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이 단순 명료한 얘기를 꼭 프랑스 사람의 입을 통해서 볼 필요가 있나, 책을 집어들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좀 했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린 맨날 분노하라고 하고, 정신 차리라고 하고그리고 그 메시지가 한국에서 얼마나 무용하고, 무기력한가,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대화하는 것에 대해서 작년부터 골돌히 고민하는 중이었다.

 

잠깐 분노하고, 다시 도서관 가서 취업 준비하는 것, 거기에서 분노가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이 더 많았다.

 

책은 빨려가듯이 읽었고, 아마 정상적으로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 있을만큼, 짧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하다.

 

읽고 나서 최종적으로 든 생각은, 이 책은 한나라당 계열의, 그리고 국가와 민족에 충실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한 번쯤 보아야 할 듯 싶다.

 

한국에도 레지스탕스와 같은 독립 운동의 역사가 없지는 않은데, 이들이 국가를 만들고 세울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레지스탕스 평의회가 했던 결정들 그리고 이런 결정이 드골 정부에서 반영되는 과정이 이 책의 주요 모티브이다.

 

전기, 가스 및 기본 인프라에 대한 국유화 논의 그리고 연금제가 우파 정부에서 도입되는 과정은, 우리의 전개과정과는 좀 다르다.

 

드골주의자들의 눈으로 본다면, 혹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출신들의 눈으로 본다면, 최근의 한나라당의 국가주의와 효율주의를 대충 결합시켜놓은 복지에 대한 담론은, 진짜 웃기는 것일 듯싶다.

 

에꼴 노르말 출신인 저자는, 샤라트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헤겔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우리 식으로 따지면, 정말 엘리트 중의 엘리트의 길을 걷게 된 것이고, 직업 외교관으로 삶을 살았다.

 

특별한 당적은 가지지 않았는데, 사회당 정부가 붕괴한 후 사회당에 가입을 하였다. 95, 시라크가 대통령이 된 것이 그에게도 충격적이었나 보다.

 

담론이라고 얘기하지만, 많은 경우 메시지와 발화자, 두 가지의 관계가 사실 문제의 핵심인 경우가 많다. 무슨 얘기를 할 거냐, 그리고 누가 그 얘기를 할 거냐?

 

한국을 만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중에 김정일에게 분노하라가 아니라 시대에 분노하라고 얘기하게 될 사람이 과연 등장할 수 있을까?

 

책에는 시인 아폴리네르의 시가 인용된다.

 

Sous le pont de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요런 싯구로 아직 기억하는 시인 아폴리네르.

 

이상의 글에 나왔나 ?

 

이 표정 없는 얼굴을 지워버리고 싶다...

 

나는 표정 없는 얼굴에 분노하는 듯 싶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