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르지../50대 에세이

전화번호 100개의 삶..

retired 2018. 11. 2. 10:44

몇 년 동안 핸펀 주소록을 거의 관리하지 않고, 그냥 더하기만 하고 살았다. 1700명.. 차 블루트스 핸펀 db에 1000명만 들어간다. 어지간하면 그 선에서 문제 없었을 것. 얼마나 내가 너저분하게 살았는지, 느낌이 팍 왔다.

별 다른 방법도 없어서 그냥 시간 날 때마다 손으로 하나씩 지우기로 했다. 김씨 동네 막 끝났다. 우와, 이렇게 많은 김씨들이 있었다니.

앞으로 차 한 잔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기준이다. 용민이 남고, 김어준? 그래도 술 한 잔 할 가능성이 높은. 남고. 그 사이에 장관된 사람이 몇 명 있는데, 아무래도 이 번호로 연락해서 차 한 잔 마실 일은 없을 것 같다. 방송할 때 알았던 사람도 많은데, 필요하면 지들이 알아서 연락하겠지. 문재인 태그로 18명이 있는데, 이것도 일괄 삭제. 김두관 번호는? 차 마실 일 진짜 없을 것 같다. 꼭 술 한 번 마시자고 돌아섰는데, 그리고 술 마실 일이 없었던.

한살림이나 ymca 간사들 번호 지울 때 좀 생각을 했다. 어렵던 시절, 같이 등을 대고 건너던 사이이기는 한데.. 필요하면 자기들이 알아서 연락하겠지.

여의도에서 무슨 일을 할 일은 없을 것 같고, 정부에 다시 들어갈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방송을 다시 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지난 시간의 일이다. 사실 2년 전에 일괄 정리를 한 번 했었어야 했는데, 그럴만한 틈이 없었던 것 같다. 마침 직장 민주주의, 최종 수정까지 탈탈 털고 나니 잠시 마음의 여유가.

특별히 유별난 일 하지 않는 이상, 나는 100명 정도의 전화번호면 충분할 것 같다. 어쩌다가 1,700명까지 늘어났을까? 너저분하게 살아서 그렇다. 잠시 반성.

늘 보고 일하는 동료는 다섯 명도 많다. 정신없어서 그렇게 많은 숫자가 같이 돌아다니기 어렵다. 1년에 한 번 차 마실 정도의 사람은 100명이 안 된다.

총리실에 있던 시절, 수첩 전화번호칸이면 깔끔하게 다 들어갔다. 그 수첩이 내 삶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준 수첩이 되었다.

어느 날 전화번호 옮겨적다 보니까, 된장.. 절반이 박사고, 나머지는 고위 공무원들이네. 뭔 인생을 이렇게 대충 산 거야? 그 고민이 커지고 커져서, 결국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내 삶이 생겨났다.

100개의 전화번호면 충분하게, 그렇게 단촐하게 살아야 한다, 나이를 처먹었으면. 치부책 만지듯이 핸펀번호 들여다보면서 넉넉함을 느끼면.. 지옥갈 것 같다. 100개로 넘치는 삶을 단촐하게 살 수 있으면, 천당갈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다.