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들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당연한 얘기다. 우리나라 같이 이것저것 사정 봐주지 않는 사회에서는 좀 더 그런 것 같다. 5일제가 도입될 때에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진짜 좋았다. 52시간 도입이 현 정부에서 가장 장기적으로 효과를 발생시킬 정책일지도 모른다. 길게 보면 이것도 충분치는 않지만, 그래도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것 같다. 아쉽지만, 단기적으로는 나와 상관없다.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변화를 체감하면서 같이 느끼기가 이제는 쉽지 않다. 보너스, 휴가, 이런 거 없다. 연휴가 길어지면 진짜로 죽을 맛이다. 그래도 이제 그 정도 가지고 불평하거나 불만스럽다고 할 때는 지났다. 핸디캡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되는 것 같다.

 

전에는 사람하고 약속을 하고 내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이제는 애들 보러 가야 한다고 내가 먼저 말하고 일어선다. , 그 정도야, 이제 아무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로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써서 먹고 싶어한다. 나는 이제 많은 일들을 줄이거나 없애고, 글 쓰는 일만 한다. 글은 여러 종류를 쓴다. 그게 육아 핸디캡에 적응하면서 나에게 생겨난 변화다. 옳은 일, 좋은 일도 글과 관계된 것 아니면 하기가 힘들다. 한국에는 열정적으로 무엇인가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정말로 많고, 유명해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도 많다. 굳이 내가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그 자리를 메우고 할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감사하면서 산다.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것, 진짜 감사한 일이다. 그냥 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아주 잘 사는 편이다. 나나 아내나, 괜히 돈 쓰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스타일들이라서, 진짜로 구질 맞게 입고. 대충 다닌다. 그래도 맛 있는 거 먹고, 책 사고 싶은 만큼 원없이 사고, 필요한 돈은 아낌없이 지출하면서 산다.

 

글만 쓰기로 하면서, 나는 소득이 늘었다. 먹고 사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늘었다. 그래서 늘 감사하면서 산다. 핸디캡의 유용성일지도 모른다. 평소 같으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신경은 분산되고, 별로 대단한 일 하는 것도 없는데 마음만 부산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앞 장면에 시계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토끼 얘기 나온다. 루이스 캐롤은 좀 극단적일 정도로 보수적인 사람이다. 물론 유능한 보수에 관한 얘기다. 그가 본 자본주의 사회는 시계를 들고, 멀쑥한 슈트를 차려 입고, 기껏해야 귀족의 심부름이나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잘난 척 하는 사회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바쁘지 않다. 유명해졌다가 유명해지지 않은 사람, 바빴다가 바쁘지 않게 된 사람, 누군가 열심히 찾는 키퍼슨이었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상황이 될 때 당혹스러움을 느낀 사람들을 좀 본 적이 있다. 그걸 제일 잘 극복한 사람은 아무래도 오드리 햅번일 것 같다. 아프리카 아동에 대한 구호 활동으로, 돈도 벌고 유명해진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노년의 극한값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오드리 햅번 같이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아이를 열심히 돌보면, 마음 속에 있던 무거움은 사라진다. 그리고 등에 업히는 아이의 몸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둘째는 몸무게가 많이 늘면서 드디어 폐렴 등 호흡기 질환을 이겨냈다. 아이의 몸무게마저도 고맙게 느껴질 때, 내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깨끗이 사라진다.

 

아이들은 틈틈이 아프다. 그래서 언제나 빅 챌린지 앞에 서게 된다.

 

2.

다 아는 얘기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못하는 것이 자기 호흡을 갖는 일이다. 자기 호흡을 갖고, 자기 게임을 하면 이기는 경기든 지는 경이든, 의미가 있다. 시장에 대해서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얘기가 시장의 비대칭성에 관한 얘기다. 시장이면 다 같은 게 아니다. 같은 물건을 파는 시장이라도 buyer’s marketseller’s market, 파는 사람이 주도할 것이냐, 사는 사람이 주도할 것이냐, 여기에 따라서 시장 양상은 물론이고 가격도 다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완전경쟁과 독점으로 나뉘게 된다. 그 중간 형태에서 파는 사람 주도, 사는 사람 주도, 그 두 개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에 따라서 시장 양상이 당연히 달라진다. 야구에서는 그걸 흐름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고, 글에서는 그걸 호흡이라고 부른다. 좋은 호흡과 나쁜 호흡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자기 호흡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것 같다. 시에서는 음보라는 표현을 쓰는데, 좀 더 넓게 범위를 확장한 음보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주안을 두는 것은 음보였다. 물론 실제 출간 과정에서 에디터들이 이리저리 손대고 나면 신경 써서 만들어 놓은 음보가 사라진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음보를 내가 쓰는 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운율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그 수준은 아니다. 그냥 넓게, 음보를 디자인하는 정도가 내 실력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다. 그렇지만 글의 호흡은, 이런 음보와는 조금은 다른 개념이다. 시각의 호흡 혹은 시선의 호흡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진이 조금 더 쉬운 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눈보다 넓게 보면 광각이라고 하고, 눈보다 좁게 보면 망원이라고 부른다. 눈 기준으로 60도 정도의 화각을 표준 화각이라고 부른다. 딱 눈에서 보는 것, 이렇게 얘기하지만 눈 가장자리로 보이는 것들은 자르고 얘기한다. 망원은 일반적인 화각보다 공간이 압축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굉장히 간단한 것인데, 광각을 중심으로 찍을지, 망원을 중심으로 찍을지, 이 선택도 쉽지 않다. 그 정도는 미리 알 수 있지 않아? 그것도 미리 알기가 어렵다.

