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을 마지막으로 본 건 2년 전 총선 직전 여의도의 어느 카페였다. 그가 먼저 차 한 잔 하자고 연락했다. 나는 늘 그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같이 고민해주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창원으로 내려가는 결정을 이미 내렸었다. 그 선거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안철수가 그의 지역구를 빈집털이 한 후, 어쩔 수 없이 지방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가 걱정스러웠는데, 그는 내 걱정만 했다. 좀 미안했다. 나는 누가 걱정해주지 않아도 먹고 살고, 그냥 버티는 거, 이런 거는 잘 한다. 그 때 그는 자기가 제대로 된 자리를 한 번 만들테니까, 나중에 꼭 한 번 같이 일하자고 했었다. 나는 그가 도와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도와드린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울 시장 선거에서 나는 노회찬의 후원회장을 했었다. 뒤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자리를 주선하거나 하는, 좀 드러나지 않게 움직여야 하는 일들을 주로 해주었다. 그 때 노회찬의 선거 조직을 관리하던 사람이 오재영이었다. 오재영은 작년에 과로로 죽었다.

 

나에게는 오래된 꿈이 있었다. 노회찬을 대통령으로, 이런 거창한 것은 아니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쓰고, 그 책을 버스 광고를 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노회찬 얼굴을 단 버스가 시내를 질주하는 것을 보는 게 내 꿈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었다. 역시 인민노련이었던 이재영의 눈으로, 그와 같이 독재와 싸웠던 노회찬의 젊은 시절이 삶을 그리는 것, 그런 책을 쓰고 싶었다.

 

50대 에세이를 쓰면서, 그 시절의 기억이 났다. 책을 쓰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노회찬, 이재영 등등, 그런 사람들이 지난 번 우리 집 마당에 모였다. 그 때 삼겹살을 노회찬이 도맡아서 구웠다. 나는 그 순간을 내 인생에 가장 화려한 순간으로 기억했다. 날이 좋았던, 오늘 같은 여름날이었다. 그 때 우리 부부의 친구였던 노르웨이 부부를 노회찬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후에 노르웨이 방문을 하면서, 그 노르웨이 부부의 부모, 친척 등 그야말로 노르웨이 사회당 계열의 교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들의 친구는, 이렇게 겹치고 저렇게 겹치고, 그렇게 몇 년을 지냈다.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도 가장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기억이 났다.

 

그 때 느낌이 좀 싸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회상해보자.. 머리에 노회찬과 이재영 등 친구들과 삼겹살 굽던 순간의 기억이. 올 1월쯤의 일인 것 같다. 왠지, 그 순간이 생각이 났다.

 

이재영이 먼저 죽었다. 암이었다. 이재영이 죽고, 너무 오래, 너무 길게 울었다. 아마도 그 때 나는 눈물이 말라버린 것 같다. 이재영이 죽었을 때, 조금 더 바지런을 떨어서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 작업을 진행하지 못한 것을 너무너무 후회했다. 이제 그 얘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 이재영이 떠난 뒤, 나는 몇 년을 울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오재영은 작년에 죽었다. 민주노동당 시절의 두 재영이가 그렇게 모두 먼저 떠나갔다.

 

그리고 오늘, 노회찬이 죽었다. 우린 모두 언젠가 죽는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의 죽음을 생각해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다. 최소한 노회찬과 20년은 더 가끔 만나고, 가끔 시덥잖은 얘기하고, 허랑방탕하게 세상을 좀 살아보자는 농담하고그럴 줄 알았다.

 

노회찬을 위해서 공들여 쓴 글이 하나 있다. 꾸리에에서 노회찬에 관한 책을 내자고 해서, 무조건 나도 돕는다고 했다. 젊은 시절의 노회찬에 대한 평전을 꼭 쓰고 싶었는데, 이제는 노회찬에 대한 짧은 글 하나 밖에 남은 게 없다.

 

내가 30대에 만났던, 한국 진보정치를 대표하는 몇 사람들은, 정말로 너무너무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사람을 적게 만나지는 않았다. 극우부터 극좌까지, 정치라면 당연히 아나키즘이어야 한다는 극단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만났다. 2004년 이전, 민주노동당이 아직 원외 정당이던 시절, 그 앞에 서 있는 몇몇 사람들은 너무너무 찬란하고, 소박하지만 후광이 서린,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과 몇 년을 같이 보냈다.

 

노회찬그가 떠났다. 생각해본 적도 없는 시기에, 떠올려 보지도 못한 방법으로 떠났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시대는 갔는가? 내가 봤던 그 아름다운 사람들은 이제 한 명도 이 땅에 남아있지 않다. 대충 살고, 적당히 하고, 술만 열심히 마시던 나만 혼자 살아남았다. 나는 그들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그들처럼 열심히 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을 기억하면서, 가끔 혼자 슬퍼하는 그런 바보 같은 일만 하게 될 것 같다.

 

너무너무 아름답고, 너무너무 찬란했던 기억만을 남겨놓고 노회찬, 그가 갔다.

 

남은 사람들은 이제 어쩔거냐지나치게 아름다운 사람들, 가끔은 무심하고, 때때로 무책임하다.

 

노회찬, 그가 도착할 천국에는 잔디밭과 삼겹살 불판 그리고 그와 같이했던 동지들이 있을 것 같다. 아름답게 들풀이 피고, 친구들의 수다소리 가득한 그곳, 그곳에서 영원히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에 나오는 대사다.

 

좋은 놈들은 이미 다 죽었어…”

 

진짜 그렇게 되었다. 그들이 지금쯤 노회찬의 천국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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