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옥상 개인적 '바람 일다'에 갔다. 일부러 예정을 했던 건 아닌데, 차 한 잔 마실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마침 개인전이 있어서.


일부러 엄청나게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가급적 보려고 하는 편이다. 보면 좀 아나? 자꾸 보면 알까 싶어서.


흙을 소재로 민중적 일상성 같은 것을 모티브로 했다. 그리고 아주 수다스럽다.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았나?



2008년 촛불집회부터 지난 겨울의 촛불집회까지의 이야기다.


용산참사에 대한 대형작품은 차마 눈 뜨고 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농민집회와 물대포.


댓구 형식의 mb 그림과 박근혜 그림은 좀 참혹하지만 눈길이 끌린다.


'대한민국 재도약의 힘, 창조경제'는 저런 일이 언제 있어나 싶게, 그렇게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 있다.


이 사건이 예술가의 눈에는 어떻게 비추었을까?


마침 이재용도 나온다.





가끔 개인전에는 화가들의 메모나 작품 노트 같은 게 같이 전시되는 경우가 있다. 난 본작품보다 이렇게 사이드 디쉬가 더 좋았던 경우가 많다. 아주 오래 전에 이수근 전시회에서도 그가 남긴 그림 노트와 자녀들에게 만들어준 그림 책, 그런 게 훨씬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새만금은 임옥상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되었는가, 노트 너머로 약간의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새만금에 도요새 난다'


그런 메모가 있었다. 가슴이 약간 먹먹했다.


별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이런저런 잔상이 가슴 한 가운데.


이겨서 기쁘고 행복하다...


가 아니라, 예술가의 잔상 속에 남은 시대상, 그렇게 가슴에 맺혔다.


2002년에 많은 사람이 외쳤던 "오, 필승 코리아"와는 정반대편의 상이라고 할까? 잠시의 기쁨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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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키우면 주말 나기가 아주 어렵다. 어린이집은 놀고, 그렇다고 매 번 어딘가 갈 수도 없고.


 


주말 지나고 나면 서로 지나면서 가족애가 돈독해지는가? 아내와 주말마다 싸우거나 냉전인 빈도수가 점점 더 늘어난다. 올해부터 아내가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일이 익숙해지면서 수입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달부터, 아내가 버는 돈이 우리 집 생활비랑 비슷해졌다. 내년에는 아마 우리 집 생활비하고 조금 남을 것 같다. 물론 그 사이에 생활비를 겁나게 많이 줄였다. 그리고 나는 진짜로 미니멀리즘의 삶을 구현하고 있다. 화려함은 점점 더 몸에서 사라지고 있다. 원래도 화려할 거야 없었는데, 이제는 추접스러운 것으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아내가 벌어오는 돈이 많아지는 것은, 그만큼 아내가 더 정신 없이 바쁘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다음 주에 나도 이것저것 마감이고, 아내도 중요한 발표가 있다. 그런 주말을 지내기는 더더욱 힘들다.


 


방법이 없어서 오늘 오후에는 내가 애들을 대리고 공원에 갔다. 원래는 차 타고 나가는 길에 아이들이 차에서 낮잠을 자지 않을까, 그런 얄팍한 생각이었다.


 


공원에는 마침 분수가 올라오고 있었다. 둘째가 너무 재밌게 놀았다. 마침 오전에 로보카 폴리 일행이 계곡에서 캠핑하는 그림을 가지고 한참 놀았었다. 재밌게 노는 건 좋은데, 둘째가 결국 분수에 옴팡 물을 뒤집어썼다. 조금은 더 있고 싶었는데, 갈아입을 옷을 가져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후퇴.


 


계절이 넘어가는 순간이면 늘 생각이 많아진다. 그렇게 매 번 몇 개의 계절을 보내고, 또 다른 계절을 맞는다. 그 순간들이 모두 기억이 날까? 그 때는 생각이 많았었는데, 지나보면 사실 또 그렇게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그 때만 그렇게 감정이 깊었던 걸까?


