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태학의 기본은 머리 수 세기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체수가 어떻게 변해가는지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피식자와 포식자의 관계, 흔히 프리데이터-프레이 모델이라고 부르는 가장 대표적인 모델인 로테카-볼태라 모델인데, 정말로 아름다운 곡선들이 나온다. 이 세계에서는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얼마나 시스템이 오래 갈 것인가, 그것만이 문제다. 동물 생태계에는 노화 현상은 없고, 보통은 사이즈에 대한 얘기만 한다. 가장 쉽게 동물 생태계의 사이즈를 보는 것은 최상위 포식자의 존재 유무다. 호랑이나 곰이 최상위 포식자로 존재하는 시스템의 크기가 가장 크다. 늑대가 최상위인 곳은 그보다 사이즈가 작다. 멧돼지가 최고의 포식자인 생태계는, 정말로 아주 아주 작은 스몰 사이즈다. 고라니인 경우는? 포식자 없는 동물 생태계는 보존 지역일 뿐이다. 그렇다고 곰을 방사한다는 발상은, 이건 좀 기형적이다. 곰이 산다고 해서 동물 생태계 사이즈가 더 커지지는 않는다.

 

시스템의 변화하는 것과 개체의 변화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개별적 존재는 공룡처럼 계속 자라는 것 즉 정비례 곡선인 경우와 뱀 같은 파충류처럼 계단식 성장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죽을 때까지 자란다. 그리고 포유류는 로지스틱 함수, 역으로 된 S자 곡선에 따라 일정 수준이 지나면 성장을 멈춘다. 경제가 포유류의 로지스틱처럼 생겼느냐 아니면 공룡처럼 순증형이냐, 오래 된 논쟁이다.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는 로지스틱처럼 생겼다고 썼다. 물론 <국부론>의 이 부분까지 읽는 사람은 전세계적으로 몇 명 없다. 자연에 존재하는 많은 유기체들의 경제학자들이 쿠츠네츠 함수라고 부르는 역 U자형, 엎어높은 컴()처럼 생긴 모습을 갖는다. 열심히 올라가다가 피크점에 달하면 내려온다. 이런 피크점이 한 번 더 있으면 쌍봉형 모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많은 자연계의 현상은 피크점에 도달하면 내려오게 된다.

 

인간의 삶이 꼭 피크점이 하나인 것만은 아니다. 2 전성기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다. 프로야구 투수들은 나이 먹어서 속도를 포기하고 제구력이나 변화구 구종 추가 같은 방식으로 두 번째 전성기를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야구 선수는 되는데, 사람은 안 돼? 물론 된다. 사람의 삶은 자연 현상보다는 복잡할 수 있다. 어쩌면 인생, 그 자체가 생태학이나 경제학보다 더 복잡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학문에서는 그런 개인이 가지고 있는 복합성은 무시한다. 특출난 개인이 있거나 특별한 개인이 있더라도 시스템의 운명에 큰 차이가 있거나 변화가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한 인생을 제대로 관찰하는 데 연구자 한 명의 인생만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좋은 줄 알아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의 삶을 세밀하게 관찰한 소설이 경제학 보다 더 낫다는 말에는 동의!

 