 

나는 무조건 망원을 먼저 집는다. 내가 쓰는 망원은 여러 가지로 불리한 렌즈다. 싼 건 아니지만 더 비싼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가격을 줄이기 위해서 이런 게 아니라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해가 좋지 않으면 찍기가 어렵다. 해가 좋은 날, 무조건 망원이게 내 순서다. 해가 없으면, 표준줌, 이렇게 내려가다가 아주 특별하게 광각이 필요하다고 생각나는 날만 광각. 이렇게 자기 원칙과 순서가 형성되지 않으면 모든 렌즈를 다 들고 다니게 된다. 불가능하다. 어깨 나간다. 글은 더 그렇다. 모든 것을 다 쓸 수는 없다. 많은 것을 알아도 그걸 다 보여줄 수도, 다 쓸 수도 없다. 그러면 어떤 걸 쓰고, 어떤 것을 주로 보여줄 것인가? 그래서 단순한 압축만이 문제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포커스 활용을 할 것인가, 심도라는 개념을 접하게 된다.

 

심도가 너무 낮으면, 글이 얄팍해져서 읽기가 괴롭다. 쓴 사람이 눈에 보이고, 그 과정이 아름답지 않아 보이면 글을 읽기가 어렵다. 심도가 너무 깊으면, 글을 읽기가 무섭다. 너무 많은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작가의 영혼이 무겁게 담겨있는 것처럼, 그 무게감을 이겨내기가 어렵다. 책을 들기가 무섭다. 아이러니한 것은, 극단적으로 얄팍하게 한 책들 중에 썩 잘 팔리는 것이 많다는 점이기도 하고, 극단적으로 무겁게 한 책들이 상을 많이 판다는 것이다. 파는 게 목적이면 얄팍하게, 상 타는 게 목적이면 무겁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물론 진짜로 이 원칙대로 움직이면, ‘빠가난다. 모든 얄팍한 책이 잘 팔리는 것이 아니라, 계측하기 어려운 특정 조건 내에 들어간 책만 그렇다. 그 조건은 계측도 어렵지만, 반복도 어렵다. 얄팍하게 쓰고 팔리지도 않으면, 영혼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무섭게 쓰고 상도 못 받으면? 그게 대부분의 작가 지망생 혹은 초창기의 작가일 것 같다. 삶은 팍팍해도, 크게 상처 받지는 않는다. 결국은 많은 경우, 그 중간 어딘가를 타점으로 잡게 마련이다. 많은 타자들이 그렇게 한다. 직구 타이밍에 속도를 맞춰 치다가 슬라이더 같으면 한 손을 놓으면서 배트 스피트를 확 떨어뜨린다. 그러면 슬라이더도 어느 정도는 대처할 수 있다. 그러다 뚝 떨어지는 커브나 너클볼 들어오면? 방법 없다. 다음 볼! 투수 던져!

 

3.

아이를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호흡을 전부 다시 조정을 했다. 이건 선택이 여지가 없는, 상황에 맞춘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거의 10년 정도 쓰던 신문 등 매체의 정기적인 기고를 먼저 없앴다. 그리고 고정적으로 나가게 되는 방송도 없앴다. 내 시선을 붙잡아 놓는, 모든 주기적이고 정기적인 것들을 없앴다. 좋든 싫든, 때가 되면 뭔가 내용을 채우려고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이런 걸 다 없앴다. 강연도 많이 없앴다. 도서관 강연을 없애기가 좀 그래서, 중간에 봉합적인 타협을 했다. 한 달에 한 개그것도 사실 많다.

 

내가 없앤 것들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가지고 싶어하는 소득원이다. 일반적으로 애들을 보기 위해서 몸이 묶이고, 고정적인 소득원이 사라지면 부수입과 관련된 행동을 늘리려고 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호흡이라는 게 없으면, 무조건 이렇게 하는 게 그래도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이다.

 

50대 에세이에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문자들이 몇 개 있다. “그래도 나를 믿는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제일 믿기지 않는 게 사실 자기 아닌가? 나도 내가 믿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호흡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믿는 수밖에 없다. 나도 잘 믿지기 않는 나를 믿고, 시간상의 모든 고정적인 것들을 없앴다.

