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의 책 '당신을 이어 말한다', 마저 보았다. 피케티 책 추천사 써주기로 한 게 있어서, 그걸 읽어야 하는데, 읽던 거라 마저 읽는 편이..

가끔 인생을 바꾼 책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움베르트 에코의 책들이 대체적으로 그랬다. 뉴욕 평론가 스타일이나 파리 평론가들의 익숙한 글이 아닌 다른 방식, 다른 내용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도 이제 50대 중반이다. 애들 보는 중이라서 더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새로 만나는 사람은 매우 적고, 나에게 오는 정보들은 고급 정보일지는 몰라도 제한적이다. 그것만 가지고 세상을 좁게 보면, 병신, 쪼다, 머저리, 이렇게 되기 딱 좋다.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의 내 인생을 바꾸게 될 책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내가 누구랑 얘기하고, 누구를 궁금하게 생각하고, 어디를 처다보면서 살아야 할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길보라라는 이름은 잘 몰랐지만, 하자 주변에 있을 때 '로드스쿨러'라는 말은 들었고, 탈학교 운동 쪽에서 그런 얘기를 몇 번 들었다. 

아주 예전의 기억을 연결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던 이슬아 등의 이야기가 책 막판에 연결되면서 기억 속 퍼즐의 한 조각들이 맞아나갔다. 권김형연은 녹색당 시절에 처음 만났던 것 같고, 그후 대학원에서 강연을 한 번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때도 참 기억에 오래 남았는데, 책을 통해서 또 다른 갈래를 이해하게 되었다. 마침 이번 주에 다른 행사에서 만난다. 

주류 상업주의 시각으로 보면 그야말로 변방에서 벌어지는 마이너들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내가 지내던 곳이 원래 그런 곳이다. 돈 안되고 아무도 잘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곳, 나는 그곳에서 출발했고, 여전히 그런 일들을 주로 한다. 생태 운동 초창기가 그랬고, urbanism 처음 시작할 때에는 더 그랬다.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풀뿌리 민주주의 같은 얘기는, 처음 내가 그 주제를 다룰 때나 지금에나 일관되게 밝은 이미지가 아니라 어두운 이미지다. 한국은 여전히 중앙주의적이고, 로컬은 여전히 '지방 방송'이다. 지역에서 로컬을 소리 높여 외치는 순간은 공항 같은 거 만든다고 하는 토건 행진을 할 때 정도 아닌가? 

이길보라의 책을 읽으면서 이준석 생각이 잠시 났다. 그도 참 춥고 어두운 시절을 견디기는 했는데, 머리가 너무 좋은 게 한계인지, 아니면 그 덕분에 길을 개척한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건 그가 살아갈 인생이고, 또 한 명의 정치 지도자로서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한국에서 지금 이준석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이길보라와 그와 글이든 영화든,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 아닐까 싶다. 

내가 누구와 남은 인생을 보내야 할지, 깊게 생각해보는 순간이었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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