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때 혼자 밥 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70살까지 살면 잘 산 편일 것 같다. 20세에 교통사고로 죽을 뻔 했다. 지금까지도 잘 살았고, 70까지만 살아도 감지덕지다.
그렇게 잠시 생각을 해보고 나니까, 이제 남은 시간은 얼핏 15년 정도 되는 것 같다. 10년 정도는 더 움직일 것 같고, 그 뒤의 5년은 아무래도 다 내려놓고 조용히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20대 때 나의 생각했던 나의 말년은 노르망디 바닷가에서 바다를 보면서 혼자 조용히 쉬다가 마지막날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바다가 그렇게 좋았다. 평생 좋았다. 지금 같아서는 노르망디 간다고 따로 돈을 모을 처지도 아니고, 혹시라도 그런 돈 있으면 애들이 다 먹어치울 것 같다. 어마무시하게 먹어댄다. 하여간 말년은 잘 모르겠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래저래 10년이라.. 30대만 해도 끝이 어딘 줄 모르고 그냥 태평양처럼 넓은 동화지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제 여백이 얼마 안 남았다.
계산은 쉽다. 2년간, 최소 둘째 초등학교 2학년 마칠 때까지는 움직이는 건 최소한이다. 외국에 1년 갔다 올 생각은 있는데, 이건 잘 모르겠다. 아내 일정도 봐야 하고, 애들 사는 것도 봐야 하고.
이러저리 빼고 나면 10년이래봐야 정말 얼마 안 남는다. 말이 좋아 10년이지, 60만 되도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확 줄어들 것이다. 나는 그렇게 건강한 편도 아니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다.
남은 시간에 뭘 할까, 좀 생각을 해봤다. 펼쳐 놓은 일들 정리하는 거야, 그냥 하면 되는 거고. 그렇게 하기로 한 일 하다가 시간이 다 되었다. 그렇게 내려놓는 건 좀 재미 없을 것 같고. 너무 욕시 부리지 않고 적당하게 살다가, 때 되면 내려놓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그래도 한국이 좀 더 재밌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재밌는 것이 동기가 되고, 너무 질서 정연하지 않게 좀 미친 놈들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와서, 뭐 이런 게 다 있어, 그렇게 뭔가 들쑤시는 사람들이 이상한 일이 아닌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다.
자우림의 <일탈>이 발표된 것이 공교롭게도 97년 11월이다. 딱 IMF 경제위기 터졌던 해다. 그 시절에 일탈을 노래 부르면서 미친 놈들의 시대가 펼쳐질 뻔했던 것 같은데, 경제 위기와 함께 그 흐름이 죽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라면, 그 시절일 것 같다.
나에게 남은 욕심이나 그런 게 뭐가 있겠나. 문화적으로 미친 놈들이 좀 더 많이 튀어나오고, 그들이 굶어죽지 않을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얘기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것도 힘에 벅차다. 되는 대로 하다가 때 되면 하늘이 부르는 순서대로 가는 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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