인간을 변화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보고, 피크점이라는 기준을 들이대면 어떻게 보일까? 20대의 특징은 아름다움일 것 같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드문 경우라고 알고 있지만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키가 자랐다. 꽤 자랐다. 심지어는 유학 가서도 약간 자랐다. 내가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다면, 그 시절일 것이다. 20대에 성장과 노화가 엇갈리는 선이 온다. 더 이상 자라지는 않지만 아직 늙은 것은 아닌, 그 선이 교차하는 순간, 모든 사람은 아찔하도록 아름답다. 그 순간의 생각도 예리할 정도로 아름답다. 성장과 노화의 교차선, 모든 감각이 최고조에 달하고, 그 불균형이 극도로 달했을 때, 사람은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MB 20대 얼굴 사진 검색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도 20대에는 아름다웠을까? 가끔 현대건설 대표로 행사에 참석해서 순실이 얼굴과 교차로 나온 MB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 순간의 그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30대 한국인은 머리가 피크에 도달하는 것 같다. 신체의 모든 기능이 노화하기 시작했어도 머리 만큼은 더 발달하는 것 같다. 몸이 위축되기 시작하니까, 모든 에너지를 뇌로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살아야겠다! 심지어 머리카락을 새로 만들 힘까지 뇌로 보내는 것 같다. 탈모가 시작된다. 차라리 머리를 좀 덜 쓰고, 더 많은 에너지를 모근으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불수의근이 있는 것처럼, 자꾸 머리카락이 머리를 위해서 희생한다. 30, 내면보다는 외면을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여긴다. 만약 우리가 그 나이에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어떨까? 소용 없는 회상이다. 20대에는 술을 마시면 토한다. 30대에는 이제 토하는 일도 힘이 없어서 못한다. 술 먹고 토하는 것, 가장 아름다운 나이인 20대의 특권이다. 어지간히 먹어서는, 육체가 배출도 못하고, 그냥 버텨, 나도 힘들어... 위장과 식도도 더 이상 토악질을 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렸다. 그 나이가 대충 30대다. 위장이 남은 에너지를 전부 머리로 보낸다. , 같이 좀 살자, 술 좀 그만 먹어, 생각 좀 해라. 몸의 다른 부위가 에너지를 더 많이 보내면 보낼수록, 번민이 많아진 머리는 자꾸 술집으로 몸을 이끈다. 그렇게 먹을 수 없는데도 30대가 죽어라고 술을 먹는 것, 머리가 피크에 달하는 시기라서 그렇다. 천재들이 보통 33세에 죽는다. 예수도 그랬고, 모차르트도 그랬다. 하다못해 우리들에게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들어주고 색동회까지 만들어주신 소파 방정환도 33세에 죽었다. 진짜 천재가 모든 것을 이루고 떠나는 나이, 그게 30대다. 40, 안스럽지만 이제 천재들은 이미 사라졌고, 그냥 남은 사람들끼리 이렇게 저렇게 세상을 꾸려가는 것 아닌가?

 

30이 지나도 머리가 계속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 그건 머리가 아주 나쁘거나, 한국 사람이 아니다. 정상적으로 술을 마시는 한국인의 머리는 30대가 피크다. 그리고 점점 나빠진다. 그걸 감안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고, 그걸 염두에 두면서 작전을 짜야 한다. 나이 먹으면 이해력이 좋아진다느니, 지혜가 늘어난다느니, 깨달음이 생겼다느니, 그런 얘기들을 한다. 원래 늙으면 그렇게 말이 맞아지는 법이다. 두뇌의 피크치는 30대에 지난다. 싫어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 대머리가 된다. 결혼하기 전에 대머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남자들은 영혼도 팔 수 있다. 그리고 탈모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이미 진행된 탈모에 자기 마음을 맞추면서 살아야 한다. 아니면 정말 괜찮은 가발을 쓰고 정서를 거기에 맞추거나. 머리도 마찬가지다. 점점 안 좋아지는 머리에 맞추면서 사는 거지, 자기만 혼자서 머리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인생만 고달파진다.

 

40에는 무엇이 피크에 달할까? 지표상으로는 한국 직장인의 연봉이 최고치에 달한다. 50대 평균 보다는 40대 평균치가 높다. 그렇지만 이건 경제적인 것이다. 신체적으로 40대가 최고치에 달하는 것은 밸런스일 것 같다. 몸도 적당히 노화되기 시작했고, 머리도 상당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퇴화의 시작이지, 퇴행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인간의 삶이 가장 균형적이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나이일 것이다. 최고의 밸런스를 가질 나이다. 40대 후반 혹은 50대 초반, 호르몬이 분비에 변화가 오게 된다. 남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여성 호르몬의 분비로 예상치 못했던 마음의 동요를 겪는다. 여성들도 여성 호르몬의 감소로 밸러스가 갑자기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전까지, 인간의 육체는 최고의 밸런스를 갖는다. 지덕체, 문무겸비, 외유내강, 혼연일체, 이렇게 전통적으로 좋다고 하는 덕목들이 대부분 밸런스에 관한 얘기다. 40대에 인간이라는 동물은 최적의 밸런스를 갖는다. 대통령하기 딱 좋은 나이다. 캐네디가 43살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 시절 미국, 정말 복 받은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40대 총리는 여전히 계속 등장한다.

