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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올해의 마지막 분수

2017.08.27 17:20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아이들 키우면 주말 나기가 아주 어렵다. 어린이집은 놀고, 그렇다고 매 번 어딘가 갈 수도 없고.


 


주말 지나고 나면 서로 지나면서 가족애가 돈독해지는가? 아내와 주말마다 싸우거나 냉전인 빈도수가 점점 더 늘어난다. 올해부터 아내가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일이 익숙해지면서 수입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달부터, 아내가 버는 돈이 우리 집 생활비랑 비슷해졌다. 내년에는 아마 우리 집 생활비하고 조금 남을 것 같다. 물론 그 사이에 생활비를 겁나게 많이 줄였다. 그리고 나는 진짜로 미니멀리즘의 삶을 구현하고 있다. 화려함은 점점 더 몸에서 사라지고 있다. 원래도 화려할 거야 없었는데, 이제는 추접스러운 것으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아내가 벌어오는 돈이 많아지는 것은, 그만큼 아내가 더 정신 없이 바쁘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다음 주에 나도 이것저것 마감이고, 아내도 중요한 발표가 있다. 그런 주말을 지내기는 더더욱 힘들다.


 


방법이 없어서 오늘 오후에는 내가 애들을 대리고 공원에 갔다. 원래는 차 타고 나가는 길에 아이들이 차에서 낮잠을 자지 않을까, 그런 얄팍한 생각이었다.


 


공원에는 마침 분수가 올라오고 있었다. 둘째가 너무 재밌게 놀았다. 마침 오전에 로보카 폴리 일행이 계곡에서 캠핑하는 그림을 가지고 한참 놀았었다. 재밌게 노는 건 좋은데, 둘째가 결국 분수에 옴팡 물을 뒤집어썼다. 조금은 더 있고 싶었는데, 갈아입을 옷을 가져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후퇴.


 


계절이 넘어가는 순간이면 늘 생각이 많아진다. 그렇게 매 번 몇 개의 계절을 보내고, 또 다른 계절을 맞는다. 그 순간들이 모두 기억이 날까? 그 때는 생각이 많았었는데, 지나보면 사실 또 그렇게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그 때만 그렇게 감정이 깊었던 걸까?


 


올해 마지막 분수를 보면서, 뭔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산다는 게 뭔가 하는 생각도 잠시. 세상을 보고, 시대를 보다가, 정작 내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별 생각을 못했다는 생각이 문득.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어지고, 뭐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집착과도 같은 생각도 사라졌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나이테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삶은 씹다가 버린 껌처럼 되었다. 그러면 의미가 없는 거냐? 무엇인가 공격하고, 누군가 욕하면서 삶의 의욕을 느끼는 것보다는, 이 심심하면서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더 진짜 삶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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