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스크

영화 이야기 2019. 3. 31. 12:11

'쿠르스크'라는 러시아풍 제목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뭐가 있을까? 원래의 제목은 'ensemble jusqu'au bout', 끝까지 다함께 혹은 마지막까지 다함께, 그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여간 한국에서는 4만 명 약간 넘게 본 영화다.

콜린 퍼스 나온다고 해서 봤는데, 나오기는 하는데.. 콜린 퍼스 얘기는 아니고. 중간에 잠시지만, 웃기기는 했다.

잠수함 영화라는 아주 독특한 쟝르가 있다. 망한 영화지만 k-19이 겁나게 재밌었고, 레드 옥터버도 엄청 재밌게 봤다. 진 해크만하고 덴젤 워싱턴 나왔던 '크림슨 타이드'는 '조직의 재발견'에서 조직 분석할 때 주요하게 다루었던 텍스트 중의 하나였고.

그러니까 나는 잠수함 영화 엄청 좋아한다. '유령'도 봤다, 극장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잠수함 영화가 한국에서는 망한다. k-19의 극적인 실패는.. 나의 삶에도 조금은 영향을 주었다. 잠수함 영화는 왜 한국에서는 힘들까?

특징상, 잠수함 영화는 공간이 좁고, 압축적이다. 그래서 밀도를 높이기 좋은 장점이 있다. 그 대신 생각을 좀 많이 해야 한다. 함의적이고, 중층적이다.

하여간.. '쿠르스크'는 2000년에 벌어진 러시아 함대 버전 세월호 사건이다. 실화다. 도저히 구조할 수 없는 고물 잠수정을 가지고 파손된 잠수함 내에 갇힌 선원들을 구하.. 려던 얘기다.

k-19은 비슷한 상황인데, 선원들 대부분을 살린다. 함장이 반역자로 몰리는 것을 감수한다. 레드 옥터버도 설정은 비슷한데, 이번에는 함장이 미국으로 망명을 한다. 미국 핵 잠수함이 중간에 개입한다. 그리고 이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바로 닥터 라이언, 닥터 라이언 시리즈의 바로 그 닥터 라이언이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젊은 시절의 얘기다. (cia 말단 조사관에서 시작해서 'sum of all fears'에서 드디어 cia 국장이 된다..)

간만에 좀 진한 영화를 봤다. 보고 나서..

아주 옛날에 영국 리즈에 갔던 시절이 생각났다. 학회 갔다가 리즈의 젊은 교수랑 얘기가 잘 맞아서 저녁 내내 술만 처 먹던 기억이..

그 때가 막 한국에서도 dj로 정권 바뀌었을 때였지만, 영국도 토니 블레어로 정권이 바뀐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젊은 학자들이 엄청 희망에 가득차 블레어를 도와야 한다고 하고, 좀 나이 많은 할배들은.. 그래봐야 소용 없대이. 그 어수선한 한 가운데에를 직접 본 기억이 났다. 진짜, 그 후로 영국 좀 좋아졌을까? (그 다음 학회에도 발표해달라고 초청장이 왔었는데, 에너지관리공단으로 옮긴 다음에는 학회에 참가할 수가 없어서, 다시는 그 학회에는 못 갔다..)

정치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운명, 그리고 국가. 그런 질문들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쿠르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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