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 먹고 시세를 보니까, 월세는 4,000에 40이다. 아내는 필요하면 작업실 따로 내도 된다고 하는데, 그냥 40만원어치 노는 게 날 것 같다. 보는 김에 간만에 옛날에 살던 아파트.. 2배 올랐다. 그거 팔고 이사가려고 했던, 결국 찜만 찍었던 아파트. 3배 올랐다.

지방에 집을 하나 더 살까, 일본에 하나 더 살까, 그러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뭐, 그러면서 각 국별로 부동산 특징과 그런 걸 공부하게 되기도. 강릉에 있는 경포대 현대는 진짜 살 생각이 있어서 몇 번 가보기도 했다. 동계 올림픽 유치한다고 생지랄 떠는 거 보면서 정나미가 뚝 떨어져서.. 그 후로는 진짜로 강릉은 한 번도 안 갔다. 신혼여행을 강릉으로 갈 정도로 강릉을 좋아했었다. 최고 절친도 강릉 사람이고.

결국 돌고 돌아, 작업실은 따로 마련하지 않는 걸로 결론을 냈었다. 그리고는 지금은 야옹구 쓰는 방에 얹혀서 고양이 눈치 보면서 지내는.

그 시절에 약간만 아는 교수 한 명이 막 부동산 회사를 차리고, 자기도 디벨로퍼라고 생지랄을 떨었다. 끌끌.. 그렇게 돈이 좋더냐, 그렇게 막 무시했다.

암 말기라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햐, 사는 게 뭔가하는 생각이 문득.

내가 봤던 집들은 최소 2배고, 보통은 3배 정도 올랐다. 그래도 안 산 게, 집으로 돈 벌었다는 얘기가 정말로 듣기 싫었다. 그냥 내가 사는 집에서 조용하게 사는 게, 제일 편하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그런 것.

작업실 때문에 집을 하나 더 살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도 마흔 넘어가면서 다 귀찮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난 젊었을 때 월급을 너무 많이 받아서 서른 살에 집 샀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통장에 돈이 많아서..

아파트 살 때, 내가 다니던 사무실 두 군데에 지도에 컴퍼스와 자 가지고 딱 중간 지점에 선을 그었다. 광화문과 용인 사이. 그 중에서 형편 되는 데 그냥 샀다. 진짜 무식하게 산 건데, 그 집도 세 배 넘게 올랐다. 그야말로 개발의 시대. 아무 것도 없는 벌판이 좋아서 고른 건데, 명박이 거기에 뭐라뭐라 막 때려짓는다고 하고. 건너편에 이번에는 오세훈이 또 뭐라뭐라 짓는다고 하고.

공사판 벌어지는 게 싫어서 그냥 이사왔다.

내가 알던 섬유 수입하는 회사 사장이 대구 사람이었다. 텍스타일 공부겸, 수출입 업무도 좀 봐주고, 섬유 시장도 좀 분석해주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패션 공부를 하고, 선시장 후시장, 밀라노 시장, 프리미어 비젼, 그런 데 대해서 좀 익숙해지게 되었다. 이 양반이 아파트에 거의 광적인 수집벽 같은 게 있어서 돈만 생기면 아파트..

그게 싫었다. 그래서 헤어졌다.

패션쇼 관련된 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좀 조언만 해주고 말았다. 그 때 모델들의 세계를 좀 볼 수 있었다. 참 어려운 일이구나.. 그리고 또 인연이 되어, 슈퍼 모델들하고 일을 할 기회도. 그냥 옆에서 지켜보는 데에도 그 삶이 너무너무 힘든 삶이었다.

삼성물산 등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디자이너들이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라서, 히트 치는 지갑이나 가방이 구상되고 만들어지고, 그야말로 시장을 싹 아도치는 과정을 지켜볼 일도 있었다. 이것도 좀 지난 일이라서, 현빈 백 만드는 과정을 본 게 거의 마지막이었다.

20대에 우연한 계기로 텍스타일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까, 우연하게도 패션 디자인, 모델, 패션쇼, 이런 게 너무 먼 거리의 일이 아닌 삶을 살게 되었다.

몇 년째 입고 다니는 후드티도 봉제 관련된 노동조합에서 선물로 받은 것. We are not the machine.. 그렇게 쓰여 있다.

뭐든, 난 그렇게 뭔가 만드는 사람들하고 있을 때 편하고 재밌지, 아파트 사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사는 사람들하고 있을 때에는 재미 하나도 없다.

가끔 패션에 대한 책 제대로 한 번 써보자는 제안을 받기는 하는데, 이게 손 놓은지 너무 오래 되서..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아르데꼬 다니던 친구들 다시 만나보고 싶기는 하다. 그 때 참 재밌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파트나 부동산에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고 뛰어다니는 것, 인생을 낭비하는 길이다. 삶이라는 게, 그렇게 시간이 길지가 않다.

앙드레 김은 두 번 만났었다. 앙드레 김 얘기 한 번 해보자는 제안을 받은 것도 벌써 2년 전이다.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일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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