 

, 그렇다면 50대에는 무엇이 최고조에 달할까? 육체적으로만 보면, 흰머리가 최고조에 달한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있던 치아는 이미 더 이상 버팉 수 없어서 몇 개는 이별했다. , 다리, 근육, 연골, 관절,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을 감사하면서 고맙게 쓸 나이다. 아직 치매는 본격 오지 않았더라도, 부분적인 알콜성 치매는 다들 조금씩 가지고 있다. 머리를 얘기하기에는 이제는 진짜 쑥스러운 나이다. 두뇌회전 보다는 치매가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이 봐줄만한 것은 흰 머리다. 그 나이에도 인격수련이 덜 되고, 20대 때 했던 것처럼 민감하게 여기저기 참견질 하면 자기 성질에 자기 머리가 못 견디고, 아디오스! 60대에 흰머리라도 남아있던 시절을 못 견디게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경제적 지표상으로는 50대가 자산상으로는 피크치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재산은 좀 많다. 그리고 아직 빚이 좀 적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않는다. 한국의 60대의 경제 지표는 소득이 급격히 느는 대신에 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일본의 60대와는 다르다. 물론 지금 60대가 그렇다는 얘기고, 지금의 50대가 10년 후일 때 경제지표가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 이론적으로만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지금 50대 하는 것만 외형적으로 봐서는, 10년 후에 이 추세가 더 나빠지면 나빠지지,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지나간 20대를 그리워하고, 오지 않을 30대를 그리워할 것인가? 흰머리라도 남았던 이 시기를 그래도 가장 좋았던 시기라고 회상하면서 앞으로 딱 살았던 만큼, 50년을 더 살게 된다. 할렐루야, 아멘!

 

2.

학부 1학년 때, 우리 친구들은 경제학이라는 이 이상한 학문에 대해서 푸념이 많았다. 너무 평균치가 많고,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결론을 답이라고 써야 학점이 나왔다. 물론 완전 보수 쪽 선생님이라서 자기 수 틀리면 D학점과 F학점을 남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꼭 그런 거 아니라도, 직관적이지도 않고, 경험적 지식과는 다른 내용이 너무 많았다. 그나마 선형대수나 수리통계학 같은 수학 많이 들어간 과목에서 나오는 증명식 같은 게 예술적이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다. 수학 증명식이지만, 우린 대부분 일단 외워놓고 언젠가 이해 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버텼다. 사회학과나 정외과 친구들은 무슨 수학을 그렇게 많이 하냐고 놀려댔다. 그 시절에는 수학 많이 나오는 과목이 제일 좋았다. 그냥 풀면 점수 나오는 거라서, "저는 좌파 아니예요", 이렇게 군사정부 시절에 서술식 답안에 사상 고백을 할 일이 없었다. 생각하는 대로 쓰라고 해놓고서는 생각하는 대로 쓰면 너무 점수를 안 줬다.

 

한 번은 점수가 너무 이상해서 교수를 찾아갔다. 주섬주섬, 답안지를 꺼내시더니, 나에게 답안지를 보여주셨다. 채점하다 말고 빨간펜으로 죽 그어진 긴 줄이 보였다. 그나마 열심히 써서 이 점수라도 준 거라는 말도 있었다. 그가 나를 미워한 것은 아니다. 내 생각을 미워한 것일 뿐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회개하라는 얘기를 하셨다. 날 사랑해서 이 점수를 주는 것이라는 말도 하셨고, 교회에 같이 가자고도 하셨다. 대학원에 꼭 들어오라는 말도 하셨다. 당신이 나를 빛으로 인도해준다고 하셨다. 점수는 최악이었지만, 그가 나를 미워해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이라는 정도는 나도 이해했다. 아주 오랜 세월에 지난 후, 학회 끝나고 다시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옛날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힐튼 호텔 로비에서 위스키 한 병을 사주셨다. 사람의 망각은 좋은 것이다. 나는 그 위스키를 마시고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날 학교 정문으로 내려오면서 유학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날까지 모르고 있었다. , 내가 미션 스쿨에 다니고 있었지. 아멘! 주여 함께 하소서.

