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새만금 해수유통

 

우리나라의 생태운동의 큰 출발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반핵, 하나는 새만금. , 크게 보면 그렇다.

 

새만금 개발파는 언제나 멋진 그림을 그렸고, 조감도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참, 멋진 그림들을 그렸다.

 

그러나 우리는 늘 꼬질꼬질했다. 언론은 늘 우리를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 근본주의자, 고리타분한 인간, 그렇게 몰아붙였다. , 꼬질꼬질한 건 맞다. 우린 늘 돈이 없었고, 우리를 치장할 줄도 몰랐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아내와 만난 건, 새만금 때의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새만금 방조제에 아내가 올라가던 때의 일이다.

 

아내가 삭발을 했다. 정말 예뻤다. 나는 그녀가 그 정도로 살벌하게 에쁜 줄 몰랐다. 그러나 삭발을 하고 나니, 정말로 눈이 부시도록 예뻤다. 그래서 예쁘다고 그랬다. 아내는 내 말을 곡해했다. 삭발한 순간도 예쁘다고 해주는 남자물론 난 그렇게 화사하고 멋진 남자는 아니다.

 

어쨌든 아내는 그렇게 삭발을 하고 새만금 방조제로 올라갔고, 그 위에서 물대포를 맞았다. 내가 아내에게 선물로 했던 핸펀은 바다물 속에 풍덩했고, 가방도 바다 속에 풍덩.  

 

, 다친 데 없으면 되었다. 그러나 바다 위 방조제에서 활동가들에게 물대포를 쏜 것은 살인행위이다, 그걸 내가 잊지는 않는다. 아무리 삭발한 활동가라도 그냥 물에 빠지라고 물대포를 쏜 행정 행위에 대해서 잊을 수가 있겠나.

 

나는 그 삭발한 활동가와 결혼했다. 그리고 우리는 9년을 살았다. 아이가 안 태어나서 참 맘 고생 많이 했는데, 올 여름에는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

 

그 중간에 새만금과 관련된 사연도 많다.

 

어쨌든 사람들은 생태운동이라고 하면, 꼬질꼬질하고 꾀죄죄하다는 이미지를 덮어 씌우고, 세상 물정 모르는 옛날 사람처럼 몰아붙인다. 반대를 위한 반대주의자, 그렇게 해놓은 이미지 속에서도 어쨌든 우리는 결혼을 했고, 우여곡절 속에서도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나름대로는 재밌게 산다.

 

세련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아름답게는 산다.

 

오늘 블로그 이름을 새만금 해수유통으로 바꿨다.

 

이 문제에는 해법이 있다. 그리고 우리도 많이 양보했다.

 

마치 해법이 없는 것처럼 우리를 몰아붙이는 사람들과 지난 10년 내내 싸웠다.

 

오늘부터 내 이름은 새만금 해수유통이다. 그 때 아내가 20대였다. 20대 여인이 삭발하고 새만금 방조제에 올라가던 순간, 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그녀를 사랑했다.

 

어정쩡하게 새만금 개발하자고 다시 나서는 사람들에게, 아무 일도 없는 듯, 가만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적들의 수괴, 새누리당은 남경필이고, 민주당은 박지원이다.

 

니들이 죽나, 우리들이 죽나, 지금부터 전쟁이다.

 

4대강 돈은 다 빨아먹었고, 4대강 후속 사업은 국회 통과가 어려워보이니까, 이번에 눈을 돌린 게 새만금이다.

 

새만금 찬성하면서 토건 문제 있다고 하는 거, 그건 말이 안된다.

 

내 블로그 이름은 오늘부터 새만금 해수유통이다. 지금부터 전쟁이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