 


올해 마지막 분수를 보면서, 뭔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산다는 게 뭔가 하는 생각도 잠시. 세상을 보고, 시대를 보다가, 정작 내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별 생각을 못했다는 생각이 문득.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어지고, 뭐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집착과도 같은 생각도 사라졌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나이테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삶은 씹다가 버린 껌처럼 되었다. 그러면 의미가 없는 거냐? 무엇인가 공격하고, 누군가 욕하면서 삶의 의욕을 느끼는 것보다는, 이 심심하면서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더 진짜 삶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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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핀 것은 처음 본 것 같다. 산에 그렇게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절에 꼬박꼬박 가는 것도 아니다.


큰 애가 기침이 심상치 않아서 병원에 갔다가, 그냥 바로 집에 들어가기가 좀 그래서 집에서 멀지 않은 봉원사에 잠깐 들렸다. 별 생각 없이 잠깐 애들하고 산책이나 할까 싶은.


그래도 연꽃이 핀, 쉽지 않은 구경을 했다.


지난 번 봉원사에 왔던 게, 아마 애들 태어나기 이전인 것 같다. 몇 년 되었다.


별로 절에 오는 편은 아닌데, 봉원사에는 외할머니의 기억이 좀 담겨 있다.


태어난 곳이 봉원사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모두 교사라서, 좀 길게, 외할머니 손에서 컸었다. 그 때 기억이 지금도 내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 성격이 외할머니를 닮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삶에 가장 많이 영향을 남긴 분이 외할머니인 것 같기는 하다.


일곱살 때인가,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기시고는, 내가 학위 받고 현대 다니던 시절까지 살아계셨다. 말년에는 자주 뵙지 못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가 봉원사에 기와를 사셨다는 얘기는 아주 나중에 들었다. 그랬는지 아닌지, 내가 알기는 어려웠고.


내가 기억하는 건,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 잡고 봉원사에 와서 절밥을 먹고 갔던 건 기억에 남는다. 설탕을 묻힌 아주 큰 튀각이었는데, 정말로 맛있게 먹었던 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밥 먹고 나오는데, 문 앞에 있던 스님이 튀각을 한 줌 손에 쥐어주였던 것도 기억이... 나중에 생각해보면 네 살 아니면 다섯 살 때쯤인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연꽃을 보면서 꼭 외할머니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그건 아주 오래 전 기억이고, 나는 또 내 삶이 정신이 없다.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내 삶은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은? 정신도 없고, 굉장히 쫓기는 마음이 강하고, 되는 건 없고, 그래서 편안한 시기는 아니다. 날 도와줄 사람은 거의 없고, 내가 도와야 하는 사람은 겁나게 많고 (가끔은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짜증이 거의 극한으로 가고 있는 시기라고 하면, 아주 틀리지는 않을 얘기일 것 같다. 폭발하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누르고, 버티고 있다고 하면 맞을까?


운 좋게 피어난 연꽃을 보고, 약간 마음이 풀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풀렸다기 보다는, 이제부터 풀어나갈 수 있는 약간의 단초를 보았다고 할까?


강하고 편한 것 같아 보이는 삶, 많은 경우 개뻥이다. 삶은 늘 힘들고, 건조하고, 그 사이로 걱정이 소나기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라도 아름다운 것을 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좋은 것은, 그 아름다운 것이 겁나게 비싼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산과 강을 건너서 가야만 그 아름다운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래서 여전히 삶은 부디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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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그냥 애들하고 노래 부르고 노는 중이다.


생각보다, mp3 화일이 다루기가 쉽지 않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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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노래부르는 걸 좋아한다. 이제 좀 있으면 세 번째 생일이다. 곰 세마리.


어느 토요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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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송은 가능하면 안 할려고 한다. 별로 잘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또 별로 즐기는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둘째 아픈 다음부터는 시간 약속도 해봐야 잘 지키기도 어렵다.


그래도 다큐 같은 거는 가능하면 도울 수 있는 한 도울려고 한다. 동업자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라고나 할까?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정말 최소치의 기여라고 할지도.




지난 몇 년 동안, 공중파를 포함해서 교양 방송이나 경제 방송의 상황은 정말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해졌다. 이 이상 나빠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게 꼭 방송장악, 그런 정치적 이유 때문만도 아니다. 제작비 구조 자체가 진짜 안 좋다.


다큐 만들 때 며칠씩 같이 움직이기도 하는데, 출연료가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럼 돈도 안 받고 뭐하러 가? 내 맘이다. 돈 때문에 움직이는 건 더 기분 나쁘다. 의미가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아니면 그만이다.


