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정년 연장과 50대의 힘

 

경제 정책 중에는 세대와 상관없는 제도가 있고, 특정 세대에 집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제도가 있다. TV 방송도 마찬가지이고, 음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는 최근의 작업 가설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세대가 50대라는 것이다. 흔히 베이비부머라고 불리는 세대가 바로 그들이다. 50대에게도 경제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의 부가 가장 집중되어 있는 곳도 이 50대들이다. 세대내 빈부격차의 문제에서 50대도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상대적으로 부는 50대에 집중되어 있다. 동시에 시스템상으로 50대가 가장 많은 사회적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공무원 등 공조직이나 민간기업, 심지어 언론까지, 주요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간부들이 대개 50대들이다. 그래서 50대에 해당하는 일들은 20~30대의 문제에 비해서 사회적 의제로 되는 기간도 빠르고, 목소리도 높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20대는 10악악거리야 한 번 언론에 나올까 말까 하지만, 50대에 해당하는 문제는 한 번만 누가 뭐라고 해도 언론에 10번 나온다. 지난 수 년 동안 20대 문제와 50대 문제를 같이 지켜보면서 내가 느낀 점이 이거다. 여기에 지난 대선에서 50대가 보여준 놀라운 투표율, 한국에서 50대를 외면할 수 있는 정치 집단은 없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정년연장이라는 결정이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제도 중에서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여야 합의를 이룬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큰 이견 없이 신속하게 국회에서 합의를 이루어나간다. 정년 연장은 일단은 지금 50대들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임금 피크제 등으로 임금을 조정한다고 해도, 정년이 5년 연장되는 것은 어쨌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다. 2016년까지는 300인 이상 사업장, 그 이후로는 30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 정년 연장이 의무적으로 실시된다.

 

IMF 직후, 정년 감축 논의가 나온 순간의 사회적 논의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정년 직후 교사 한 명이 퇴임하면 젊은 교사 3명을 쓸 수 있다는 표현이 상징하듯, 고령층 고용을 줄여서 신규 노동자들의 진입에 도움을 주자는 얘기로 정년 감축이 추진되었다. 간단히 얘기하면, 50대의 일자리를 줄여서 20대의 일자리를 늘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런 취지였다.

 

물론 효과는 그렇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고령층의 일자리가 줄면서 정년만 준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우리가 들여온 종신고용체계도 같이 무너졌다. 조기 은퇴를 시키면서 생겨난 일자리가 과연 노동자들에게 왔는지도 의문시거니와, 그 일자리들은 대개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구조조정이라는 단어와 함께 아웃소싱이 일반화되었다. 소위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그런 경제적 흐름과 결합되면서, 조기 은퇴가 지나간 자리를 저임금으로 상징되는 불완전 고용이 채워나갔다.

 

이제 다시 50대의 힘을 등에 업어 정년이 연장된다. 기계적으로 보면, ‘질 좋은 일자리50대들이 더 차지하게 되고,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니까, 고용시장에서 청년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좀 악랄하게 해석을 하자면, 이 제도는 지금의 베이비 부머가 지나가면 다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정년 연장은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함께 온 것이 아닌 임시조치라서, 정치적으로 힘 좋은 50대의 문제가 1차적으로 처리되면 다시 없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한국에서 장기불황이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다시 희생양을 찾게 되고, 정년은 다시 감축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제도를 지지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끌어내리는 것 보다는 더 많은 정규직, 더 장기 노동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년연장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된다. 지금 정부가 한 이 정년연장의 노력만만 비정규직들에게도 기울여진다면, 사회는 훨씬 나아질 수 있다.

 

정년 연장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4월 달은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를 하는 달이고, 마침 51일 메이데이를 맞아 알바연대와 같은 곳에서 최저임금 만원을 구호로 한참 외치는 중이다. DJ, 노무현 때에는 대략 10% 정도로 최저임금이 올랐고, 이명박 때에는 5% 정도 올랐다. 그렇다면 과연 박근혜 때에는 몇 퍼센트가 오르게 될까? 재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년 연장을 관철시키는 것을 보면서, 저 힘의 약간만이라도 최저임금 문제에 사용한다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50대의 힘을 보면서, 알바들의 힘이 더없이 미약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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