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단상

시집을 읽자..

retired 2025. 1. 15. 02:24

 

자야 하는데, 새벽에 윤석열 체포 작전이 있대서..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박근혜 촛불 집회를 거치면서, 이보다 큰 사건은 내 인생에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mb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던 시절, 참으로 괴롭기도 하고, 실제로 고생스럽기도 했다. 도청도 당하고, 협박도 당하고.. 박근혜 탄핵과 함께 그런 어처구니 없는 시절을 다시 만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랍쇼? 친위 쿠데타와 함께, 진짜 황당한 시대를 만났다.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그냥 얼척 없다. 박근혜가 얼마나 우아하고, 나름대로 국가를 사랑했는지, 그런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경험이 살면서 몇 번 없다. 압축적이다 못해, 농축적이며, 끈적끈적하다. 

한 달 좀 넘는 기간, 왜 내가 글을 쓰는가, 그런 생각부터 어떤 것들을, 어떤 스타일로 써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아주 많이 했다. 

자극으로 치면, 탄핵 국면에 본 몇 개의 유튜브 만큼 자극적인 것을 살아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리얼리티 쇼로 치면, 초극강이다. 극우 유튜브도 몇 개 보려고 했는데, 말이 너무 거칠어서 보기가 좀 그랬다. 욕 너무 많이 한다. 

야, 살다보니, 조갑제 인터뷰를 다 봤다. 정규재와는 하도 토론에서 자주 만나서, 나중에는 정이 들기도 했다. 정규제 방송도 봤다. 

초반에는 좀 봤는데, 그것도 며칠 보니까 시들해졌다. 아마 윤석열 체포가 조기에 이루어지고, 흐름대로 변화들이 진행되었으면 좀 달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 달 가까이 거의 비슷한 포맷에 비슷한 얘기들이라서, 이것도 좀 질렸다. 결국은 한동안 안 보던 중국 무협 드라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재미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느낀 것은, 이렇게 자극적인 뉴스와 동영상이 난무하는 시대에, 텍스트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데타 전에 본 영화 <졸업>의 스타일이 계속 잔상처럼 머리에 남았다. 고전이 답답하고 조곤조건한 게 아니라니까.. 

나는 원래도 큰 소리로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다. 글도 연설투 안 좋아하고, 조곤조곤 말하는 걸 좋아했다. 이야, 이렇게 해서는 윤석열이라는 어마무시한 무대뽀 시대에 도저히 전달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걸 형성화시킨 단어가 ‘개막장’이다. 살다살다, 이런 개막장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진짜 지랄이 풍년이다. 

어쨌든 개막장 요소들을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든 생각이, 시를 좀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너무 오랫동안 시를 내용으로만 봤던 것 같고, 그러다보니 별 내용 없는 시들은 안 보게 되었다. 정좌하고 시를 안 읽은지 꽤 된다. 

감각과 압축, 사실 아직도 그건 시를 따라갈 게 없다. 그냥 알아먹지 못할 헛소리 찍찍 해놓은 것들 같지만, 어쨌든 그렇게 보이는 시 한 편 한 편이 시인의 삶을 갈아넣은 것들이다. 진짜 믹서기에 자기 뼈와 살을 갈아넣고, 그걸로 시를 만든 것 같다는 말이 딱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윤석열이 책 본다는 얘기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지만, 시 읽는다는 얘기는 정말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한덕수가 시를 읽을까? 최상묵이 시를 읽을까? 극우 유튜브에서 시원하게 아무 얘기나 잘 터는 아저씨들도 시를 읽을 것 같지는 않다. 

김종필의 책을 보면, 시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림 그리는 얘기도 자주 나온다. 속 터지고 죽을 것 같을 때, 그림도 그리고 시도 읽고, 그렇게 살았다. 시집을 읽는 정치인들의 얘기는 나도 좀 알고 있다. 정치도 외로운 직업이라, 혼자 결정하기 힘들 때, 오래된 시들을 읽는 시대가 있었다. 

내용이 아니라 시에 담긴 에너지와 감각, 그런 걸로 시로 읽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참 어처구니가 없기는 하다. 친위 쿠데타와 탄핵 국면을 보면서, 시를 읽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다니. 

예전에 나쁜 사람들을 짐승에 비유하고는 했다. 윤석열 일당은 이건 짐승도 아니다. 그냥 바보다. ‘힘 쎈 바보’, 이렇게 보면 윤석열을 정확하게 보는 법 아닌가 싶다. 그냥 힘으로 이기는 것이 꼭 방법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 쎈 바보들은 한국에 얼마든지 있다. 나오고 또 나오고, 또 튀어나올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중에 시집 감상에 대한 것도 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시에 들은 시간이 적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새벽에 윤석열 체포한다고 하니, 오늘 밤에 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기는 한데,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에서 탄핵 그리고 용산의 황당한 공성전을 보면서 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니.. 인생은 원래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