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다 읽었다. 

책을 재밌게 읽은 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가 읽는 책들은 더럽게 재미 없는 책들이다.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가 그나마 좀 재밌게 읽은 책인데, 뒷부분에 짧게 쓴 자신의 자서전 비슷한 내용이 있어서.. 아, 크루그먼이 이렇게 살았구나, 그래서 좀 재미가 있었던. 

내가 보는 책들은 전화번호부만한 게 많고, 재미 대가리 없다. 어렵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서 읽는다. 

박찬일의 책은, 그냥 읽은 거다. 그냥 읽으면 재밌을 수도 있는데, 나도 읽어야 할 책들이 워낙 밀려 있어서 그냥 읽기가 쉽지 않다. 

사실 나는 책을 즐겨서 읽는 스타일은 아니다. 솔직히 책 안 보고 싶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꾹 참고 읽는 편이다. 정말 더럽게 책 안 읽고 싶다. 다시 태어나면 책 안 봐도 되는 직업을 가졌으면 한다. 

박찬일의 책은 나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의 책이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맛있는 거 따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맛있다고 하는 집, 안 간다. 욕심이 생겨나는 게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절대로 줄 서는 집도 안 가고, 소문난 맛집은 일부러 피해서 간다. 

내가 뭔가 맛있게 하려는 건, 일단은 그렇게 안 하면 우리 집 어린이들이 쳐다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맛에 대한 책인데, 사실 가본 데가 별로 없다. 줄 서는 냉면집 절대 안 가고, 냉면 먹고 싶으면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운 데 간다. 청진옥은 누가 가자고 하면 가기는 가는데, 사실 내 입맛에는 좀 별로다. 좀 더 매워야..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미슐랭 별 달린 집은 거의 안 간다. 너무 비싸다. 예약하기도 쉽지 않다. 가끔씩 그런 데서 약속이 생겨서 가기는 하는데, 너무 비싼 거 얻어먹은 거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다보니까 미슐랭 나온 집이라고 tv에서 얘기하면, 일단 채널부터 돌리고 본다. 

비슷한 이유로, 포도주도 일부러 비싼 거 안 마신다. 제일 좋아하던 건 생떼밀리옹인데, 이건 내가 먹기에는 너무 비싸고. 예전에 선물할 때 주로 썼다. 선물만 하고, 정작 나는 20년째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코뜨뒤론느, 이게 내 입맛에는 그런대로 맛있는데, 이것도 한국에서는 생각보다 비싸다. 그리고 거의 없다. 그렇지만 너무 맛없는 포도주는 피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먹을 수 있는 포도주가 몇 종류 없다. 

어지간한 사람들이 평생 마실 포도주보다 더 많은 양을 20대에 이미 다 마셔버렸다. 그냥 적당한 가격에 왠만한 맛이면 그냥 마신다. 자고 일어나면 다 똑같다.. 비싸든 안 비싸든, 머리 아픈 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찬일의 책을 한 방에 다 읽은 건, 재밌어서 그렇다. 원래는 앞에 조금만 읽고, 하던 일 마저 할려고 그랬는데, 한 방에 다 읽어버렸다. 몇 권 더 사서 읽으려다가, 워워.. 나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게 책을 많이 읽으면, 책 쓴 사람의 성격이나 그런 게 어지간해서는 조금은 보인다. 거기에 나온 정보가 필요해서 읽는 거지, 인격적으로는 영 아니다 싶은 사람들이 많다. 유명 저자가 되면, 움베르트 에코 정도 되는 사람 아니면 재수가 없어지나보다. 재수 없는데, 그냥 참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그 사람의 정보나 지식이 나에게는 꼭 필요하니까. 

책을 읽으면서 저자를 존경하게 되는 건 매우 드문 경험이다. 그 사람의 지식은 필요해도,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그런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그 쓴 사람을 직접 알면.. 아이고, 존경하기 쉽지 않다. 