 

5년 이상의 긴 시간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시간 스팬의 한 쪽 극한값을 이번 정권으로 잡았다. 내 호흛은 지금부터 이번 정권 끝, 그러니까 다음 정권이 결정되기 전까지로 잡혔다. 너무 긴 시간에 관한 것은 지금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단위 혹은 주간이나 월단위, 그런 일은 안 한다. 호흡이 헝클어져서 그렇다.

 

책은 3년 보통은 3년 주기인 것 같다. 물론 그보다 짧거나 더 길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 정도 주기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3년에 한 권만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진짜로 도인이 된다. 3년 주기를 기본으로 설계하고, 1년에 4권을 기준으로 일정을 짠다. 물론 4권 내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그렇게 해 놓아야 이건 진짜 어렵다”, 요런 것들을 뺄 수 있다. 영화도 보통은 3년 주기라고 볼 수 있다. 더 짧은 것들도 가끔은 있는데, 평균적으로는 그 정도 된다.

 

3년을 한 턴으로, 텍스트에 관련된 것만,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을 재조정했다. 그 조정을 하던 기간이 <오늘 한푼 벌면, 내일 두푼 나가고>, 요 에세이집이었다. 나도 그냥 앉아서 책상에서 도면 그리듯이 생각한 게 아니라, 내가 살았던 삶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현실에 관한 글을 쓰면서 호흡을 조정했다. 그 때 애 키우는 것은 뭐고, 삶은 무엇인지, 진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진짜로 내 호흡을 변화시켰다.

 

보통의 경우는, 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신문에 글을 쓰고, 방송에 나가게 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나도 그렇게 하라고 많이 얘기했었다. 일반적인 경우는, 그 정도는 해도 글을 쓰는데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도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애 보면서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내가 뭘 크게 알아서 호흡을 조정한 것이 아니라, 방법이 없어서 호흡을 조정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많은 것을 바꾸고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주기적인 것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 너무 뒤늦게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책을 내 식으로 정의하면, ‘3년짜리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글에는 정말 여러 종류가 있지만, 3년에 걸쳐서 긴 글을 하나 쓰는 게 책이다. 물론 더 길 수도, 더 짧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매일 쓰는 글과는 다르고, 1주일에 한 번 쓰는 것과도 다르다. 고전적으로는 매주 신문에 연재하는 소설이 20세기 중후반에는 아주 중요한 매체이기도 했다. 특수한 경우다. 그렇게 연재된 글 중에는 대만일보에 연재되었다고 하는 <군협지>가 내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을 간결하게 정리하면, 3년짜리 호흡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신문을 보고, TV를 보고, 여행을 가고,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동일하게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호흡이 다르면, 같은 것도 다르게 느껴진다. 당연히 용도도 달라지게 된다. 모든 텍스트는 그 텍스트만이 호흡이 있는데, 책에도 책만의 호흡이 있다.

 

이 호흡이 안 맞으면, 책 쓰는 일은 맞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정말 기똥차게 잘난 사람들은 그딴 거 다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그 말도 맞다. 그렇지만 난 이런 게 다 필요한,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아니, 평범한 애 아빠다. 책은, 기교를 파는 게 아니고, 기술을 파는 게 아니라, 내용을 파는 일이다. 그리고 그 내용이 만들어지는데, 평균적으로 3년 정도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3년짜리 상품을 만드는 일과 같다. 물론 출시를 3년마다 하지는 않는다.

 

내용을 만드는 데에는 절대 시간 같은 것도 필요할 뿐더러, 그 흐름이 맞아야 한다. 그게 맞든 틀리든, 3년에서 5년 주기로 세상을 보는 게 작가의 일이다. 지금 시작하면 3년 후에 제품이 만들어진다. 3년 후에 유효할 질문, 그 호흡이 책에서는 제1의 덕목일지도 모른다. 매일, 1 주일, 한 달, 그런 주기와 속도로 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 우선은 호흡의 일이다. 3년 후를 생각하는 것이 머리에 탑재되는 것, 그게 책 호흡의 기본이다. 피디들의 눈과 기자들의 눈과 같으면, 절대로 작가가 될 수 없다. 어차피 내용을 만드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냐? 그렇지 않다. 피디나 기자는 시간이 가면 월급이 나오지만, 저자나 작가에게는 그런 게 없다. 전혀 다른 호흡을 가지고, 피디나 기자와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잘 난 넘은 그딴 거 필요없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급의 잘난 넘이 아니라는 것은, 내 인생 50년에 걸쳐서 증명했다. 지금 새삼 위험한 가설을 끌어들여, 나는 다르다고 생각할 것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나를 믿는다, 그 정도 밖에 없다.

 

호흡이 책에서 가지는 역할, 나도 그런 건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던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일을 길게 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뉴얼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나는 책 낸지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매뉴얼이라는 것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좀 느리고, 둔하기는 하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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