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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혼자 있다가 심심하면 방문 앞에서 울다가, 얼마 전부터 방문을 북북 긁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나가서 놀아줘야 한다.

진짜 아무 생각없이 책이나 읽을까 하고 책꽂이를 살피다가 어떻게 거기 꽂혀 있는지 영문을 모르는 만화책 한 권을 발견했다.

<한 남자의 그림자>. 스퀸텐 & 페테르스의 '어둠의 도시들'이라는 연작 만화의 한 권인데, 너무 재밌어서 잡은 김에 한숨에 읽어내려갔다.

악몽 그리고 이어지는 그림자의 변화, 그리고 다시 그림자가 되돌아왔을 때의 당혹스러움.

이어지는 일상으로의 복귀.

보험회사 직원을 모티브로 하는 얘기들은, 그 스스로가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카프카의 얘기들에게 <마스터 키튼>의 얘기들까지.

만화책 형식인데, 책을 덮고나서 왜 사람들은 보험회사 직원을 모티브로 할까, 잠시 생각해봤다.

일단 큰 돈이 걸려있고, 약간의 글자나 사인 한 장으로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되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산, 믿음, 선입관, 편견,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개입하는 아주 인간적인 상황들이 종종 연출되고.

보험가입자와 보험직원과의 관계, 그리고 돌아서면 보험직원과 회사와의 관계, 역시 그도 한 사람의 인간이므로 그가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모습들, 최소한 이 세 가지의 레이어가 중층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을 모티브로 할 수 있다. 

만화는 짧지만, 직장 생활을 하는 누구에게나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아울러 시대 아니 최소한 건물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뒤틀면서 그야말로 '존재적 상황' 속에서 답변을 하도록 요구한다. 

어느 가을의 특징 없는 가을, 간만에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질문 앞에 서 보았다.

만화책을 읽어내리는 내내, 고양은 마루의 전기장판 위에서 흡족한 듯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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