최근에 kbs에서 좀 큰 방송을 했고, cbs tv랑 하나 했다. 그리고 요즘 sbs 스페셜 팀하고, 2부작 다큐하는 중이다.


오늘 일단은 마지막 촬영하는 날이다. 세 군데 촬영을 했다. 헥헥.



2.


이래저래, 작년에 하던 일들을 많이 정리했다. 칼럼도 다 없앴다. 없어진 것도 있고.


하다 보니까, 또 다시 조금씩 얹히기 시작한다.


한겨레21에 3주 간격으로 육아 칼럼을 쓴다. 주간지 연재는 예전 시사인에 두 면씩, 매주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야 내가 힘이 좋던 시절이고.


원래는 흐름대로 하면, 계란 파동 다룰 타임이다.


쓸 얘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한 얘기가 좀 있고, defra 얘기가 있다. 그리고 최근에, 책에 쓰기 위해서 defra 조사해놓은 것도 좀 있다.


근본적으로는 주간지의 스케쥴 한계가 있다. 지면에 나가는 것은 다음 주,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기사를 보게 되는 것은 또 그 다음 주. 2주 동안 이슈가 버틸 수 있어야 하고, 그래도 여전히 힘이 있어야 한다.


계란파동은 매일 뉴스가 나온다. 지금은 딱 정타 같아도, 실제 현실에서는 슬로우 커브에 맥 없는 포수 파울플라이 같은 볼이 될 위험이 높다. 그냥 맥락만 안 맞는 게 아니라, 진짜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이럴 위험도.


그래서 급선회...



우리 집 아이들은 가끔 잘 때 보면 손 잡고 잘 때가 있다. 세게 잡을 때도 있고, 살살 잡을 때도 있고.


요 얘기를 쓰기로 했다. 왜 이런 걸 쓰는지 전달하기는 쉽지 않지만, 영 의미없는 포수 파울 플라이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


아니, 지금이라도 고민해서 더 쌈박한 걸?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면, 나는 과로로 바로 죽는다.


3.

이렇게 해야지 생각하고 돌아서니, 네이버에서 연애 칼럼 마감 날짜를 알려온다. 벌써?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미리 좀 원고를 모아놓고 오픈 하려는 거?


연애 칼럼은 2주 간격이다. 쉽게 생각하고 쓴다고 했는데, 주기가 너무 빠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얘기까지 다룰 수 있을지, 아직 가늠이 안된다. 자리 잡을 때까지는 부드럽고 유순하고, 별 탈 없는... 하나마나한 글 쓰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그래도 한동안은 하나마나한 얘기를.


돌겠다.


4.

방송은 안 한다고 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아침에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오는 시간 맞춰서 정봉주랑 sbs 라디오 하는 게 있다.


헉헉. 아침에 아무 것도 안 하는데, 전례를 깨고. 예전 정봉주 감옥 갔을 때 면회 간 적이 있다. 하여간 정봉주와도 약간 복잡한 사연과 안스러움이 있다. 그 때의 안스러움 때문에, 덜컥 해준다고 했다가... 한 번 가는 정도였는데, 당분간 계속.


생방송이라서 쉬운 방송은 아니다. 게다가 아직은 팀웍 등 여러가지로 애로사항이 좀 있어서.


5.

요렇게 다 하면 한 달에 50만원 정도 받는 것 같다. 차비도 안 나온다.


그냥 백만원 다시 주고, 안 한다고 하고 싶은 게 속 마음이지만, 약속한 거라서 꾸역꾸역 한다. 혹시라도 지나다니면서 밥이라도 한 그릇 사먹고 나면 밑지는 건데. 그래도 밥 때 걸리면 꼬박꼬박 밥 사 먹는다, 그것도 맛있는 걸로.


그럼 왜 해?


낮에는 애들 어린이집 가 있으니까, 달리 할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또 나도 별 인기도 없고.


6.

그럼 바뻐?


몇 년 전부터, 바쁘다고 말 하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나는 바쁘지 않다, 게으를 뿐이지.


절대로 바쁘지 않다, 제 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하는, 무능함이 문제일 뿐이지.


죽을 때까지,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말이, 바쁘다는 말이다.


신문 등 외부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게 10년이 넘는다. 아마 7~8년 전인가? 한겨레에서 억지로라도 외부 기고 원고료를 올려야 한다는 흐름이 있었던 적이 있다. 그 때 딱 한 번 원고료가 조금 오른 기억이 있다.


