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도 그렇고, 직장 민주주의도 그렇고, 내가 주로 다루는 분야들은 스포츠로 치면 비인기 종목이다. 별로 다루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고, 큰 관심도 단 번에 끌기 어렵다. 그래도 하는 건 그게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고, 그런 이유 보다 비인기라는 이유가 더 큰 지도 모르겠다. 경쟁도 별로 없고, 이건 내가 하던 분야니까, 그렇게 횡포 부리면서 텃세를 부리려는 주인들이 별로 없다. 만약 이런 걸 다루는 사람들이 많고, 이미 충분히 잘 되고 있으면, 굳이 내가 분석을 하려고 나서지 않았을 것 같다. 

비주류로 살아가는 게, 사실 몸에 밴 인생이기도 하다. 왕따는 왕따인데, 왕따 당하는 쪽 보다는 왕따 놓는 것에 더 가까운 삶을 산 것 같다. 그냥.. 아무도 안 보고 싶어. 

그러다 보니까 몰려 다니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누군가에게 머리 숙이는 것을 더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내 일로 머리 숙여 본 적이 없다. 남의 일로는 “한 번만 도와주시라”,, 머리 많이 숙였다. 내 일로는 아직까지도 머리 숙인 적이 없는데, 이제 남은 인생, 머리 숙일 일이 있을까 싶다. 

지금까지도 비주류로 살았는데, 남은 삶이 더욱 비주류의 비주류가 된다고 해서 별로 불편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한국이 그렇다. 조금만 인기 있고, 뭔가 뜬다고 하면 우루르 몰려 가서 줄을 선다. 20세기 후반에 한국이 이러면 안 된다고들 했던 것 같은데, 새로운 밀레니엄이 오고 20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그런 것 같다. 

나는 한국이 좀 더 다양하고 다채롭고, 다원적인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20대부터 그랬다. 그리고 다들 하는 선택은 늘 싫어했다. 프랑스로 공부하러 간다고 하니까, 우와, 놀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던지. 왜 미국 안 가? 별 다르게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냥 돈이 없어서 미국은 못 간다고 했다. 사람들은 만족했다. 아, 쟤가 원래 가난하지.. 

학위 받고 뭔가 얘기를 좀 하려니까, 너는 왜 미국 박사 아냐? 그래서 그냥 C급 경제학자라고 했다. 그랬더니 좀 덜 괴롭혔다. 겸손해서 나를 낮춘 게 아니라, 괴롭히는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서 그냥 낮추고, 뒤로 숨어서 살았다. 

2016년부터 애들 보는 일을 시작했다. 아주 편해졌다. 이제는 견제도 별로 없고, 굳이 찾아내서 “겨뤄보자”, 이런 사람들도 많이 사라졌다. 

조국 선배가 처음 청와대 갈 때 문자가 몇 번 왔었고, 나도 답을 했다. 뭐, 문자나 하는 것 보다는 친한 사이이기는 한데, 나는 애 보는 일도 버거워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조국은 조국 인생 사는 거고, 나는 내 인생 사는 거고. 진중권에게는 선배라고 부른다. 진 선배가 학교 그만두고 글 쓴다고 할 때,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나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다. 그 때도 같은 얘기를 했다. 진중권은 진중권 인생 사는 거고, 나는 내 인생 사는 거고. 

다음 달부터는 코로나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한다. 코로나 1차 유행 때 12월달이 되어서 다시 전체적인 전망을 다시 해야 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대체적으로 백신이 등장한 이후 혹은 백신이 등장할 것 같은 순간부터의 흐름과 그 이후의 장기적 변화를 보고 싶었다. 진짜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누가 그런 것에 관심이 있겠나 싶지만, 초창기에 너무 뻔한 걸 가지고 얘기하기 보다는, 이미 많은 것이 결정된 시점에 실제로 분석해야 할 것을 분석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잠시 돌아서 내 삶을 생각해보니까, 참 비인기 종목에다가 비주류 인생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긴 모습대로 피어나면 그만인 인생인데, 조금만 옆길로 걸어가면 불안할 수 밖에 없는 문명을 만들어낸 게 우리 모습이다. 

눈치 안 보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눈치를 안 본 건 아니다. 눈치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 아예 눈치나 눈총이 없는 한적한 곳에 펼쳐진 개활지를 걸어간 것 아닌가 싶다. 좁은 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고, 넓은 길이지만 돈 안 되는 곳에는 아무도 없다. 비인기 종목이고, 비주류이기는 하지만, 숨어 살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뭐 하는지 사정 되는대로 거의 대부분 알리면서 산다. 그래도 별 관심 없는, 그런 한적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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