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에세이, 몸 풀기..
도서관 경제학은 이제 차분하게 인터뷰 작업을 좀 더 하고, 미친한 부분을 채워넣는 단계로 넘어갔다. 원고에 대한 의견도 좀 더 받아보면서, 아쉬운 부분들을 보강하려고 한다. 시간이 좀 더 걸려도, 이 얘기를 또 다를 기회는 없을 것 같아, 좀 더.
이제 슬슬 연초에 해놓고, 일단은 미루어두었던 죽음 에세이를 손 보는 작업으로 넘어갈 시간이다. 그렇다고 직접 원고 작업은 도서관 책 끝내야 할 건데, 제목을 잡거나, 전체적인 톤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할 시간이다.
죽음 에세이에 핵심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저출생 책 고치면서, 거기로 퍼갔다. 일단 그게 급해서, 먼저 갔다 쓰기는 했는데.. 나중에 다시 채우면서 재구성을 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한 번 하기는 해야 하는 일이라서, 이번 가을에는 그 일을 할 시간이다.
이거 쓸 때만 해도 내가 아주 편안한 시간이었다.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말 살면서 그런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사실 그렇게 맘 편하지 않으면 죽음에 대한 얘기를 다루기가 어렵다. 그때도 꽤 마음도 힘들고, 감정 소모도 많은 작업이기는 하지만, 내가 워낙 편해서 그 정도는 끄덕없이 버텼다. 별 거 아닌 얘기라도, 죽음과 관련된 글은 마음이 편치가 않다. 버티면서 하는 일이다.
도서관 경제학 책을 쓰면서 한 번도 안 해 본 경험을 하기는 했다. 도서관 역사 정리하면서 없는 자료들 뒤지고 볶고, 한자 가득한 60년대 스캔본 논문들을 죽어라고 읽고.. 뭐 역사 작업이 그렇듯이 지루하고 끝없는 일을 반복적으로 했다. 그래도 책 제목이 “힘내라, 도서관!”이라서 그랬는지, 그렇게 지치는 느낌이 없었다. 물론 넘겨 두고 갔던 학교 도서관 문제를 정리할 때에는, 너무 어려워서 죽는 줄 알기는 했다. 그건 너무 복잡하고 난이도도 너무 높았다. 전체적으로는 제목 덕을 좀 본 것 같다.
앞으로도 가능하면 덜 지치고, 보는 사람도 좀 에너지가 생길 수 있는, 그런 제목과 그런 톤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을 책을 쓰는 게, 나에게도 좋고, 독자에게도 좋을 것,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물론 쉽지 않다. 내가 다루는 주제들이 대부분 힘든 사람들에 관한 것들이 많다. 그걸 너무 밝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까딱하면 조롱처럼 보일 위험성도 높다. 그래도 가능하면 좀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날카롭고 예리한 것이 멋있어 보이는 나이가 이젠 지난 것 같다. 어디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내가 그런 감정을 잘 견디기가 어렵다.
하여간 그 사이에 나에게도 좀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잘 버틸 것 같던 둘째가 몇 주 전에 다시 입원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면 손이 좀 덜 갈까 했는데, 아직은 아닌갑다. 내년에도 좀 더 봐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셨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셨다. 나이가 많으셔서 수술은 어렵다. 병원 도움을 받으면서 관리하면서 사시는 방법 밖에 없다. 인생이 그렇다. 늘 편한 시간만 있을 수는 없다. 어쨌든 일상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일들이 좀 생겨났다. 마냥 편하다고만 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일단 제목이 문제다. 죽음을 넣고 갈지, 빼고 갈지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죽음 에세이인데, 제목에서 죽음을 빼면 너무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죽음을 넣고 해보면, 뭘 넣어도 결코 무겁지 않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무리 가볍다고 해도 결코 가볍지 않은 제목이 되어버렸던. 죽음도 그렇 특징을 가진 단어다. 뭘 어떻게 꾸며도 그 무거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여간 아직은 잘 모르겠고.. 좀 더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