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가 있어야 행복해질까? – 3편
1.
평균적 가계 기준으로 월 생활비 400만원, 실제로 우리 집이 한 달에 그 정도 돈을 쓴다. 물론 아내가 극단적으로 돈 쓰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고, 나도 주머니에서 돈이 막 나가는 편은 아니다. 그 정도 내에서 틈틈이 외식도 하고, 거의 매달 짧더라도 여행을 떠난다. 일년에 두 번 정도는 해외 여행도 한다. 나도 한 달에 동료들 한두 번은 술 사준다. 월 400~500만 원 사이, 내가 맞추려고 하는 생활의 수준이다. 낮추려면 더 낮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책값이나 DVD 비용 같은 것을 줄여야 한다. 그렇게까지 줄일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이 앞에 있던 몇 가지 선택들은 그렇다 치고, 이제 진짜로 사립학교 보낼지, 그냥 동네 학교에 보낼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제일 큰 건 애들 등하교 문제다. 그런 거 아니면 고민을 시작할 일도 없다. 국공립 초등학교에는 등하교 버스가 없다. 사립은 버스가 온다. 출근하는 아내 입장에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은 어린이집 등하원을 내가 시키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러기도 힘들다고 아내는 생각한다. 나야, 어차피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그냥 이렇게 살아도 별 상관 없다.
제도적 기원을 보면, 버스회사들 요즘은 마을버스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이재정이 경기도 교육감 되자마자 초등학교에 스쿨버스를 투입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마을버스들이 난리가 났다. 아이들 등하교 시간이 고객 줄면 망한다고.. 결국 없던 일로 되었다.
보통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어야 아이들이 혼자서 버스 타고 등하교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그 전에는? 이건 초등학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립유치원 등 사립자 들어가는 어린이집 같은 데에는 버스 운용을 다 한다. 그런데 국공립 그야말로 ‘버블릭’ 글자만 들어가면 옴팡, 부모가 뒤집어 써야 한다. 그리고 그것만 하는 직업이 활성화되어서, 등하교 전담 도우미.. 이거 왜 이래?
버스회사와 마을버스 로비의 벽을 공무원들이 못 넘어선 거다. 지금 사립 유치원 사태 보다는 훨씬 고치기 쉬운 일인데… 진짜로 진보 교육감이라고 하던 사람들, 뭐하고 계시는겨? 박근혜 정부 때에는 국토부의 협력이 어렵고, 지자체에서 반대한다고 했다. 지금은 김현미 아냐? (설마 현미 누님이 반대할라고..)
여기에 사립이 좋은 점은, 이건 진짜 관점의 차이이기는 한데, 엄마들 오라가라 하는 게 없다는. 요즘은 국공립도 많이 줄기는 했는데, 여전히 “자기가 오던지, 사람을 사서 보내든지”,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이 불과 최근까지 목격된 바가 있다. 일하는 엄마 입장에서, 자녀의 ‘우월한 교육’은 차지하고, 최소한 이 두 가지의 실용적 목적 때문에 사립학교를 보낼지 말지,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 집도 고민을 했다. 아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다. 나야 그냥 내가 애들 데리고 다니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이러거나 저러거나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아내는 끝까지 고민을 했다.
2.
사립학교에 다니는데, 방과후 프로그램까지 이것저것 부대비용들 넉넉하게 잡아보니까 월 150만 원 정도 한다는 것 같다. 영어유치원 한 달 비용이, 교제값과 등하교에 들어가는 추가적 시간까지 해보면 얼추 그 정도 된다. 그러니까 꽤 많은 집은 이미 지난 2년 동안 이 돈을 들였을 수도 있다. 어차피 드는 돈, 이미 각오했어!
간단한 산수를 해보았다. 간단하게 월 백만 원이라고 치면 6년간, 기계적으로 7,200만 원 나온다. 이자비용 감안하면 8천만 원, 이것도 최소 비용으로 잡은 것이다. 거기에 아이가 둘, 1억 8천.. 잠깐잠깐, 이건 돈이 너무 크다.