 

사람들은 자신은 평균치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와 별로 다르지 않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극값 혹은 코너 솔류션 같은 것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건 극히 예외적이다. 그리고 육체의 연령은, 생각보다 과학적이다. 정신의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건 잠시간의 시간에 가능한 것이다. 뚱뚱해져 버린 프로야구 감독들, 그들의 정신력이 나만 못하겠는가? 4시간 넘게도 진행되는 프로야구를 월요일 빼고 매일매일 지켜보는 사람들, 정신력 갑이다. 우리 중에 프로야구 감독보다 정신력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별로 없다고 본다.

 

육체적으로는 이미 하강 곡선이 예전에 지났고, 머리는 그나마 치매 안 걸린 것을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는 나이가 50이다. 나는 다르다? 다르지 않다. 전에 살았던 수많은 한국의 50대들이 그런 마음으로 살면서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당하는 집단이 되었다. 평균치보다 아래인 것을 걱정해야지, 평균치보다 위인 것을 자랑할 나이는 아니다.

 

그렇게 약하게 마음을 먹으면 정신적으로 확 늘어버릴 것 같다는 사람을 보았다. 그 정도면 병이다. 탐욕, 욕심, 집착, 성욕, 많은 경우 이런 것들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서 육체의 피크가 지난 다음에도 계속 커질 수 있다. 좋은 것은 점점 사라지고, 나쁜 것은 점점 늘어나는 것, 우리가 MB와 함께 이미 한 번 보지 않았는가? 끝까지 20만원 밖에 없다고 하는 전두환과 함께 본 것 아닌가? 사람, 다 거기서 거기다. 이걸 받아들여야, 지금부터 15년 정도 남들한테 손가락질 안 받고 경제생활을 더 할 수 있게 된다.

 

3.

영화 <라디오 스타(2006)>는 흥행은 별로였지만, 최고 인기 예능방송과 제목 그대로 라디오 방송이라는 파생 상품을 만든 영화다. 한물 간 가수왕 박중훈과 그보다 더 한물 간 매니저 안성기의 얘기다. 영화 개봉 전 시사회 때 직업 매니저들을 많이 초청했다. 그들이 이 영화를 보고 폭포와 같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 들었다. 실제 영화는 지역색 강한 얘기들을 만들자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지만, 실제 의도는 뒤에 숨어서 누군가를 돕는 매니저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화 초입에 결국 미사리 카페까지 몰린 박중훈이 결국 참지 못하고 난리를 친다. 카페 주인은 좀 화난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많이 화가 난다. 예전의 동료였지만, 가수 최곤을 결국 경찰서 유치장까지 집어넣는다. 그래서 돈을 물어주고 나와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된다. 이 때 카페 주인이 하는 말이 있다.

 

"한 물 갔으면 좀 찌그러지는 맛이 있어야지, 이거야 원."

 

성공한 사람들은 지금은 100세 시대라서, 나이도 옛날 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그들 식으로 계산하면 아마 반 정도 나누면 될 것 같다. 40이면 옛날 20, 50이면 예전 25, 그렇다는 거다. 그런 식으로 계산하면 세종은 요즘 나이 90세에 한글을 창제하시고... 그런 식이면 이순신 장군은 104세에 명량해전을 이끄시고, 이렇다는 얘기다. 심심해서 하는 얘기지만, 하여간 전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그리고 과학적이지도 않다. 내가 50이니까 옛날 25세에 해당한다는 얘기인데, 정말로 꽃처럼 아름답던 나의 25세와 지금의 흰 머리 난 나를 어디를 놓고 비교한단 말인가! 내가 지금 아무리 늙고 한물갔다고 해도, 꽃처럼 아름답던 나의 젊은 시절에 대한 모욕이다. 50 50, 나의 나이는 호모 사피엔스 표준형이다. 경제 시스템이 변한다고 해서 인간의 육체도 변하지 않는다. 조금 더 처 먹어서 더 윤택하고, 더 부유하고 그래서 성인병에 더 많이 노출될 뿐이다.

