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 중에서, 돈 안되고 영광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들이 엄청 많다. ‘먹고 살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반대의 길을 가는 셈인데, 그러다 보면 내 입에도 어쨌든 세 끼 밥은 들어온다는 게 믿음이다. 아직까지는밥은 먹고 다닌다.

 

다큐 <모래>가 어떻게든 상영회까지는 온 것 같다.

 

가슴에 손을 얹고, 목숨 걸고 꼭 봐야 할 다큐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큐가 그렇듯이, 보면 좋겠지만 안 본다고, 뭐 뒤지는 건 아니다. 세상의 부조리라는 건, 왕조 시대 이후로 늘 있으니, 뭐 그걸 다 해결하겠다고 해서 해결 되는 것도 아니고.

 

다큐 <모래> 안 본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이거 본다고 해서 비루한 삶이 특별히 좋아지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가끔 애잔해지고, 씁쓸하면서, 겉 얘기만큼이나 속으로 남는 진짜 속 얘기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살다 보면 오기도 한다. 어떻게 사람이라는 게 평생 강호동쇼만 보고 살 수 있나, 가끔은 좀 고급스러운 취향이 그리운 순간도 있다.

 

아주 다중적인 의미에서 이 다큐는 문제적 작품이다. 사회성 짙은 얘기들은 저 새끼들 다 나쁜 넘들이야”, 그러면 된다. 아니면 우리 모두 공범이다, 이 자연 앞에서…” 사회적 다큐가 보통 그런데, <모래>는 그걸 자기 안으로 들여오고, 매일 밥상을 마주 보아야 하는 식구들로 끌고 들어온다.

 

, 저걸 같이 찍는 부모들은 심정이 어땠겠나, 그런 애잔함이 있다.

 

삶이라는 건 독하고 잔인한 것, 그 부조리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보시고 싶다면.

 

다큐 <모래>의 상영회에 오시면 된다. 이걸 보고 나서 자신의 예술성이 갑자기 높아지거나, 아니면 사회성이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기분은 확실히 드러워진다. 그 드러운 기분을 잘 삭히면서 하루쯤 지나면, 이제 슬슬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감독이 처음부터 의도한 효과는 아니겠지만, 잉여질의 본질, 그것도 은마 아파트 사는 고급 잉여질이 애잔하게 가슴에 깔릴 것이다.

 

다큐 보면서 은마는 달리고 싶다는 얘기가 계속 떠올랐는데, 은마는 달리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남의 일이면, 댁들이 바로 하우스 푸어이셔요, 이렇게 간단하데, 그게 식구면? 게다가 거기 얹혀서 살고 있으면?

 

하여간 요즘 사는 거 골 아파서, 복잡한 얘기는 절대 볼 생각 없다, 그런 사람은 다큐 <모래> 보고 있으면 100% 졸 거다.

 

요즘 좀 상황이 괜찮아서, 아 나, 간만에 좀 머리 터지는 거 봐도 소화할 수 있어 혹은 아주 드물지만, 요즘 내 문화 취향이 약간 고급이야, 그런 사람에게는 빅 어드벤처.

 

아직 영화 끝나고 무슨 얘기를 할지는, 마음을 정하지는 못했다. 안 그래도 가슴 심난해서 마음 복잡해질 것이 뻔한 관객들에게, 가슴 답답하시죠, 그럴 수는 없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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