중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아이들 둘 교육비로 1억 8천, 까딱하면 2억, 이건 뭐야? 이걸 그냥 등하교가 몇 년 어렵다고 태워? 태워 버리기에는 돈이 너무 크다. 공교롭게도 열 살까지, 스무 살까지 증여세 없이 증여할 수 있는 돈과 거의 비슷하다. 이걸 그냥 등하교 좀 편하게 하자고 허공에 태우자고? 뭘 위해서 태우는데?
두 아이들 중학교 들어갈 때, 둘의 공동명의로 2억 가까운 돈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설령 걔들이 나 닮아서 뻑하면 학교 그만두고 싶어할 텐데, 그래도 조그만 가계라도 갖고 싶다면 그걸로 뭔가 되는 거 아녀?
이런 고민하고 있을 때 박용진이 사립유치원 문제를 터뜨렸다. 아내는 사립 초등학교는 사립유치원보다 더 무서운 존재일 거라고, 연방 뉴스 터지는 걸 보면서 사립학교는 접었다. 아내 성격상, 분명 비리를 보면 학교랑 싸우고 결국 전학가게 될 것 같단다. 어내는 사립학교 추첨 서류를 쓰는 대신, 회사에 내년 3월에 한 달간 육아휴직 쓰겠다고 통보했다. 초등학교 첫 달에는 방과후 학교가 없다.
교육을 전담하는 조희연은 대체 뭘하고, 박원순은 뭐하고 있는겨? 교통을 담당하는 김현미는 뭐하고 있는겨?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통학버스 마련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에쿠스, 그랜져, 이런 대빵용 관용차 몇 대만 모닝으로 바꿔도 그 정도 돈은 나올 거 아닌가벼?
말로 다 안 해서 그렇지, 김현미 삽질, 조희연 삽질, 기타 등등 장관들 삽질, 이거 보고 있으면 진짜로 속에서 열불 난다. 정말 이상한 것은 개인들이 최소 1억 원 이상 추가로 지불하게 되는 이상한 제도의 공벽이 너무 많다는 점. 이리저리 남들 하는 대로 하면 자녀당 2억이 뭐냐, 대학 졸업 때까지 5억이 넘게 들게 생겼다.
그만큼 쓰면서 병신 짓을 하던지, 아니면 그만큼 미안해 하던지..
난 맘 먹었다. 다음 번 교육감이랑 서울시장 선거에서 다 필요 없고, 초등학교 스쿨버스 공약 거는 넘 찍을 거다. 애 둘에 2억 원이 걸린 일이다. 쓰거나 말거나, 그게 취향과 소신에 따른 선택이 되는 게 맞지, 애들 등학교를 위해서 그걸 쓰는 게, 이게 좀.
3.
내가 도시민 월 평균 소득인 4천만 원에 평균적 가구의 생활비를 맞출 수 있도록 제도들이 정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꼭 중산층만을 위한 기준은 아니다.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정리했던 생각이 있다.
최저임금 만 원이면 유휴수당까지 넣어서 환산하면 대략 월 208만원 정도 된다. 물론 그렇게 안 하겠다고 지금 정부도 이것빼고 저것빼고, 아주 생난리 중이기는 하다. 주 40시간 노동에 최저임금 만 원 받는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꾸리면 416만 원이 된다. 최저임금 커플이 사랑을 하든, 같이 살든, 아니면 서로 지지고 볶거나, 그건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내가 하는 계산은 과연 그들이 아이를 낳고 살아갈 수 있느냐, 그 기준에 대한 계산만.
정상적인 – 혹은 중산층틱한 – 남녀가 월 400만원으로 살아갈 만한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최저임금 커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거부터 문화까지, 그 정도 수준에서 설계가 안 될 이유가 없다. 안되는 것은? 청와대에 돌대가리들이 자리 차고 앉아서 그렇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아니면 총리라도 좀 토건질 그만하고 머리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사람을 앉히던가. 청와대는 돌대가리, 총리는 토건에만 용감하신 분, 에 또..
