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작은 전환점
큰 애가 어린이집 졸업하고, 학교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비었다. 통합보육으로, 그냥 어린이집 보내면 맡아 주기는 하는데, 절대로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다. 졸업했는데, 왜 또 가느냐고. 도저히 상황이 안 되어서 한 번은 보냈는데, 일찍 데리고 왔다. 그냥 되는대로 내가 집에 데리고 있었다. 며칠 아버님 댁에도 보내고..
하여간 2주 동안 뭐가 뭔지 정신 하나도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다고 누가 사정 봐주는 경우는 없다. 그냥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내 인생만 놓고 보면, 대략적으로 2010년 혹은 2011년부터 이번 겨울까지가 크게 보면 하나의 기간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기간은 전체적으로 모색기였던 것 같다. 이것저것, 뭔지도 모르면서 되는대로 많은 시도를 했다. 방송도 해보고, 다큐도 해보고, 이것저것.. 그 기간의 공통점은 책을 제외하면 내가 먼저 뭐를 하자고 한 적은 거의 없던. 누가 하자고 하는 게, 여건 되면 하고, 여건 안 된다 싶으면 못하고.
대충 살았다. 내 일정을 나도 모른다. 애가 언제 태어날지도 모르고, 애가 언제 아플지도 모르고. 그 와중에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일정은 잠정적인 출간 일정 밖에 없었다. 꾸역꾸역.
Mb 후반기부터 문재인 전반기에 이르는 이 시간, 이 기간 중에 가장 큰 사건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둘째 아이의 폐렴 입원이 아닐까 싶다. 삶에 계획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저것 일을 하면서 욕심이 전혀 없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다. 조금은, 나도 욕심을 부려본 적도 없다. 둘째가 아파고, 계속해서 입원하면서 그냥 버티는 것도 어려웠다.
내가 생각하던 나의 모습 혹은 잠정적으로라도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걸 하고 싶다, 저걸 하고 싶다. 거의 다 내려놓았다.
인생, 모른다. 뭔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만일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는 걸 이래라 저래라, 그것도 좀 이상하다. 난 잘 모르겠다, 그렇게 결론을 냈다.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거의 10년 가까이 진행된 한 시가를 마감하는 게 묘하게 겹쳤다. 많은 것들에 대한 결정이 묘하게도 이 시기에 겹쳤다.
신혼 초에 아내와 술 마시는 마감 시간을 9시로 약속을 했다. 칼 같이 지키지는 못해도 정말 특별한 일 아니면 대체로 지켰다. 12시 가까이에 들어온 날이 한 번 있었다. 그리고 혼자서 보드카를 새벽까지 마신 일이 두 번 있었다. 아침에 애들 어린이집 가야 하니까, 밤에 술 마시다가도 적당히 마시고 말았다. 된장.. 애들하고 집에 있게 되는 날은 그냥 마셔 버리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은 결정을 내렸고,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은 결정을 내리지 않기로 하는 결정을 했다. 진짜 많은 결정을 했다. 사실 10년 전에는 했어야 하는 결정들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미루고 미루고, 그냥 시간만 때우면서 살았던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다음 주에는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몇 달 전에 내린 결정이지만, 아내는 한 달 동안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동안에 애들 등하교는 번갈아 가면서 하기로 했다. 사정이 생기면 조금씩 조정을 하면서.
많은 것을 결정하고 나니까 홀가분하다.
사실 기술적으로 내려야 하는 많은 결정들은 보령에서 마음을 먹었다. 애들 자는 동안에 잠시 나와서 서해 밤바다를 보면서 내렸다. 큰 것들은 그 때 결정을 했고.. 나머지 남은 기술적인 몇 가지 일들은 요 며칠, 어린이집 가는 큰 애랑 지내는 시간 동안에 내렸다.
어려서, 자신의 삶의 주인은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글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버렸다. 그거, 되지도 않는 생각이다. 인생이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주인이 된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사는 것, 그거 너무 도식적이다. 헤겔을 읽은 이후로, 그런 식으로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계몽주의 시대의 산물일 뿐이다. 삶에는 그딴 거 없다.
명분, 기여, 재미 그리고 약간의 여유, 그런 것들이 혼재하면서 인생이라는 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 육체도, 내 삶도, 시간 속에서 잠시 빌렸다가 다시 내려놓고 가는 것일 뿐이다.
누군가 빌려준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한동안 쓰다가, 다시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인생이란 그런 것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얼핏 세어보면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더는 내가 애들 등하교시키지 않아도 되는 시간까지, 대략 4년이 남았다. 이 정도가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삶을 조금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살게 되는 시간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서 4년이 지나면.. 내 삶은 과하게 행복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분에 넘치는 도움을 받은 삶이었다. 그렇게 넉넉하게 태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태어나던 순간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넉넉하다. 우리 애들은 내가 어렸을 때보다 더 나은 형편에서 살아간다. 그 사이에 사회가 변하기도 했고.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그 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삶을 살려고 한다. 경제 다큐 같은 게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인가가 될 수도 있다. 다 쥐고, 내가 제일 잘 나가, 그런 과거적 방식의 삶은 재미 없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기여하고,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삶을 미화하고, 조금이라도 더 큰 성을 쌓아서, 남들이 쳐다보게 하는 삶, 재미 없다. 큰 대의 명분, 그런 것도 필요 없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지키면서, 의미 있게 살면 그걸로 그만이다.
내가 제일 싫었던 말 중의 하나가 ‘인생 2모작’이라는 말이다. 농업에는 정말로 아무 관심도 없는 늙은 남자들이 한 쪽에서는 “핸드폰 팔아 쌀 사먹으면 된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의 삶에는 2모작 같은, 쓰지도 않는 은유를 하면서.
적당히 좀 해 처 먹어라..
필요하던 시기에 적절한 국가 복지를 만들지 못해서, 은퇴와 연금이라는 기본 프로그램이 미비한 것을, 한 번 더 영광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지랄이다.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지도층 인사들이, “이제는 인생 2모작”, 그런 건 진짜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생은 돌아보면 결국은 변명 덩어리이다. 회환도 기억 속에서 미화된다.
곱게 늙고, 추하지 않게 죽을 준비를 하는 것, 그게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점점 더 내려놓고..
넉넉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사는 삶, 그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삶이고, 세상이다. 그리고 그런 나라들이 1인당 국민소득 9만불 가까이 간 나라들이다.
잘 사는 나라들, 우리처럼 안 산다. 경제의 역설이다. 죽어라고 야차처럼 굴어봐야, 사실 별 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