음식 책도 사실 꽤 많이 읽었다. 읽다가 집어던진 적이 있다. 뭐, 이런 양아치가 다 있나.. (딱 그 사람이 스캔들이 생겼을 때, 안타깝다는 생각은 했다.) 

박찬일의 노포 얘기를 보면서, 꼭 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돼지국밥 별로 안 좋아한다. 원래도 안 좋아했는데, 몇 달 동안 맛없는 돼지국밥을 매주 먹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아주 학을 떼었다. 내 인생에 돼지국밥은 다시는 없는 걸로.. 

돼지국밥 얘기가 맨 앞에 나왔다. 글이 재미가 없었으면,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추어탕도 좀 그랬다. 추어탕을 안 먹는 건 아니지만, 박찬일이 맛있다고 하는 스타일의 추어탕에는 구미가 전혀 안 갔다. 

입맛이야 뭐 사람마다 다 다른 거니까. 

대구탕이라고 해서 예전에 한참 웃었던 대구의 육계장은 좀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실 대구에서 그 대구탕을 맛있게 먹은 적은 없고, 울산의 현대자동차 인근에서 쇠고기 국밥인가, 그런 이름의 국밥을 아주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 굵은 고기가 뭉텅이로 나오는, 책에 나오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냉면집에 잘 안 가는 건, 그렇게 유명한 냉면집에 가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별로 없는 데다다.. 누군가 같이 가면, 어휴 지겨워, 뭔 설명이 그렇게 긴지. 맛 별로라니까.. 그래도 여름에 냉면집에 가는 건, 콩국수집이 잘 없어서 그렇다. 그리고 콩국수는 짜장면 맛있는 집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면이 유명 콩국수집하고 급이 다르다. 콩국은 콩국수 전문점이 잘 낼지 모르지만, 면은 역시 짜장면집이.. 내 입맛은 그렇다. 우동도 냉우동을 최고로 친다. 얼음에 담그면 우동 면발이 좀 약해도, 엄청 맛있어진다. 라면도 마찬가지다. 냉라면, 신주꾸에서 먹었던 그 맛이 아직도 입에 선한.. 

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장충동 족발집 얘기가 나온다. 거긴 맛있지. 시간강사 시절, 동국대에서 여러 학기 수업을 했었다. 틈틈이 먹었다. 

나랑 입맛이랑 취향이랑 별로 안 맞아도 책을 빨려들듯이 재밌게 읽은 건, 그가 하는 얘기가 맞기 때문이다. 문화의 일종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도 일종의 민중사라는 것. 

더 중요한 건, 참 욕심 없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고, 그런 게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서.. 이런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글은 꾸밈없고 단백한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유 없이 멋부리는 글을 아주 싫어한다. 그런 면에서 박찬일은 거의 교과서다. 멋부리는 문체는 한 때 '보그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그에서 많이 썼고, 패션지에 아주 많다. 그래도 그건 아름다움을 다루는 일이라서 그런가보다 한다. 

박찬일의 문체는 '노포'를 닮았다. 그래서 그의 글만 보고 있어도 왠지 그 가게 어느 한 쪽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포는 그렇게 화려한 곳이 아니다. 나무꾼들이 모여들었고, 그곳에 식당이 생기고, 그렇게 생겨난 곳들. 거기에 삶이 있는 거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진국'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 

박찬일의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나 자신을 좀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겉멋 같은 게 아직 빠지지 않은 게 있나, 의미 없는 허세가 남은 게 있을까. 

박찬일의 책은 심신수양이 필요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잔뜩 오염된 삶을 살면서, 왠지 불안해하고, 주변에서 '멘토' 같은 거 찾는. 노포들이 성장하고 살아남는 길은 그 진국 같은 것이다. 귀찮은 거 하고, 싫어도 버티고, 더 편한 거 알아도 피하고.. 물론 어렵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게 진국 아닌가 싶다. 

글은 박찬일처럼 써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조만간 그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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