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신공항 토론회를 줌으로 두 시간 좀 넘게 했다. 줌으로 한 건데, 그것도 토론회라고 힘이 들었다. 애들 간식 챙겨주고 나서 바로 잠 들었다.

원래 대로라면 지금쯤 부산에서 저녁 먹고 있거나, 부랴부랴 서울로 돌아오고 있었을 일정인데, 줌으로 하니까 그런 부담은 없어서 좋다.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여야 입장이 같고, 거기에 맞서는 매우 소수파가 되는 경우가 있다. 토건 사업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제주도 일에 꽤 많이 관여하게 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 시절 부산과 제주, 이렇게 주로 관찰하던 지역 경제의 모델들이 있었다.

아라중학교에서 처음 친환경 급식 도입하던 시절이 기억에 크게 남는다.

그러다 건강이 크게 안 좋아지면서 돌아다녀야만 할 수 있던 일들을 정리를 좀 했다. 지역 경제 연구하던 것도 그렇게 좀 정리.

그 시절에 마지막으로 들여다보던 게 강정마을 사건이었다. 비교적 초기였는데,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보던 게 광주 패트리어트 부대 문제도 보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마지막으로 부탁받았던 일이 크루즈항에 대한 경제성 평가에 대한 의견. 원래 크루즈에 대해서 관심도 많았고, 서울 시장이던 오세훈이 한강에 크루즈 띄우겠다는 뻘소리하면서 크루즈 논쟁도 한 적이 있었다.

크루즈항에 대한 의견 보내고, 공식적으로 제주도에서 뭔가 하지는 않았다. 제주 도청에서 자리를 마련해줄테니까 대안 경제 모델 연구 같은 것을 해달라고 하기는 했는데.. 건강상 그렇게 하기가 어렵고.

그 시절에는 우리나라에서 GRDP 같은 거 들여다보면서 지역 경제 모델 같은 거 연구하다가, 좀 여유가 생기면 아프리카 경제학으로 넘어가려고 했었다. 30대 후반부터 건강이 아주 안 좋아지면서, 어지간한 일들은 다 접고.. 아프리카 경제학에 대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꿈을 접으면서 지역 경제에 대한 연구도 같이 접었다.

MB 집권한 다음에는 도대체 뭘 하고 사는지 아무 정신 없이 시간이 하다닥 흘러갔다. 그리고는 근혜였다. 공교롭게도 그렇게 5년+5년이 나의 40대와 겹쳤다. 그렇게 40대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이, 그냥그냥 흘러갔다.

그냥 황당한 일들을 막기 위해서 맨몸으로 버틴 것 외에는 40대의 기억이 거의 없다. 대선 거의 마지막 순간에 후보이던 문재인에게 몇 번 고맙다는 메일 답변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마지막 보고서를 보내면서, 이게 사실상 정말 인간적으로 맘 편하게 보는 건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50이 된 다음에는 아무 목표와 방향도 정하지 않고, 하지 않을 것만 정하고 아이들 보면서 지냈다. 공직에 가지 않기로 했고, 방송을 하지 않기로 했고. 그런 소소한 것들의 리스트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가덕도 문제로 지역 현안 맨 앞에 서 보니까, 살아온 삶들이 잠시 주마등처럼 흘러지나갔다. 2003년부터니까 30대 초반부터 이런 지역 현안과 주민들 싸움의 맨 앞에 서기 시작하면서, 거의 그냥 사람들 도와주기만 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혼할 때에는 뭐 먹고 살거냐고, 아내 쪽 집에서도 좀 반대가 심했다. 밥이야 먹고 살지 않겠냐고, 나도 좀 뻔뻔한 대답을..

지내보니까 밥이야 먹고 살았다. 비싼 음식 중에서 꼭 먹고 싶은 게 별로 없다. 곱창전골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하는 데가 별로 없다. 메기 매운탕이 최고의 음식으로 치지만, 동네에 자주 가던 데는 벌써 다 망했다. 이 정도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비싼 음식들 축에도 못 끼는 음식들이다. 한우 구워먹는 것도 그닥이고, 하다못해 남들 다 좋아한다는 삼겹살도 식당에서 먹는 건 별로다.

생각이 이리저리 길어진 것은, 30대 초반에도 남들 다 피하는 주제에 혼자 맨 앞에 서는 일들이 많았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도 그런 주제가 있다는 게, 약간 신기하기도 하고, 약간 서럽기도 하고.

내 뒤로 경제학 박사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겠냐. 돈 안 되는 거 피하고, 위험한 거 피하고, 귀찮은 거 피하고.. 이리저리 다 피하다 보니까, 결국 애들 보다 말고 내가 줌 카메라 앞에 앉게 되는 거 아니겠나 싶다.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먹고 사는 게 다가 아니고, 높은 자리에 가는 게 다가 아니다. 인생은 눈 감을 때 웃고 죽는 놈이 이기는 거다.

내가 살아서 깨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죽을 때 웃고 죽고 싶다. 소망이 있다면, 그거 하나가 내 소망일 것 같다. 손에 쥔 거, 성취했다고 하는 거, 남들 이긴 거, 그런 게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있게 해주겠나?

언젠가 죽을 때 기억에 남을 한 장면 같은 하루를 산 것 같다. 부산 시장 보궐 선거 앞두고, 민주당은 진작에 특별법 만든다고 했고, 김종인이 한일 해저터널 들고 나왔을 때.. 나는 부산의 시민단체와 코로나 한 가운데에서 줌으로 토론회 발제했다.

토론회 말미에 유튜브로 올라온 질문 대답하다 말고, 하교하는 아이들 초인종이 울렸다. 저, 점시만요, 뒤에 분 좀 먼저 하시면.. 결국 문 열어주고 왔다. 원래는 그 전에 끝날 예정이라서 아무 생각 없이 있었는데, 딱 내 대답 차례에서 초인종 제대로 울렸던.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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