최근에 글 쓰면서 원고료 보니까, 안 오른 게 아니라, 내려갔다. 이유야 100개쯤 있을텐데, 원고료 책정한 거 보면,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싹 없어진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바라보는 시건 때문에 그렇다.


너 말고 여기에 글 쓰고 싶은 사람들 많아...


카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렇다고 이러면 안된다고 나서서 뭐라고 할 정도로 내가 권위가 있거나, 인기가 있는 건 아니고, 또 그럴 실력도 안되니까, 그냥 꾹 참. 나는 전혀 바쁘지 않으니까.)


7.

바쁘다고 하면 지는 거다, 진짜로 그렇다. 내가 못나서 일을 못하거나, 아는 게 없어서 못하는 거지, 바빠서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 안된다.


바쁘지 않다.


(그렇지만 영화 <불한당> 보고 금요일까지 분석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보지도 않은 영화인데, 이건 또 언제 보고, 언제 또 분석하나. 그래도 나는 바쁘지 않다.)

 

바쁘다는 얘기는, 정말로 죽을 때까지 안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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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제일주의


 


1.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다빈치 코드>를 아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그가 작년에 <비틀즈 : 에잇 데이즈 어 위크>라는 다큐를 만들었다. 나도 다큐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모든 다큐를 다 볼 수는 없다. 우연히 이 다큐를 보고, 꽤 충격을 받았다. 바로 다큐를 구매하고 며칠 동안 보고 또 보고,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또 보았다. 나만 본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동료들에게도 다 보라고 했다. 동료들은 다 보았고, 모두들 엄지 척.


 


비틀즈는 63년에 혜성과 같이 등장하여 64년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강타한다. 도대체 이 열풍이 언제까지 갈까, 비틀즈 현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해석도 잘 못했고, 예측도 못했다. 66 8,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지막으로 비틀즈는 돈 받고 하는 대형 공연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들의 끝은 좋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공연 자체도 초라했고, 어느 관객이 공연장을 뛰어다니는 난장을 치면서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것이 공식적인 비틀즈 공연의 마지막이었다.


 


여기까지는 뭔가 했다가, 잘 안되었다가, 접었다가규모가 커서 그렇지, 평범한 얘기다. 물론 론 하워드도 "애네들, 진짜 잘났어요", 이런 평범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상업영화 감독이 갑자기 다큐를 집어든 것은 아니다.


 


그 후로도 상당 기간 그랬지만, 비틀즈도 초기 계약조건이 좋지 않았다. 앨범은 큰 돈이 되지 않는 구조였고, 공연을 해야 비로소 돈을 벌 수 있었다. 더 크게, 더 자주, 그렇게 공연을 했다. 그리고는 지쳐갔다. 이 상황에서 제일 처음 문제점을 느낀 것은 존 레논이었다. "Help"라는 노래가 그렇게 존 레논의 작사작곡으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만 해도, 나머지 멤버들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이게 뭔 소리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샌프라시스코 공연이 엉망이 되고 아마 폴 메카트니가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Enough!"


 


아마도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실제로 그 공연을 마지막으로, 진짜로 비틀즈가 공연을 모두 접는다. 다큐에서는 이 장면이 진하게 온다. 아마 비슷한 구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1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그리고 다시 3부 리그로, 그렇게 점점 더 하위 리그로 내려가면서도 어떻게든 상황을 더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90년대 후반에 미사리가 한참 뜨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미사리에 놀러 가자는 말을 많이 했었다. 한 번 가보고는 다시 안 갔다. 거기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도 고통스럽겠지만, 그걸 지켜보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좀 이후에, '미사리 가수'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얘기다.


 


공연을 그만둔 비틀즈의 다음 얘기는 다큐에서 아주 짧게 지나간다. 그렇지만 길게 사연을 서술하면서 충분히 감정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얘기는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조금 감정선이 강한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한 번쯤 울기도 할만할 것 같다.


 


비틀즈는 스튜디오로 돌아간다. 그리고 정말로 노래만 만들고 녹음만 한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들이 만들어진다.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말자."


