것 같다. 오세훈과의 선거 때, 정세균은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는데, 그 때 진짜로 정치 인생 끝날 뻔 했다. 그 선거를 이겼다. 오세훈의 정치 인생이 오리무중에 빠지게 되었다. 그 때쯤 둘째가 폐병으로 연거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정세균은 그 선거에 이기면서 국회의장이 되었다. 나는? 웃으면서 내가 하던 일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한참 난리가 났던, 왜 부인까지 대동하고 해외출장을 갔느냐고 하던 그 미국행바로 전날 정세균이 집 앞 빵집으로 왔다. 왜 왔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혹시 그에게 하고 싶은 부탁이 있는지 들으러 온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에게 바게트를 사고, “의장님, 여기 바게트 정말 맛있습니다”, 그렇게만 말했다. 그 후에,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건너 건너 한동안 연락 엄청 왔다. 나는 그냥 못 들은 척 했다. 그 때는 진짜, 마음의 동요가 전혀 없었다.

 

딱 한 번, 진짜로 싱숭생숭했던 적이 있었다. 지방 공기업에서 사장 제안이 왔었다. 워낙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서, 진짜로 싱숭생숭 했었다. 아마 내 인생에, 공직으로 내가 해보고 싶다고 마음이 흔들렸던 마지막 순간일 것 같다. 1주일을 고민하다가, 결국 내려놓았다.

 

애나 보자

 

그 뒤로는 제안까지는 아니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소위 떠보는 전화들은 가끔 있었다. 그냥, 택도 아닌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했다. 가장 최근은, 몇 주 전인 것 같다. 그냥 단박에 거절하기에는 좀 미안했다. 워낙 오래된 관계라. 혼자서 위스키 반 병 마셨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뭐라고 말해야, 이 오래된 사이에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더 했다.

 

2.

둘째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애를 돌보기로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와보니, 상황은 좀 처참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을 보이며 간당간당했고, 둘째가 아프면서 퇴사한 아내는 우울증 직전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내 동료들도 다 힘들었다.

 

그 때부터 2,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을 아주 열심히 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진짜로 아무 것도 아닌 일만 했다. “, 병신이야?”, 요런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래도 그냥 묵묵히 병신 짓만 했다.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 50대 에세이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 신화와 실패담, 우리는 그 두 가지 얘기에 익숙하다. 나는 두 개 다 재미없었다. 삶은, 성공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다. 그냥 사는 거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냥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래저래, 언론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것들을 정리했다. 임시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특별하게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정기적으로 글 쓰는 것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방송도 정리했다. 별 거 아닌 고정도 있었고, 좀 더 심각하게 내 쇼를 만드는 것에 대한 얘기도 약간은 있었는데, 그냥 다 아니라고 했다. 언론이든 방송이든, 고정적으로 하는 것은 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유는 별 게 아니라, 정신 사나워서 그렇다. 가만히 있어야 생각이 난다.

 

강연은 한 달에 하나만 하기로 했다. 그것도 끊고 싶은데저자로서의 숙명 같은 거라고, 그 정도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너는 돈 안 필요해? 가끔 사람들이 물어본다. 물론 필요하다. 2년 전에, 내 차를 치웠다. 생각보다 차가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들 보는 거, 가만히 생각하는 거, 이것 외에는 모든 일들을 없앴다.

 

2년 동안, 나는 숨만 쉬고, 가끔 술만 마시고 살았다. 그랬더니?

 

올 봄에 드디어 2년치 생활비가 모였다. 삶의 긴 터널 하나를 빠져나온 느낌이다. 그 즈음, 몇 년간 내려놓고 있던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몇 년 동안, 내 생각은 너무 무채색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흑백사진도 좋아했고, 가끔 일부러 흑백으로 찍기도 했다. 이제 나는 흑백사진이 싫다.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색감이 있고, 생동감 있는 칼라가 더 좋다. 비루하고 처량한 것들을 오히려 더 그냥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원색 그 느낌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흑백, 아니다.

 

중간에 대학 교수 얘기도 좀 있었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이냐? 이제는 후배도 귀찮고, 제자도 귀찮다. 나는 아무도 가르치고 싶지 않다. 그냥 내 얘기를 조곤조곤 할 뿐이다.

 

생각하는 것, 글 쓰는 것, 딱 이 두 가지만 내 인생에 남겨놓았다. 나머지는, 하면 좋은 것들이겠지만, 나는 할 수 없는 것이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그리고 너무 복잡하게 이것저것 펼쳐놓으면, 생각이 번잡스러워진다.

 

이 변화를 겪으면서 내가 했던 생각들이 50대 에세이의 내용이 되었다. 지내 놓고 쓴 것이 아니라, 쓰면서 지내고, 지내면서 쓰고. , 모든 삶은 그 자체로 다 자기의 현장이다. 어디 현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걸 잘 몰랐다.

 

3.

50대 에세이는, 아마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책이 될 것 같다. 남에게? 혹은 세상에? 그런 어려운 건 잘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생겨난 변화가 있다.

 

나만 혼자 잘 살아서 무슨 재민겨?”

 

책과 글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생각을 할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진짜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해결책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내년도 책 두 권을 책에 관한 책으로 정했다. 책의 미래는 잘 모르겠고, 책의 경제학 정도 될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형편무인지경의 삶에서는 좀 벗어날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좀 해보려고 한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말만 지식경제라는 표현을 쓰지, 진짜 한국, 지식에 대한 기본이 안 된 나라다. 잘 하면 될 거 아니냐? 이런 건, 사실 좀 개소리다. 평균, 전체, 변화율, 변곡점, 이런 거 생각해보면, 너나 잘 해라는 말 보다 더 무책임한 얘기다.

 

너무 희망적인 자세를 가지고 세상을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유 없이 비관적이 되거나, 독설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문제는 원래 풀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건방 떨면서 살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풀 수 있는 문제가 있고,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은, 사실은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한국에서 글 쓰는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방법이 없을 것 같지는 않다. 나의 다음 번 질문이다. 50대 에세이를 쓰면서 생겨난 작은 변화이기도 하다.

 

나만 혼자 편한 거, 별로 재밌는 일은 아니다. 그렇게 보람 있는 일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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