 

이런 모습은 국회에 가면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만 45세 이하를 청년이라고 규정한다. 그 기준이라면, 내가 <88만원 세대>를 청년, 그야말로 당사자의 입장에서 썼다는 말이다. 그 때 내가 30대 후반이었지만, 우리 경제의 문제라고 생각은 했지, 바로 내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여기는 좀 낫다.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당대표 되면서 청년 당원의 기준으로 50세로 올렸다. 오매나야. 내가 지금 자유한국당으로 가면 바로 청년이 된다. 한국의 자유로운 보수들의 세계에서, '마음만 청춘'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청년이 된다. 그런 정도의 시선이면, 43세에 대통령을 했던 미국의 케네디는 청년 정도가 아니라 보이스카우트 수준이다. 이게 지금의 현실이다. 농담 삼아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진짜로 정치 특히 보수 쪽 정치에서 현실의 기준이 이렇다. 한참 농업경제학 공부할 때 농촌 지역에 자주 갔었다. 농촌 지역에 청년회장이 50, 55, 이러는 것은 본 적이 있다. 자기들이 그 동네에서 가장 젊다는 거다. 다 웃었다. 농촌의 현실이 그렇기는 한데, 지금 국회의 현실도 그렇다. 대선에서 졌으면 좀 부드러워져야 할 것 같은데, 그들은 청년 기준을 그나마 50세로 올렸다. 영 목이 뻣뻣하다. 그나마 청년당원을 35세로 규정한 정의당이 좀 사회의 기준과 비슷하다.

기대수명과 고령화 추세만 보면 자신이 상대적으로 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진다. 마음은 알겠지만, 경제적 추세는 그와는 반대다. 이미 직장인 기준으로 40대의 평균 연봉이 50대보다 많다. 법적 정년은 60세까지 점차적으로 올라가겠지만, 실질적인 정년은 구조조정과 감원 등으로 더 내려올 것이다. 경제적 지위가 내려가면 곧이어 사회적 지위도 내려간다. 힘은 빠지지만 나이만 먹는, 그 현상이 점점 더 밑으로 내려온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사람은 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도 된다. 딱 봐도 자기는 장관은 한 번 할 것 같은 사람도 다르게 생각해도 된다. 이런 데는 작동 방식 자체가 좀 다르다. 그러나 그 길이 아니라면, 50대가 갖는 최대의 덕목은 '찌그러지는 맛'이다. 한 물 갔으면 좀 찌그러지는 맛이 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능을 좀 더 활용할 수 있다. 좀 찌그러면 10, 제대로 찌그러지면 15년은 자신이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더 일할 수 있다. 제도가 거기에 맞춰져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후배들에게 찌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은 사람들은 전혀 다른 직종에서 단순 기능직을 하게 된다. 거기서는 맘대로 해도 된다. 어차피 돈을 조금 준다. 그렇지만 그런 거 다 싫다고 창업하는 것 특히 프랜차이즈 창업은 진짜 아니다. 그냥 퇴직금과 모아놓은 돈을 가지고 비실비실, 시름시름 사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확률, 99.99%이다.

 

