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를 위한 새 인문학 사전>이라는 책을 집어든 것은, 순전히 도대체 원어가 무엇이었는데, 우리나라 번역어가 이렇게 생기게 되었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원 제목은, Idea that matters: Key concepts for the 21st century이다.

중요한 개념들, 21세기를 위한, 뭐 그 정도의 뜻인데, 저자인 그레일링이 철학자라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나?

하여간 어차피 잡은 건데, 잡은 김에 쭉 읽었다.

전문가한테는 별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세상에는 전문가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사전 유형의 개념 정리책들이 원래 그렇듯이, 이 책은 사전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전처럼 필요한 항목만 빼서 읽으면 아주 재미없을 것 같다.

저자의 권위를 믿고, 이런 개념들이 요즘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군, 그렇게 맨 앞에 선 철학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주제를 분류하고, 골라내는 것을 본다고 하면, 그럼 맨 앞에 선 사람들이 요즘 생각하는 것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은 평이하지만, 그가 골라낸 개념 그리고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개념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확실히 2010년, 세상은 막 밀레니엄이 시작한다고 하던 그 10년 전과는 좀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공부의 세계에서도 가끔 트렌드를 살피는 것도 중요할 것 같기는 하다.

그야말로 따끈한 이번 시즌 머스트 해브 아이템 (핫 아이템은 아니다...)

고전을 보고는 싶은데 골 아프기에는 좀 사는 게 빈한한 상황, 생각은 좀 하고 싶은데, 골 패기에는 체력이 좀 딸리는 사람, 약간 "최근에 영국에서는 말이야"하고 잘난 척을 한 번 때리고 싶은데 소재가 빈안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트렌드는 트렌드일 뿐이야라고 정색을 하고 '인본주의'를 생각하시는 분에게는, 경기들만큼 천박한 책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으니, 최신 유행에 심약하신 분은 피하시기 바란다.

책을 딱 덮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이 책의 진짜 기능은 지식의 기초 체력 테스트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반나절에 읽었다면, 대학생 상식 수준.

하루가 걸렸다면, 10대 문학도 수준.

1주일이 걸렸다면, 이제 그림 없는 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려고 하는 중학생 수준.,

꼼꼼히 읽으면서 한 달 가량 걸렸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흡수할 정도로 순발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초등 5학년 수준,

그런 기초체력 테스트용 책으로는 딱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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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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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aringeyed 2010.05.27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꼼꼼히 읽으면서...5학년수준....딸하고 3년밖에 차이가 안 나네 ^^;
    그래도 꼼꼼히...^^
    건강하세요

  2. Favicon of http://myzip.tumblr.com BlogIcon 한갑에만원 2010.05.27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이분 팬인데...(쉬워서?) 제 수준은 딱 이거다. 싶을정도;;;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chobi300 BlogIcon chobi300 2010.05.28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쌤!!
    요즘 패션 채널 많이 보시죠?
    어투가 너무 패션채널 성우 스타일이예요.
    근데 "레이스가 럭셔리 하고, 사랑스러워서 세려된" 이란 어법에도 안맞는것 같은 말만 듣다가
    쫄깃한 얘기를 패션채널 어감으로 들으니 재밌네요.
    흐흐
    좀 두렵지만 기초체력 테스트도 하고, 생각은 하고 싶은데 체력도 바닦이니 꼭 읽어봐야 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