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다보면 진짜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유행을 따라가면 그래도 다른 넘들이 어떻게 했나, 그런 게 좀 기준점이 되기는 하는데.. 유행을 역행하려고 할 때에는 아주 힘들다. 내가 쓰는 책들은 대부분 유행을 역행하거나, 유행과는 상관 없는 주제들이다. 그래서 더 힘들기는 하는데, 그만큼 보람은 있다. 사회적 경제나 직장 민주주의 같은 경우,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한 쪽 구석에 처박혀져 있던 오래된 주제들을 다시 꺼내서 논의 테이블에 올린 것만으로도 기쁨을 준다. 아마 전문강사였다면 그 얘기 가지고 강연만 해도 몇 년을 버틸 아이템이기는 한데.. 나는 또 다음 주제, 그렇게 넘어왔다. 

최근에 리셋 대한민국 형식으로 사회적 경제 심포지엄 부탁이 있었다. 그건 책으로는 어렵지만, 일회성 심포지엄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셋 대한민국의 포맷으로 '리셋 에너지'를 내자는 얘기가 생겼는데.. 리셋 대한민국의 판매가 워낙 부진했다. 스핀오프를 낼 정도 규모가 아니라서,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졌다. 

요즘 좌파 에세이를 정리하는 중이다. 1장 넘어가는 시점인데, 그야말로 현타가 왔다. 내가 이걸 왜 쓰고 있나,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것인가,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위험한 도약'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생산의 무계획성에 관한 얘기다. 만드는 거야 지 마음이지만, 그게 시장에 나가서 교환이 될지, 그건 무정부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한 마디로, 팔리지 안 팔리지도 모르는 걸 만들어서 시장에 내보내는 순간이 '위험한' 도약이라는 마리다. 이걸 속되게 표현하면 "대박 나세요"라는 말과 같다. 안 팔릴지도 모르는 물건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일단 만들어야 하는 것이, 위험한 도약을 앞두고 있다는 말과 같다. 상업이라는 것은 그와 같고, 상업출간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1장을 정리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내가 좌파 얘기를 하고 싶은 대상은 내 친구들이 아니라 청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선진국들이 한 번씩 만나는 보수화의 길로 들어섰다. 청년들이 앞의 세대보다 더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한국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다. 영국에서 토니 블레어가 기든스의 제3의 길을 내세워 이걸 한 번 넘어섰는데, 젊은 보수인 데이빗 카메론이 등장하면서 방법이 없게 되었다. 독일은 아예 보수 쪽에서 몇 년 집권하는 중이고, 프랑스도 자체적으로는 극우파를 제어할 후보를 낼 수가 없어서, 이제는 대선 결선투표에도 못 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90년대 프랑스 공산당에 혜성처럼 등장한 로베르 위에 대한 얘기를 오후에 정리하다 보니까.. 그도 지난 대선에서 마크롱 공개 지지하고, 얼마 뒤 정계은퇴한 것 같다. 

이 변화를 맞으면서, 과연 좌파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과연 내가 대학생이라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런 생각도 들고.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까, 제목을 "청년 좌파들을 위한 연가" 정도로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겠나 싶다. 한국에 청년 좌파가 있나? 없지는 않다. 세상이라는 것은 묘한 균형이 생기는 법이다. 국민의 힘에 당원으로 가입하는 10대, 20대가 있으면, 그 반대편에는 다른 흐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얘기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지나간 일에 대한 얘기는 사실 별 재미 없다. 그것이 아무리 영광된 것이라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 일일 뿐이다. 노스탈지아가 파토스로 변하기는 어렵다. 삶이 재밌기 위해서는 적당한 파토스가 필요하다. 살아있는 그 누구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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