20대는 아름다운 시간이다. 행보나 보들래르처럼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들이 지금의 50대와 일하고 싶을까? 30대는 머리가 핑핑 도는 나이이다. 그들에게 머리 자랑하는 50대는, 병신이다. 40대는 마지막으로 밸런스가 딱 맞는 나이다.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 경제의 야전사령관들은 그들이다. 그래서 아직 우리가 망하지 않은 것이다. 이 사람들과 동료로, 수평으로 같이 일하는 것만이 50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는 길이다. 최고의 경쟁력은 찌그러지는 맛이다. 어차피 우리는 이미 아니면 수년 내에 한 번쯤 한 물 간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거나 아무 실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 실력은 자신이 찌그러질 때, 비로소 사회화되고 시장 안에서 상품화된다. 40대 이하, 전부 일하기 싫다는 50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10년 조금 욕심 내면 15년 더 현역으로 일하고 싶다. 큰 돈 바라지도 않는다. 한 달에 100만원 이상, 이거면 만족한다. 내가 찌그러지기만 하면 그 일을 할 수 있는데, 내가 머리에 권총 맞았다고 큰 소리 치고, 자존심을 내세우겠는가? 당연히 나는 한 물 갔으니까, 찌그러진 맛이 나는 삶을 살도록 나를 디자인했다. 그래서 요즘 나와 일하는 에디터들의 만족도가 조금은 높아졌고, 같이 일하고 싶은 저자가 되었다. 나랑 고만고만한데 아직 덜 찌끄러진 저자들이 있다. 20, 30대 에디터들이 기피한다. 요즘 청년들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어차피 그 돈 모아서 집 살 것도 아니니까, 싫으면 그만이다. 대표나 사장이 달래도, 싫으면 싫은 거다. 나도 그들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시절, 머리 팽팽 잘 돌아가는 시절, 왜 한 물 간 '꼰대들' 비위 맞추면서 인생을 낭비할 것인가? 나라도 그들 입장이면 그렇게 할 것이다. 자존심 세우고 단순 노무직으로 일하는 것과 찌그러진 맛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그래도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 뭐가 낫겠는가? 당연히 나는 찌그러진다.

 

50대가 가장 잘하는 것, 그건 찌그러지는 것이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화는 안 날까? 물론 나도 가끔은 화가 난다. 아직 덜 찌그러져서 그런 것이다. 나는 반성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7, 5, 두 아이가 편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 찌그러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 내가 죄가 많아서 남들 아이 다 낳을 때 팽팽 놀다가, 이제야 애를 키우니 좀 더 찌그러져야겠지...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 속에서 열불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이렇게 혼자 속삭인다.

 

그래 참, 지식을 개똥으로 알고, 문화를 자판기에 돈 넣으면 나오는 코카 콜라로 아는 나라에 살지. 문화강국을 얘기한 김구 선생은 총 맞아 돌아가셨고...

 

이렇게 생각하고, 소주 몇 잔 털어 마시면 다음 날 조금 더 부드럽게 찌그러질 수 있다.

 

50대의 찌그러지는 맛, 이것은 생태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최적의 해법이다. 아름다운 20대는 찌그러지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날 것의 맛이 나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잘 돌아간다. 머리 잘 돌아가는 30대가 벌써 찌그러지면 안 된다. 기술강국, 너무 멀어진다. 밸런스의 40, 그들이 찌그러지면 한국 경제의 기초 밸런스가 무너진다. 과하지 않고 덜하지 않고, 너무 슬프거나 너무 노하지도 않는, 그 밸런스, 그게 현장 사령관인 한국 40대의 강점이다. 그들도 찌그러지면 안 된다. 50, 이제는 찌그러지는 맛 외에 다른 걸 하면 안 된다. 좀 찌그러져서, "여기서 저 그냥 이 일 하고 있을께요", 그런 게 서로를 위해서 좋다.

 

물론 부모가 손자에게 상가를 물려줄 수 있거나, 당장이라도 건물 몇 채를 물려줄 수 있다면 찌그러지지 않아도 좋다. 원래 개망나니는 50이 되어도 개망나니다. 그저, 남 때리고 다니지나 않는 것으로 만족하며, 국가 부가가치세와 재산세 납세에 도움을 주면 그만이다. 안 찌그러져도 된다. 그렇지만 난 그런 거 없다. 기꺼이 찌그러지고, 20대와 30, 청년들하고 기꺼이 같이 일을 할 것이다.

 

"선생님, 좀 귀여운 맛이 있어요."

 

정말 잘 찌그러지면 어느 날 술 마시다가 젊은 동료들이 이런 말을 하게 된다. 그날 나는 집에 와서 너무너무 기뻤다. 이제야 내가 좀 마음 속에서부터 제대로 찌그러지고 있구나. 그 때 내가 15년은 더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 게, 술을 좀 줄이기 시작했다. 100만원이라도 매달 벌 수 있고, 그걸 15, 내 경제생활은 보너스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보다는 돈을 더 많이 벌 때가 많다. 내 가슴 속에 자리잡으려던 암세포가 떨어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50대 한국인, 역시 찌그러지는 맛이 진정한 장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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