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뭔가 싶다. 

몇 주 전에 오전에 당인리 너무 재밌게 봤다고, 일요일 오후에 뜬굼 없이 원순씨 전화를 받았다. 조만간 한 번 보자고 해서, 연락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되었다. 

많은 사람에게 박원순은 서울 시장으로 기억되겠지만, 나에게는 참여연대 시절이 더 강렬하다. 고대 김균 선생이 피케팅 안 하는 조건으로 참여연대랑 얘기가 잘 되었다고 집단으로 같이 하기로 했단다.. 참여사회 연구소에서 나는 산업정책을 맡았다. 현대에서 일하던 시절인데, 그래도 니가 제일 거기에 가깝다고. 철강, 석유화학, 이런 거 한참 연구하던 시절이었다. 

김기식 보다 박원순을 먼저 알았다. 장하성 선생은 조금 뒤에 만났다. 장하성 펀드나 총선연대 같은 걸로 이 사람들이 유명해지기 전이었다. 연구에 관련된 돈이나 이런 걸 주로 박원순이 맡았었다. IMF 경제위기를 이들과 같이 했었다.

그 시절에는 박원순이 하는 일에 내가 비판을 하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름다운 재단 하던 시절에도 행사 있으면 종종 가서 도와주고는 했다. 

햐.. 

사는 게 뭔가 싶다. 시민운동에서 최열, 박원순, 이러던 1세대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는 2세대가 금방 등장해서 뭔가 할 것 같더니, 실제로는 그렇게 잘 전환이 안 된 것 같다.  이제 시민운동은 약세다.

얼마 전에 박원순 캠프 만들어진다고 좀 도와달라는 부탁이 있기는 했는데, 나는 원래도 캠프에는 안 간다고 했다. 정책에 최선을 다 하지, 사람한테 충성하는 거, 내 스타일 아니다. 그래도 필요한 일 있으면 조금씩 도와준다고는 했다. 

그래도 박원순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가 걸어온 삶에는 감동이 있다. 그래서 함께 하면 늘 든든하고, 편안하고, 그랬다. 박원순 없는 서울도 이상하다. 때때로 잘 했다고 하고, 때로는 치고받고 난타전에 가깝게 비판하기도 하고. 

서울시 일에 관여하기 시작한 게 고건 때 부터니까, 이게 참 오래된 일이다. 오세훈의 서울시가 너무 싫었다. 박원순이 보궐 선거에 나온다고 하면서, 정말 처음으로 sns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뭐라도 좀 도와주고 싶었다. 

박원순과는 야당 시절의 기억이 많다. 명박 시절, 근혜 시절, 그와 등을 맞대고 수많은 일들을 했었다. 이제 처음으로 그가 없는 한국, 아니 그가 없는 서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허무하고, 허망하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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