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민주주의, 에필로그까지 끝냈다. 이제 내가 쓸 글은 다 썼고. 나중에 수정 다 끝낼 때쯤, 아주 짧은 서문 하나만 쓰면.

지난 2년 동안, 나는 내가 살아오던, '습'이라고 하는 많은 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애 쓴 것 같다. 버린다고 버려지지 않는 것들도 많다. 빈도도 줄고, 강도도 줄었지만, 여전히 술 처먹는다.

사는 건 많이 편해졌다. 애들도 그나마 좀 커서, 어린이집 데리고 가고 오고, 엄청 편해졌다. 통장도 편해졌다. 아내 버는 돈으로 생활비는 된다. 내 인세도 작은 돈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지난 달에 예정에 없게 차를 사느라고 돈이 좀 나갔는데, 그 사이에 빈 자리가 대충 찼다. 워낙 내가 쓰는 돈이 없으니까, 그냥 적당히 살고, 적당히 참으면 그만이다.

책 한 권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잡으면, 큰 책이든 작은 책이든, 거기에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털어넣는다. 물론 그래도 제대로 못 털어넣었다고, 나중에 후회하게 되기는 한다.

직장 민주주의는 잔고 걱정하지 않게 된 이후로 첫 책이다. 아마도 국가의 사기와 직장 민주주의를 경계로, 나의 책 세계도 좀 바뀔 것 같다. 국가의 사기가 잔고 들여다보던 시기의 마지막 책이고, 직장 민주주의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시절의 첫 책이다.

그 사이에 벌어진 일은?

책을 계속 쓸지, 이제 그만 쓸지, 좀 생각을 했다. 돈 때문에 책 써야하는 상황은, 그걸 약간 즐기기도 한 것 같지만, 별로 계속 하고 싶지는 않다. 왜 책을 쓰는가, 생각을 지난 2년간 많이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딱 우리집 생활비 만큼은 당분간 계속 책을 쓰기로.

누군가 책을 쓴다고 마음을 먹을 때, 어느덧 내가 기준점이 되었다. 나는 엄청나게 팔리는 분야의 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뭔가 크게 유행이 되기 어려운 주제를 주로 다룬다. 그 대신, 꾸준히 한다.

초창기에는 밤 그것도 12시 넘어서 주로 글을 썼다. 그리고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잠깐씩 눈 붙이는 거 말고 며칠씩 계속 쓰기도 했다. 옛날 일이다.

요즘은 주로 오전에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나서 쓴다. 보통 2시간, 많으면 3시간, 그리고 땡이다. 오후에 한 번 더 자리에 앉기를 매일 바라지만, 그런 날이 별로 없다. 그리하여..

강연, 방송 기타 등등, 11월 이후로는 일단 종료. 오후에 두 시간 정도 더 책상에 앉아있는 것과, 그래도 나가면 몇 십만 원은 받는 것 사이를 비교하며, 주변에서 이러면 안된다고 나에게 말해준다.

됐슈.

먹고 살만혀유. 만드는 시간과 파는 시간의 균형, 그딴 거 필요없다. 모든 힘은 만드는 데에 집중. 시간 나면, 더 새로운 거, 더 극한의 것, 안 해본 얘기, 여기로 투입. 간단한 원칙.

안 팔리면, 더 잘 만든다. 그래도 안되면? 그럼 진짜 더 잘 만든다. 그것도 실패하면? 그 때 안 만들어도 된다. 아직은 그 때는 아니다.

문체, 문장, 이런 거 신경 쓰던 시절도 있었다. 이젠 그런 것도 아 잊었다. 무슨 얘기, 누구 얘기 할 거냐, 이게 다다. 재미없는 얘기에 문체니 문장이니, 의미 없다. 별로 관심가지 않는 사람 얘기, 그 얘기를 하지 않는 게 낫다.

장식, 필요 없다. 한 페이지가 아까워서 가뜩이나 고밀도로 압축하는 중인데, 장식 달 여유 없다. 독자가 숨쉬면서 넘어갈 공간, 필요 없다. 내 책은 꼭 필요한 사람이 보는 거고, 그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얘기를 채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면 그만이다.

불어로 portee라는 단어가 있다. 그런 말은 영어에도 없고, 우리 말에도 별로 안 쓰는 말인데, 철학 등 이론에서 현실적으로 많이 쓰는 중요한 단어다. 사정거리 정도 된다. 이게 쏘면 얼마나 멀리 나가는 것이냐.. 나는 그 사정거리를 최대로 키우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왜?

안 그러면 내가 지금 책을 쓰고 있을 이유가 없거던. 볼 책도 많고, 볼 영화도 많고, 놀러갈 데도 많고, 이 나이가 아니면 하지 못할 일도 많거던.

하여간 이런 마음으로 꾹꾹 눌러서 내 책 중에서는 가장 사정거리가 긴 책을 마무리했다.

쓰면서 이런 정도는 나도 생각했다. 내가 언제까지 책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직장 민주주의 책 이전과 이후로 나뉘겠구나 싶은..누가 그렇게 봐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변했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변하면, 내가 하는 일이 바뀐다. 당연한 얘기다..

하여간, 며칠이라도 당분간 좀 놀아야겠다.

 

 

(직장 민주주의 에필로그에 윌리엄슨을 인용했다.. 사람 이름 최소로 쓰려고 했는데, 정말 최소한이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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