그러니 마을버스 업자들에게 막혀서 초등학교 스쿨버스 문제 하나도 해결 못하는, 토건의 나라, 업자의 나라, 이런 게 된 거 아니냐? 대형 학원이나 사교육 자본의 힘에 막혀서 못했다, 그러면 안타깝더라도 설명이나 되지. 마을버스 로비에 학교에 스쿨버스를 못 보낸다, 이게 말이 되는가?
최저임금 커플 416만 원, 아직은 미래의 수치다. 내가 이 정도를 정책 설계의 기본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문화 경제라는 또 다른 축 때문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우습게 보지만, 한국의 수많은 작가나 연구자, 화가 등 예술가, 최저임금 근처에도 못 간다. 뭔 일을 해야 최저임금이라도 받지, 괜히 쿠사리 당하고, 쫑코 맞고, 툭하면 성폭력성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 최저임금 한참 언더다. 요즘 책 안 팔린다고 작가들이 난리지만, 그래도 어른들 보는 책 쓰는 사람은 욕이라고 하지. 어린이책, 동화책 작가들은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정도가 아니라 길고양이 사료까지 집어먹게 생겼다. 유학생 시절에 너무 배가 고파서 고양이용 사료를 사다가 먹고 나중에 정신적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게 지식과 문화의 현장에서 지금 한국 현실이다. 그들에게는 416만 원도 넘사벽, 크다.
4.
약간 심통성 정책을 제시하면서 세 번에 걸친 돈에 관한 얘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한국의 평균 가정이 살아가는 데 월 평균 얼마가 필요할까? 4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로 계산될 것이다. 해마다 조금씩 올라가기는 하지만 하여간 도시민 가계평균 소득이 한국에서 그 정도다.
경제 관료는 국장급 이상, 나머지 관료는 1급 실장급 이상, 연봉을 전부 거기에 맞추면 어떻게 될까? 경제 부처 기준으로, 과장까지는 생활형 공무원, 그 이상은 정무급.. 3급부터는 자기들이 생각하는 한국 경제의 생활인에 대한 정상 임금을 정해서, 월급으로 그 돈을 받게 하자. 그러면 자기들이 편하려고 어떻게든 생활의 낭비 요소들을 줄일 거 아니냐?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1급이 되는 순간, ‘국민 정상임금’을 받게.
그러면 5년 안에 한국은 월소득 4백으로 “나는 매일매일 행복해서 죽겠네”, 이런 비명 소리가 튀어나오는 나라가 될 것이다. 실제로 많은 국가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그렇게 연봉이 높지가 않다. UN의 과장급 이상 고위직들, 뉴욕이나 런던 같은 데 가라고 하면 곡소리 난다. 에고에고, 이 돈으로 어떻게 사나..
대통령, 총리, 장관, 이런 높으신 분들 연봉도 월 400에 맞추면 좋은 것 같다. 그 대신 이 아저씨들은 명예가 있쟎아. 공무상 더 필요할 돈은 업무추진비 빠방하게 늘려주고. 다만 생활은 이 수준에 맞추어서. 국회의장 등 국회의원들 세비도 이 수준에 맞춰서.
경제학자로서, 가급적이면 나도 도시 가계생활비 평균치를 넘지 않는 선에서 생활을 꾸리려고 한다. 그래야 나도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하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 애 키우다 보니까, 생활의 어려움이 좀 보이기 시작한다. 총리나 장관, 이런 똑똑하신 분들 눈에는 얼마나 잘 보이겠냐?
월 400만 원으로 행복한 나라, 그건 개인이 돈 더 벌어서 풀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풀어야 할 문제다. 그리고 실제로 1인당 국민소득 7만 달러, 8만 달러 가는 나라들이 다 그 정도 선에서 어느 정도 살 수 있게 시스템 설계가 되어 있다. 월 4백 대통령, 이거 못할겨? 이건 그냥 결정헤서 하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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