 


비틀즈 멤버들끼리 약속한 것은 딱 하나였다. 예전에 했던 것들과는 어떻게든 다른 걸 하자. 그렇게 비틀즈 후반기의 노래들이 만들어진다. 여기서부터가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


 


"렛잇비" 앨범을 준비하는 와중에 애플음반사 옥상에서 깜짝 콘서트를 한다. 애초에 애플음반사와 앨범 계약을 할 때 그 내용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더벅머리를 하고, 같은 스타일의 양복을 입고 있던 네 명의 청년은 66년부터 4년 동안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개성은 극대화된다. 그 모습을 그 유명한 옥상 컨서트에서 볼 수 있다.


 


 


2.


살다 보면 뭔가 잘 안될 때도 있고, 의미 없이 재미가 없어질 때도 있다. 잘 안되거나, 하기 싫거나. 위기는 그 둘 중의 하나이다.


 


왜 안 되는가? 그 이유를 알면 세상에 안 되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중에 지나보면 알 수 있을지 몰라도, 뭔가 안 되는 순간에 그 이유를 잘 모른다. 알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른다. 안 되는 이유를 알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면 서운할 것 같아서 안 되는 이유를 이것저것 대보지만, 사실은 모른다.


 


안 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은, 핑계다.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이유를 모른다. 같은 이유로, 잘 되는 사람도 잘 되는 이유를 모른다.


 


"자기가 잘 해서 잘 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할 일일 것 같다. 분석도 이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성격도 이상해진다. 자기가 잘 하는 것, 거기에도 수많은 이유가 있다. 엄청나게 많은 동료들의 도움이 있고, 많은 사람의 지지가 있고, 여기에 인생에 한 두번 올 법한 운도 따랐고


 


자기가 잘 해서 잘 되는 거, 세상엔 그런 거 없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없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국에는 자본의 입맛에 맞는 것잘 하긴 뭘 잘해, 그냥 자본에 예뻐 보인 거지.


 


자기가 잘 해서 잘 된 게 아니라면, 논리적으로 곤란한 일이 생긴다. 잘 되는 것도 이유를 잘 모르는데, 안 되는 것의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잘 되는 것의 이유도 불분명한데, 그것의 반대 상황인 안 되는 것의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있을까? 그냥 재수가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최소한 '큰 바위 얼굴' 같은 얼굴은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논리적으로는 그렇긴 한데, 결심하는 순간이 하나가 필요하기는 하다. 66년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엉망으로 끝내고 비틀즈 멤버들이 했던 결정은, 말 그대로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렇다고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안티테제, 그야말로 비틀즈의 그룹 역사가 서양철학적 논리 구조와 같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뭔가 전환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하나가 있기는 했다.


 


그런 복잡한 얘기들을 내 식으로 하나의 용어에 묶어 넣었다.


 


창작 제일주의.


 


옳고 그르고는 모르겠고, 좋다와 나쁘다도 모르겠다. 될 거다, 안 될 거다, 그런 건 더더욱 모르겠다. 그렇지만 뭔가를 만들기는 해야 한다는 거.


 


그런 걸 나는 창작 제일주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진짜 삶을 삶답게 만드는 힘은 스타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있는 거 아니겠는가 싶다. 만드는 거, 그게 재밌는 일이다. 재밌고 재미없고, 되고 안 되고는 그 다음 일이다. "본질이 스타일에 있지 않다…" 이 생각을 하는데 50년이 걸렸나 싶다.


(그리하여 10년만인가, 블로그 이름을 '우석훈의 임시연습장'에서 '창작 제일주의'로 바꿨다. 내 이름을 뺐는데, 이름 필요 없고. 수식어도 필요없고. 창작을 하느냐 마느냐, 행위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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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름을 바꾸려고 한다. 제일 좋아했던 이름은 네이버에 쓰던 '여기는 등대'였다. 그게 제일 감성에 잘 맞았는데, 너무 잘 난 척하는 것 같아서 재수 없다는 생각이 가끔은 들었다.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 쓴다고 하도 뭐라고들 해서. 블로그 제목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책 제목 중에서는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같은 느낌의 글들을 많이 쓰려고 했었다. 인상 써봐야, 피곤하기만 하다. 노무현 정부 때 그런 스타일의 글을 많이 썼다.

그리고 보수 정부 10년을 그냥, 그야말로 죽지 못해서 버텼다. 이제는 블로그 이름도 바꿀까 한다. 뭘로? 아직은 모른다. 하여간 좀 더 밝고, 그런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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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요즘 블로그에 글을 못 쓰는가?

