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이 넘어가면서 이제 내가 예전같지 않다는 느낌이 부쩍 든다. 이제 아주 살살 산다.

당인리 이후로, 책에 대해서도 축소하는 분위기다. 이제는 의무감으로 책을 쓰는 것도 줄이려고 한다. 쓰는 건 재밌게 할 수 있지만, 파는 건 하나도 재밌지 않다.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고개 숙이는 것도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니다. 안 팔려도 쓰는 과정을 내가 즐길 수 있는 책, 그런 몇 권만 남기려고 한다.

그런 책은.. 뭐, 별로 없다.

젠더 문제, 우울증 문제, 그런 것들이 해볼만한 작업 리스트로 올라가 있다.

농업 경제학 하면서, 정말 힘을 너무 많이 뺐다. '최소한의 농업'이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그 최소한도 안 하는 시기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귀추에 눈을 기울인다. 돌아버리겠네.. 깊이 있는 내용은 없는데.

남은 시간, 우리 시대의 문제에 조금 더 집중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생활 경제에 가까운 내용으로..

보수는 다음 정권도 어림 없을 것 같다. 민주당 정권이 조금 더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 정의당이 점프할 수 있는 발판이라도 만드는 것, 그 정도가 이 시즘의 내 입장 아닐까 싶다.

이재영 살아있을 때, 우리가 나이 먹고 할 일이 없으면 '한국 공산당'을 같이 만들자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하면서 인생의 가장 행복한 '공상'의 시기를 그와 나누었다. 공산당 얘기하면서 즐거울 수 있었던 유일한 친구가 이재영이다. 그는 50도 되기 전에 벌써 먼저 떠났다.

공산당 만들 것도 아니고, 딱히 뭐 해보고 싶은 일도 이제는 없다.

원혜영과 저녁 먹기로 되어 있다. 그도 이제는 은퇴다.

원혜영이 보좌관들과 우리 집 앞에서 소주 먹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냥 왔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데,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다. 결국 야당 시절, 민주당 도와주기로 하고.. 뭉탱이로 시간이 한 번 지나갔다.

돌아보니, 삶이란 짧다. 금방 지나간다.

박사 과정 때, 경제학, 인류학, 심리학, 세 개의 통합학위를 준비했었다. 지도교수가 동구 붕괴 이후, 짤렸다.. 나도 망했다. 학교앞 카페에서 생맥주 한 잔 마시면서, 그 얘기를 들었다.

아, 하늘이 노랗다..

아무도 안 읽는 박사 논문이지만, 논문 한 장이 철학 얘기고, 논문 한 장이 심리학 얘기였다. 그 시절의 흔적이 박사 논문에 좀 남아있다.

2년 후 출간으로 '한국 자본주의와 신경증'이라는 책을 준비해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신병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지는 않은데, 신경증에 대해서는 좀 할 얘기가 있다..

한국에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돌아버린 상태로 버틴다는 것과 같다. 한국 자본주의 속성이 그와 같다.

돌아버리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자식들에게는 그런 사회를 물려주고 싶다. 그것도 너무 큰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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