 

2004년부터 하루에 A4 3~4장은 글을 썼던 것 같다. 그 중에는 괜찮은 글도 있고, 뭔가 전혀 방향을 못 잡은 글도 있고, 생각은 맞는데 전혀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못한 글도 있다. 그렇긴 한데, 그게 나의 습작 시절이었다고 생각하면 대체적으로 맞는 것 같다. 수많은 생각의 시도들을 했고, 표현의 시도들도 했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로 영 블로그에 글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못 쓰는 것도 있고, 안 쓰는 것도 있고, 더더군다나 쓸 참이 없는 것도 있고.

 

작년부터는 그래도 조금씩은 블로글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영 쉽지 않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봤다. 왜 나는 요즘 블로그에 글을 못 쓰는가?

 

1.

일단은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 물론 애 보는 틈틈이 잠시 컴을 켜는 것이니까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게 맞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다른 글들은 쓰다가 쉬었다, 다시 쓰다가 다시 쉬었다, 이렇게 끊어가면서 글을 쓴다. 다른 글을 못 쓰는 것은 아니고, 블로그 글만 못 쓴다. 시간이 없기는 없는데,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2.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 그런 것 같다. 별로 신경 쓰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데, 나만 혼자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신경을 좀 써야 하는 시간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가 뭘 어떻게 생각하는지, 요즘 누가 지켜보고 신경을 쓰겠나. 혼자 하는 생각이다.

 

물론 블로그에 글을 쓰면 누가 보기는 본다. 그렇지만 예전에 비하면 이제는 별로 내 생각이 뭔지 중요하지도 않아서, 별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써도 되는 상황이다. 괜히 나 혼자 눈치 보는 습관이 든 것 같다. 남들 배려하는 것과 눈치 보는 것은 좀 다르다. 엄한 짓을 혼자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잠시.

 

3.

너무 잘 쓸려고 한다. 그건 나중에 진짜 인쇄 매체로 갈 때 고민을 해도 되는데, 초고 때부터 너무 가설적인 얘기들을 앉히는 것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런 게 괜한 욕심이다. 눈치 보는 데다가, 잘 쓰는 것처럼 보이려는 생각까지 겹치면, 이래서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4.

가끔은 술 마시고 글을 쓴 적도 있다. 술 먹고 책을 쓰지는 않는데, 글은 가끔 썼다. 술 먹고 글 쓰는 것은 안 하기로 꽤 오래 전에 마음을 먹었다. 술 마실 때는 맘 편히 술만, 글 쓸 때는 편안하게 글만.

 

안 그래도 안 쓰는데, 술 먹고 쓰던 것마저 없어지니까, 아예 안 쓰게 된다. 술 먹고 잠깐 생각은 나는데, 깨고 나면 잊혀진다.

 

그래도 술 먹고 글 쓰는 것은 안 하는 게 낫다. 그렇긴 한데, 글의 분량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5.

그리고 책을 너무 안 읽는다. 죽어라고 읽어야 뭐라도 좀 남는데, 절대적인 독서량 자체가 너무 줄어들었다. 책에서 오는 새로운 정보가 없다. 그렇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이 가장 많이 날 때가 원래 책을 읽을 때다.

 

6.

방송 진행 하다가 겉멋도 들었다. 기본적인 방향만 잡으면, 실제로 자세한 얘기는 출연자들이 알아 오거나 작가들이 정리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게 효율적인데, 그러다 보면 기술만 늘고, 실제로 뭐가 뒤지고 찾는 일은 덜 하게 된다. 아니면 아예 안하고, 진행만 생각하거나. 바보 같은 일이다. 화려한 것은 잠시이고, 오래 가는 것은 단 하나라도 진짜로 만드는 일이다.

 

7.

그리하여, 눈치 안 보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시도들을 다시 하기로 했다. 괜히 쭈그리고 있다가 생각이 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내가 뭘 하든지, 뭔 생각을 하든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다. 혼자서 이것 맞추고, 저것 맞추고,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 그 지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한 문장, 두 문장 짜리 글이라도 좀 더 많이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려고 한다.

 

, 오늘은 토요일 밤, 지금부터 간만에 눈치 안 보고 술 한 잔 마시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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